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유대 시위에 모호한 대응 논란…하버드대 첫 흑인 총장 최단기 사임
“샐리(미국 MIT대 총장)는요?”
지난 2일(현지시간) 미국 하버드대 클로딘 게이 총장의 자진 사임 소식에 유대계 혈통의 ‘헤지펀드 큰손’ 빌 애크먼 퍼싱스퀘어 캐피털 회장이 소셜미디어 글을 통해 보인 반응이다. 게이 총장 사임은 지난해 12월 하원 청문회 출석 당시 학내 반(反)유대주의 움직임에 대한 대처가 미온적이었다는 이유로 퇴출 압박을 받아온 명문대 총장 세 명 중 펜실베이니아대(유펜) 전 총장 엘리자베스 매길에 이은 두 번째 낙마다. 논란에 휩싸였던 총장 셋 중 애크먼 회장이 거론한 샐리 콘블루스 MIT대 총장만 남은 셈이다.
게이 총장은 이날 공개서한을 통해 “구성원들과 협의한 결과 내가 사임하는 게 학교를 위해 최선이라는 게 분명해졌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 공동체의 유대를 훼손하는 긴장과 분열을 목격하는 것은 고통스러웠다”며 “인종적 적개심에 기반한 인신공격과 위협을 받는 것은 두려운 일이었다”고 덧붙였다.
게이 총장은 아이티 이민자 가정 출신으로 지난해 7월 하버드대 최초의 흑인 총장이자 두 번째 여성 총장으로 선임됐다. 하지만 5개월여 만에 물러나면서 1636년 하버드대 설립 이래 ‘최단명 총장’이 됐다. 하버드대는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에 비판적 시각을 보여 온 앨런 가버 교무처장을 임시 총장으로 임명했다.
이번 일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이후 캠퍼스 내 반유대주의 시위에 학교 측 대응이 소극적이었다는 비판이 일면서 촉발됐다. 지난해 12월 5일 하버드대 게이 총장, 유펜 매길 전 총장, MIT 콘블루스 총장이 하원 교육·노동위원회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이들은 ‘유대인 학살’을 외치는 일부 학생들이 대학 윤리규범을 위반했냐는 질문에 “상황에 따라 다르다”는 다소 모호한 답변을 해 친유대계와 보수층의 반발을 불렀다. 게이 총장은 당시 “하버드대는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인정한다”고 답했다.
이후 친유대계를 중심으로 총장 퇴임 운동이 거세게 일었고 가장 먼저 매길 전 총장이 나흘 만인 12월 9일 자진 사임했다. 게이 총장 역시 퇴진 요구가 불붙었지만 하버드대 교수·교직원 수백 명이 지지 탄원서를 내 감쌌고, 하버드대 이사회가 재신임 방침을 밝혀 위기를 넘기는 듯했다. 그러나 연구 부정행위 의혹에 이어 최근 박사학위 논문 표절 의혹이 추가로 제기되면서 더는 버티기 힘들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이번 사태의 배후에는 애크먼 회장의 집요함이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애크먼 회장은 게이 총장 해임을 촉구하는 서한을 이사회에 보내기도 했다. 1966년생으로 하버드대 사회학과 및 같은 대학 MBA 출신인 그는 모교에 수천만 달러를 기부하며 입김을 행사해 왔다.
하버드대 구성원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일부 교수들 사이에선 “대학의 독립성에 전쟁을 선포했다” “우리는 공개적인 사냥을 당했다” 등 반발이 나왔다. 반면 하버드대 유대인 동문회는 “많은 유대인이 하버드에서 공부하고 신분을 밝히는 것이 안전하지 않다고 느낀다. 게이 총장은 그런 증오를 퍼뜨리는 사람들을 암묵적으로 부추겼다”며 환영했다.
워싱턴포스트는 “게이 총장 사임 여파로 언론의 자유, 학교의 다양성, 이 나라 교육을 누가 만들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전국적인 논쟁이 격화됐다”고 보도했다.
워싱턴=김형구 특파원 kim.hyoung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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