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물 없이 버티는 주민들…잔해 속 차에선 3일째 “빵빵”
“사망자 유해가 발견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땅이 꺼질 듯한 한숨과 흐느낌이 들려왔다. 담요를 몸에 두른 채 구조 현장을 지켜보던 주민 몇몇은 충격을 받은 듯 주저앉았다. 3일 오후 2시, 일본 이시카와(石川)현 와지마(輪島)시의 지진 매몰자 구조 현장. 옆으로 쓰러진 7층 건물 주변으로 접근금지 테이프가 드리워졌고, 안쪽에선 소방대원과 구급대원 수십 명이 오가며 확성기에 대고 고함을 질렀다. 잔해 속에 생존자가 있는지 확인하는 중이었다.
“빵빵!” 경적이 들렸다. 건물 잔해에 깔린 차에서 며칠째 비명처럼 울리는 소리였다. 구급대원들은 붕괴된 건물 잔해 사이에 막대기를 끼워 2m 정도의 틈새를 확보한 후 진입을 시도했지만 파손 정도가 심해 구조작업은 쉽지 않아 보였다.
지난 1일 규모 7.6의 강진이 이시카와현 노토(能登)반도를 덮친 지 만 이틀이 지나면서 피해지 곳곳에선 생존자 구조 및 복구작업이 진행 중이다. 이날 오전 와지마시로 들어가는 도로 입구에는 산사태가 발생해 포클레인이 도로를 막고 있었다. 구급차 등 긴급 차량이 아니면 통과할 수 없어 기자 일행도 불과 수㎞ 거리를 두 시간 이상 돌아서야 현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3일 오후 7시 기준 이번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는 73명, 부상자는 이시카와현과 인접 지역을 포함해 총 370명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중상을 입은 사람이 상당수인 데다 노토반도 곳곳의 외진 산골마을엔 아직도 구조대가 진입조차 하지 못해 사망자 수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생존자 구조의 ‘골든타임’으로 불리는 72시간까지는 채 하루도 남지 않은 상황.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는 3일 기자회견에서 “무너진 건물 아래에서 구조를 필요로 하는 피해자가 약 130명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며 “피해자 구조는 시간과의 싸움”이라고 말했다.
이번 지진으로 집을 떠나 피난소에 머무르는 이재민 6만여 명도 열악한 환경 속에서 계속되는 여진으로 공포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전날 밤 기자가 도착한 와지마 시립 몬젠니시(門前西) 소학교(초등학교)는 불빛 하나 없이 캄캄했다. 이시카와현에선 지진 후 3만3800가구에 전기 공급이 끊겼고, 9만5000가구가 단수 상태다.
이 학교 교실과 체육관에 마련된 대피소엔 인근 마을 주민 120여 명이 모여 있었다. 불쑥 찾아온 외국 기자들에게 곤란해하면서도 “물이 끊겨 화장실 사용이 불편한데 괜찮겠느냐”며 기꺼이 공간을 내줬다. 주민들이 건네준 박스와 비닐을 들고 농구대 아래쪽에 자리를 잡았지만 한 시간에도 두세 번 “쿠르르르” 땅이 울리면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오전 2시55분엔 커다란 흔들림이 느껴지면서 “지진 발생! 대피하십시오!” 휴대폰 경고음이 대피소에 울려 퍼졌다. 지난 1일 오후 4시부터 3일 오후 4시까지 노토반도에서 진도1 이상 지진이 521회 발생했다.
새벽 6시가 되자 주민들이 하나둘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학교 수영장의 물을 길어와 2층에 있는 화장실용 용수로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몇몇 주민은 만두가 들어간 된장국과 주먹밥을 들고 와 나눠주기 시작했다. 오사카(大阪)에서 지진 소식을 듣고 부모님이 살고 계신 이시카와로 달려왔다는 20대 여성 나카구치는 “비상용으로 비축해 둔 음식이 있어 그나마 견딜 수 있는 상황이지만 물과 먹을거리가 많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김현예 특파원 hykim@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바퀴벌레와 쥐에 둘러싸였다…‘행복론’ 읽던 영어교사 죽음 | 중앙일보
- "웬 돈이야?" 모르는 20만원에 통장 먹통됐다…'핑돈' 공포 | 중앙일보
- 밥 이렇게 먹으면 덜 늙는다, 내 수명 늘리는 ‘확실한 방법’ | 중앙일보
- "이거 맞나요?" 먼저 건배사…'여의도 사투리' 익히는 한동훈 | 중앙일보
- 美대통령이 '형'이라 부른 남자…한국 팔도서 찍고 다니는 것 [더헤리티지] | 중앙일보
- 여친 질문엔 칼거절…年 2조원 버는 스위프트가 반한 남자 | 중앙일보
- 동성커플도 갑을 있다…소녀시대 수영 '레즈비언' 열연한 이 연극 | 중앙일보
- 배우 강경준, 상간남 피소 "왜 이런 일이…뭔가 오해가 있다" | 중앙일보
- 대표 관광지 만장굴마저 폐쇄…이미 113만명 등돌린 제주 비명 | 중앙일보
- '스태프 성폭행' 강지환, 42억 손배소 낸 전 소속사에 승소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