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세비 총액 동결하고 국회의원 수는 늘린다면

2024. 1. 4.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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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준(연세대 교수·산업공학과)
4년간 의원 1인당 세비 35억
200여 가지 각종 특혜도 받아
국회 부정적 인식 갈수록 증가

하지만 다양한 갈등 대응위해
의원 공급 늘리되 비용 줄이는
사고의 전환도 검토할 만

사회가 고도화되고 구성원들의 다양한 욕구가 분출되면서 갈등도 심화하고 있다. 온라인에 넘쳐나는 비방과 욕설, 주말마다 이어지는 시위, 골목길을 가득 메운 이익단체들의 현수막, 정당 대표에 대한 테러까지 사회 갈등 수준은 임계점을 넘어서고 있다. 하지만 구성원 간의 이해를 조정하는 정치 기제는 제대로 작용하지 않고 있다.

한국행정연구원이 시행한 사회통합 실태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국회는 지난 10년간 기관 신뢰도 조사에서 매년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국회는 사회 갈등을 조정하고자 하는 의지도,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전문성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국회의원 유지에 도움이 된다면 갈등 조장도 서슴지 않는 행태와 잊을 만하면 터지는 의원들의 각종 비리와 행위도 국회에 대한 불신을 가중시키고 있다.

하지만 국회의원을 욕하면서도 기회만 있으면 국회의원이 되려고 하는 이들이 넘쳐나는 이유는 뭘까. 입법 및 정책 개발, 사무실과 보좌진 운영, 출장 등에 지원되는 경비와 각종 수당을 포함해 21대 국회를 기준으로 국회의원 1인당 4년 동안 지급되는 세비는 34억7000만원에 달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인당 국내총생산 대비 세 번째로 높은 수준의 보수와 함께 주어지는 불체포 특권을 포함한 200여개 특혜의 유혹을 뿌리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국회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바닥인 상황에서 정치권에서는 국회 의석수를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한국의 의석수가 OECD 회원국 평균의 절반 수준이라는 것이 이유다. 상하원 구분이 없는 단원제와 지역구 대표, 비례 대표를 동시에 선출하는 혼합형 선거제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들과 비교해도, 한국과 인구수가 비슷한 국가들과 견줘도 의원 수가 훨씬 적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다수의 국민은 의원 정수 확대에 반대한다. 심지어 국회 무용론을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최근 신기술이 견인하는 급속한 변화와 함께 다양한 분야에서 발생하는 갈등으로 인해 정치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수요가 폭증하는 상황에서 공급을 제한하다 보니 희소성에 의해 국회의원의 가치가 폭등하고 국회의원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국정감사 중에 관련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고 보좌진이 써준 문건을 읽어가며 피감기관장에게 호통치는 국회의원들의 모습을 떠올리면 4년 동안 1인당 35억원에 이르는 세비가 지급되는 의원의 수를 늘리자는 주장에 동의하기 힘들다.

따라서 의정활동에 불필요한 많은 특혜를 없애는 노력과 함께 국회의원들에게 지급되는 세비 총액을 현재 300명에게 지급되는 세비 총액 수준에서 동결하는 건 어떤가. 대신, 인턴 1명을 포함해 9명으로 운영되는 의원 사무실 보좌진 수를 줄이고 의원 수를 좀 더 늘린다면 어떨까. 보좌진 운영 비용을 대폭 줄이는 한편 4년간 국회의원 1인당 10억원이나 15억원 수준의 세비를 지원하고 필요한 항목에 보다 자유롭게 세비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 공급이 늘어나 희소성이 줄고 가치가 떨어지면 국가에 대한 봉사를 명분으로 국회의원직이 주는 막강한 권력과 높은 보수, 각종 특혜 등을 탐하는 인사들이 아닌, 진정으로 일정 기간 국가에 봉사하고자 하는 지역 전문가와 분야 전문가들이 국회로 진입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국회의원에게 지원되는 세비와 특혜를 국회 스스로 결정한다는 것이 또 다른 문제다. 영국, 캐나다, 뉴질랜드 등처럼 별도의 독립 기구를 설치하고 시민들이 참여해 국회의원 세비를 책정하도록 해야 한다.

의원 정수 확대에 대한 논의는 국회의 생산성 향상이 담보돼야 가능하다. 의원 1인당 발의할 수 있는 법안 수의 총량제를 두고 발의된 법안에 대해서는 체계적으로 입법의 영향을 사전에 분석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 규제를 남발하는 부실 입법을 막고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줄여야 한다.

또한 사후에도 입법의 영향을 분석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해 국회의원 평가를 법안 발의 건수 중심에서 입법 성과 중심으로 수정해 국회의원들은 권한만 있고 책임은 없다는 인식을 불식시키는 노력도 필요해 보인다.

박희준(연세대 교수·산업공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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