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코리아 디스카운트와 대통령의 해법
지난 2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에서는 생경한 풍경이 펼쳐졌다.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윤석열 대통령이 증권·파생상품시장 개장식에 참석해 축사를 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 자본시장 규제는 과감하게 혁파해 글로벌 증시 수준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겠다”며 여러 해법을 제시했다.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 추진에 묻혔지만, 대표적인 게 상법 개정이다. 윤 대통령은 “이사회가 의사결정 과정에서 소액주주의 이익을 책임 있게 반영할 수 있도록 하는 상법 개정 역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현재 한국 상법상 기업 이사들은 회사를 위해서만 직무를 충실히 하면 된다. 회사와 주주의 이익이 일치한다면 문제가 없지만, 대주주의 이익이 회사의 이익으로 포장되거나 대주주의 이익과 소수 주주의 이익이 충돌할 때가 문제다. 물적 분할 후 상장 등이 대표적이다. “기업의 특정한 경영정책이 소수 주주의 비용부담 하에 지배주주의 이익을 보호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더라도 현행 제도 하에서는 이사에 대해 선관주의 의무를 위반했다는 책임을 묻기가 사실상 어렵다”(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런 이유로 행동주의 펀드 등 자본시장 업계에서는 일찍부터 상법 개정 필요성을 제기해왔다. 이창환 얼라인파트너스 자산운용 대표는 “상법 개정이 이뤄진다면 천지개벽 수준의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며 “물적 분할 후 재상장 등 소액주주들에게 손해가 되는 일을 함부로 추진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정부는 자본시장 선진화에 ‘진심’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금융위원회 주도로 물적 분할 시 주식 매수 청구권 도입, 배당 절차 개선 등 제도 개선이 숨 가쁘게 이뤄졌다. 다만 이런 진심과 무관하게 현 정부의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정책은 ‘총선용 포퓰리즘’이라는 의심부터 받고 있다. 공매도 전면 금지와 금투세 폐지 등과 같이 원칙과 일관성 없는 정책을 추진한 후과이다.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한 대통령과 정부의 진심을 알 길은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 상법 개정이 포퓰리즘 논란에 밀려 유야무야 넘어가서는 안 될 일이라는 점이다. 국회에는 이사의 충실의무에 회사의 이익뿐 아니라 주주의 비례적 이익까지 포함하는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개정안이 이미 발의돼 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도 법무부 장관 시절 “방향에 공감한다”는 답을 내놓은 바 있다. 모처럼 진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안효성 증권부 기자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바퀴벌레와 쥐에 둘러싸였다…‘행복론’ 읽던 영어교사 죽음 | 중앙일보
- "웬 돈이야?" 모르는 20만원에 통장 먹통됐다…'핑돈' 공포 | 중앙일보
- 밥 이렇게 먹으면 덜 늙는다, 내 수명 늘리는 ‘확실한 방법’ | 중앙일보
- "이거 맞나요?" 먼저 건배사…'여의도 사투리' 익히는 한동훈 | 중앙일보
- 美대통령이 '형'이라 부른 남자…한국 팔도서 찍고 다니는 것 [더헤리티지] | 중앙일보
- 여친 질문엔 칼거절…年 2조원 버는 스위프트가 반한 남자 | 중앙일보
- 동성커플도 갑을 있다…소녀시대 수영 '레즈비언' 열연한 이 연극 | 중앙일보
- 배우 강경준, 상간남 피소 "왜 이런 일이…뭔가 오해가 있다" | 중앙일보
- 대표 관광지 만장굴마저 폐쇄…이미 113만명 등돌린 제주 비명 | 중앙일보
- '스태프 성폭행' 강지환, 42억 손배소 낸 전 소속사에 승소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