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는 교회 떠나는데… 복음 가르치기 위해 몸부림쳤는가
1987년 삼성 창업자인 이병철 선대 회장은 서울 절두산 성당의 박희봉 신부에게 기독교 신앙에 대한 질문지 24개 문항을 보냈다. 단순히 종교를 넘어 참된 영성과 참 진리를 향해 추구하는 과정에서 깊은 고뇌와 내면의 탐구가 얼마나 처절했는가를 엿볼 수 있는 질문이다.
그 질문은 이렇게 시작된다. ‘신은 왜 자신의 존재를 똑똑히 드러내 보이지 않는가’ ‘신이 인간을 사랑했다면 왜 고통과 불행과 죽음을 주었는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 ‘우리나라는 두 집 건너 교회가 있고 신자도 많은데 사회 범죄와 시련이 왜 그리 많은가’ ‘로마 교황의 결정엔 잘못이 없다는데 그도 사람인데 어떻게 그런 독선이 가능한가’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고 예리하다.
이 질문지를 받고 고민하던 박 신부는 이 편지를 한국 천주교의 지성이라고 하는 정의채 몬시뇰에게 보냈고 그가 이 회장에게 최종 답장을 보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그 이후 차동엽 신부에 의해 그 질문이 재발견되고 그는 2012년과 2020년 ‘잊혀진 질문’이라는 저서를 통해 이 회장의 질문을 재정리하며 통찰력 있는 답변을 제시한다. 그러나 그 답변은 논제에 대한 이 회장의 눈높이에 맞는 명쾌한 해답이 제시되지 않아 안타까웠다.
천주교가 아닌 개신교 목사들이나 리더 성도들에게 질문을 했다고 가정했어도 가슴을 시원케 하는 답변이 가능했을까 생각해 본다. 사도행전 17장에서 최고 문명을 뽐내는 그리스의 아테네, 그 지식의 시장터 한복판에서 그들의 최상위급 언어로 핵심을 꿰뚫는 말씀으로 도전하는 사도 바울을 떠올려 본다.
우리나라의 경우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를 정리해보면 대략 7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역동성과 인격성의 결여로 인한 생활 신앙의 회의, 교회 밖 삶에 대한 부정적 견해, 교회의 강압적이고 율법적 태도, 일부 기독교인의 비도덕성, 타성과 지루함, 의심과 질문에 대한 비우호적 태도, 공공성에 대한 무관심 등이다. 이 시대의 청년들이 교회에 요구하는 수준이 얼마나 높은가를 보여주는 결과이다. 다른 말로 하면 세상이 기대하는 기준이 어떤가를 정확하게 말해주고 있다.
미국 풀러신학교 총장을 지낸 리처드 마우는 복음 전도란 ‘절대 가치를 현시대의 고차원적 문화 속에 집어넣는 전략’이라고 정의했다. 왜 복음 진리는 빛을 잃었는가.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불변의 진리이다. 문제는 전달 방식, 즉 전도의 피상성에 있다. 현대의 가장 큰 저주는 값싼 복음이라는 비극이다. 복음이 깊이와 신선함을 상실하고 말았다. 아무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 치열하게 생각하거나 깊이 고뇌하지 않는다. 총체적 세속성이라는 현대의 특성과 현대인의 깊은 필요에 대해 연구하지 않는다.
마케팅에서 중요한 것은 콘텐츠다. 복음의 진리는 시대를 초월해 빛나는 최고 최상의 콘텐츠다. 그런데 그 내용을 담은 제품 디자인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최고급 제품을 허접스러운 디자인을 입혀 싸구려 포장지에 담아 진열해 놓으니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세상 기업들은 제품이 팔리지 않으면 리엔지니어링과 혁신의 과정을 통해 모든 것을 바꾼다. 정당들도 지지율이 떨어지면 구조조정을 하고 급진적 변화를 도모한다.
성경은 절대 진리이다. 그 진리성에 대해서는 타협의 여지가 없다. 다만 그 보석 같은 콘텐츠에 합당한 제품 디자인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다. 현대는 제품에 디자인을 입히는 것이 아니라 제품과 디자인이 일체화되는 시대이다. 이제 불변의 복음 진리를 사수하고 전하기 위한 몸부림, 즉 콘텐츠의 재발견과 재해석이 절실한 시점이다.
필자는 작년 1월 스위스의 융 프라우에서 세계 선교단체 지도자들과 전략 회의를 마치고 현대 복음 진리의 솔루션을 찾아 유럽의 청년 부흥의 흔적들을 탐구한 적이 있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 스위스 ‘라브리’이다. 1955년 미국의 프랜시스 쉐퍼 박사는 ‘정직한 질문에 대한 정직한 대답(Honest Question, Honest Answer)라는 깃발을 들고 성경의 절대 진리성을 선포하며 스위스의 산골에서 청년 사역을 시작했다. 죽어버린 유럽의 기독교와 신앙 청년들을 살려낸 것은 쉐퍼 박사의 치열한 고뇌와 깊이 있는 통찰력이었다. 그의 ‘진정성’에 호응해 수많은 젊은이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고 크리스천 지성의 거목들이 자랄 수 있는 생태계가 구축된 것이다.
그 10년 후 미국 성공회의 대천덕 신부는 ‘진리의 실험실’이라는 깃발을 들고 강원도 태백의 산골에서 ‘예수원’을 시작하며 50년 동안 당시 방황하던 수많은 영적 지성인들에게 충격적인 영향력을 끼쳤다. 필자도 그분을 스승처럼 생각하며 따랐던 기억이 있다. 이제 한국교회는 가나안 성도 400만 시대를 살고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 현상이 이탈 성도들의 탈교회화이지 아예 믿음을 떠난 탈기독교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라도 변화해야 산다. 이제 변화하지 않으면 다 죽는다. 그것도 제품과 디자인을 일체화시키는 총체적 변화만이 살길이다.
황성주 이롬 회장
정리=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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