김정은 '믿는 구멍' 암호화폐·푸틴…한·미·일 두겹, 세겹 막는다 [북한 새 캐시카우]
대북 제재는 공성전(攻城戰)이다. 성 밖에서 보급로와 증원군 파견을 차단하는 국제사회와 성 안에서 어떻게든 빈틈을 뚫어보려는 북한 간에 끝없이 허점을 만들고 틀어막는 장기전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켜켜이 쌓여 더 큰 효과를 발휘한다는 전망과 점차 요령이 생겨 갈수록 버틸만 해진다는 상반된 분석이 공존하는 이유다. 중앙일보 여론조사에서는 국민 61%가 제재를 현 수준으로 유지하거나 강화해야 한다고 응답, 전자를 기대했다.
사실 현재 성 안에 갇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도 숨구멍은 존재한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방어 역시 만만치 않다.
새 '캐시카우' 암호 화폐에 뭉친 한·미·일
2016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중심으로 강력한 대북 제재 체제가 구축되며 북한으로 유입되는 달러 현금은 상당 부분 차단됐다. 하지만 동시에 북한은 투자비용이 적고 익명성 보장이 쉬운 사이버 공간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암호화폐와 IT 노동자를 활용한 돈벌이다.
물리적 외화벌이를 막자 불거진 '풍선효과'인 셈이다. 지난해 8월 발간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 보고서는 북한이 2022년 불법적으로 탈취한 암호 화폐의 규모가 17억 달러(2조 2287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했다.
이에 한·미·일 3국 정상은 지난해 8월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에서 김정은 정권의 주요 외화벌이 창구로 떠오르고 있는 '사이버 범죄 차단'에 합의했다. 이는 외교·안보뿐 아니라 수사기관까지 망라하는 '정예군' 격인 '한·미·일 사이버 협력 실무그룹' 신설로 이어졌다. 관련 업계에 정보를 제공하고, 북한 암호화폐 흐름의 길목을 차단하는 게 목표다.
실제 미국의 블록체인 분석업체 체이널리시스(Chainalysis)는 지난해 3분기 기준 북한 연계 해킹그룹이 탈취한 가상자산은 3억4040만 달러(약 4450억원) 규모로 추정했다. 이는 전년도 자체 추산액인 16억5000만 달러(약 2조1573억원)에 비해 크게 감소한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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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뒷문' 열자 '주홍글씨 효과'로 반격
김정은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만들어진 신냉전 구도에 편승해 전쟁 장기화로 탄약이 부족해진 러시아와도 밀착하고 있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는 제재의 '뒷문'을 대놓고 열고 무기 거래를 하며 북한을 감싸고 있다.
이에 더해 북한이 노동자들을 러시아 극동 연해주 등지로 대거 투입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제재로 막히기 전 북한이 노동자 해외 송출을 통해 벌어들인 외화는 한해 약 5억 달러(약 6537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극동 개발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숙원사업이라 상호 이해관계도 맞아떨어진다.
이에 한·미·일과 호주 등은 북한의 제재 회피를 관여하는 이들에 대한 연쇄적·중첩적인 제재를 내놓으며 반격에 나섰다. 이는 그 자체로 '주홍글씨'를 새기는 낙인 효과로 이어지며, 세컨더리 보이콧(제3국 개인이나 단체도 제재)을 적용할 수 있다는 경고 발신이기도 하다.
외교 소식통은 "부동산 거래를 할 때 등기부등본을 떼어본 뒤 굳이 담보가 많이 잡혀있거나 사기의 위험이 있어 보이는 매물을 거래하려는 사람은 없다. 주요국이 중첩적으로 북한의 제재 회피에 관여한 인사나 기관들을 제재하고 명단의 규모를 늘리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북·러 관계의 근본적 한계도 있다. 정유석 IBK경제연구소 북한경제팀 연구위원은 "북·러 간 거래는 기본적으로 당장의 필요 때문에 급조된 성격이 강하다"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의 출구전략을 모색하기 시작하면 북한과의 거래는 버리는 카드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제재에 '내성' 생겼다?
북한은 계기마다 제재의 빈틈을 뚫고 자신만의 생존법을 체득했다고 과시하면서 '제재 무용론'을 주장해왔다. 김정은의 '자력갱생'이 대표적이다. 평양에 건설된 고층 주상복합단지나 화려한 조명으로 밝혀진 주요 치적시설을 내세우면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런 선전전은 오히려 제재가 잘 작동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임수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대북 경제제재와 북한의 적응력' 보고서(22년 9월)에서 "2017~2021년 사이 북한의 GDP 규모는 약 12% 감소했고, 광업과 중화학공업은 각각 51%, 30%씩 감소했다"고 밝혔다. 제재의 효과가 실물경제의 지표로 나타나고 있다는 얘기다.
금융제재 전문가인 장형수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2020년 말 기준으로 북한이 보유한 달러를 17억(약 2조 2219억원)~50억 달러(6조 5350억원)로 추산했다. 무역이 일부 재개되긴 했지만, 국경봉쇄 여파가 여전하기 때문에 지금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는 수준은 아닐 것으로 보인다. 통상 학계에서 코로나19 이전 북한의 한 해 무역적자를 10억 달러 정도로 보는데, 결국 현재 보유하고 있는 외화는 몇 년밖에 담보하지 못한다는 뜻이 된다.
익명을 원한 정부 관계자는 "북한이 제재 회피를 선택하는 순간부터 리스크와 비용은 상승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제재로 인해 투입하는 비용 대비 생산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제재가 쌓일수록 북한 경제에 미치는 파장도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여론조사 어떻게 진행했나
「 이번 조사는 중앙일보가 한국갤럽에 의뢰해 2023년 12월 28~29일 전국의 만 18세 이상 남녀 1017명을 대상으로 휴대전화(가상번호) 전화면접조사 방식으로 진행했다. 응답률은 14.6%이며 2023년 11월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 기준으로 성별·연령별·지역별 가중값(셀가중)을 부여했고, 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서 최대 ±3.1%포인트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www.nesdc.go.kr) 참조.
」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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