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자연물을 감싸는 스튜디오 포
2024. 1. 4. 02:16
벌레 먹은 잎이나 주인이 떠난 벌집도 작업실 한편에서 하나의 작품이 되기를 기다린다.
「 STUDIO FOH 」
북한산국립공원 끝자락, 산에서 흘러내려온 계곡 옆, 1700년대부터 한자리를 지키고 있는 오래된 벚나무의 옆자리. 포 작가가 5년째 머물고 있는 ‘스튜디오 포’의 공간이다. ‘감싸다’라는 한자 ‘포(包)’에 담긴 의미 그대로 그녀는 여러 가지 자연물을 금속으로 감싸는 작업에 수년째 매진해 오고 있다. 포 작가의 수집품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작은 숲과 바다, 들판이다. “돌과 나뭇잎, 나뭇가지, 조개껍데기, 도토리, 솔방울은 물론 생을 다한 곤충이나 탈피를 마친 마른 고치도 수집해요. 은방울꽃이나 표고버섯, 서양배 같은 촉촉하고 싱싱한 자연물도 좋은 작업 재료죠.”반드시 깨끗하거나 반듯한 것만 수집하지는 않는다. 벌레 먹은 잎이나 주인이 떠난 벌집도 작업실 한편에서 하나의 작품이 되기를 기다린다. 조소를 전공했던 대학시절, ‘재료의 기법’ 수업에서 처음으로 세상의 모든 자연물이 작업 재료가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은 포 작가는 그 후로 줄곧 자연물을 바라보고 탐색해 왔다.
자연물의 색과 촉감에 따라 금과 은 · 황동 · 알루미늄 등 다양한 금속을 고르고 있지만, 그중 주로 변색이 잘되지 않는 주석을 선택한다. 재료의 형태와 질감, 때로는 잎맥과 꽃술 하나까지 모든 것을 고스란히 박제한 자연물은 문진이나 커트러리, 다구, 장신구 같은 오브제로 변모한다. 단순히 금속세공을 아는 것만으로는 이 작업을 이어갈 수 없다. 자연물의 본질을 깨닫고 깊이 있게 접근하기 위해 때로는 식물학과 지질학, 물리학까지 공부해야 한다. 매화와 벚꽃의 꽃잎 색, 바다와 화산 근처의 돌 모양새가 환경에 따라 저마다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포 작가는 가끔 수집 여행을 떠난다. 청송의 계곡과 제주, 기장 바닷가에서 발견하는 자연물은 저마다 뚜렷한 지역색을 지니고 있어 더욱 아름답다. 요즘 포 작가가 좋아하는 자연물은 수피. 수피는 나무의 죽은 조직이 껍질처럼 떨어지는 것인데, 나이테처럼 자연이 만들어낸 패턴이 표면에 가득하다. “자연 그대로의 화석 같은 자연물 앞에서는 나도 모르게 겸손해져요. 오랜 시간을 돌아 운명처럼 제 앞에 놓여 있는 것 같아요.” 표면에 금속을 덧입고 새롭게 재탄생하는 것도 하나의 잎과 돌, 나뭇가지에는 운명 같은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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