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사냥? 게임 업계에서 불붙은 성차별 논란
새로이 불을 지핀 것은 넥슨의 게임 〈메이플스토리〉의 홍보 영상 속 캐릭터가 이 손가락 모양을 표현했다는 남초 커뮤니티의 주장이었다. 해당 작업을 수주한 하청 회사의 여성 작업자가 그 손가락 모양을 몰래 넣었다는 것이다. 사태가 터지자마자 넥슨은 하청 회사에게 사과문 작성을 종용하고 겁박을 해왔다. 그러나 〈경향신문〉의 취재 결과 해당 작업물들은 모두 남성 작업자들의 손으로 탄생한 것이며, 넥슨의 검수를 거쳐 공개된 것이었다. 그럼에도 넥슨은 침묵하고 남초 커뮤니티는 계속해서 억지 주장을 늘어놓고 있다.
손가락 광란이 본격화된 것은 2021년 GS 편의점 포스터 사태였다. 소시지를 집으려는 손가락 그림을 보고 이것이 ‘남혐’의 상징이라며 남초 커뮤니티가 들썩인 이후 일부 언론은 신나게 그 이야기를 ‘논란’이라며 퍼 날랐고, 20대 남자를 대변한다던 어떤 정치인은 손가락 모양의 도안을 쓴 것에 대해 ‘합리적’인 의심을 표했다. 해당 기업은 담당자들에게 아무 이유 없는 징계를 내리는 것으로 이 사태를 봉합하고자 했으나, 잘못 꿰어진 첫 단추 덕분에 한동안 다른 기업과 기관들에 남혐 손가락 ‘민원’이 빗발쳤다. 그중 가장 압권은 전쟁기념관이 2013년(메갈리아 사이트가 생기기도 전이다)에 설치한 그림을 철거하며 사과한 일일 것이다.
문제를 제기하는 쪽의 주장은 그 손가락 모양이 한국 남성의 성기 크기를 조롱하는 ‘혐오 표현’이고, 사회에 암약하고 있는 페미니스트들이 이곳저곳에 몰래 숨겨둔 메시지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인간종의 진화와 인류의 역사, 그리고 모든 종교와 사회체제와 예술들 속에서 그 손가락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고, 그 모든 것이 한국 남성들의 작은 성기를 조롱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이미 사라졌지만 남초 커뮤니티에 의해 영생을 누리고 있는 ‘메갈리아’는 2015년 메르스 국면에서 자행된 여성 혐오에 대항해 생겨났고, 온·오프라인의 다양한 성차별에 대항하다가 1년이 안 돼 문을 닫은 페미니즘 성향의 커뮤니티다. 여전히 많은 남초의 구성원들은 그들이 뒤에서 세상을 조종하는 그림자 정부라는 망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이해가 안 가는 것은 하필이면 페미니스트들이 하려는 일이 그 손가락 모양을 이곳저곳에 몰래 숨겨두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베의 선례를 살펴봐야 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일베는 극우 성향의 온라인 커뮤니티로 많은 남초 커뮤니티조차 선을 긋는 곳이다. 그리고 일베가 행했던 기행 중 하나가 기업과 단체들의 CI를 비롯한 수많은 이미지에 일베 로고를 티 나지 않게 합성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지상파 뉴스를 포함한 많은 곳에서 이런 이미지를 잘못 사용하는 일이 연이어 발생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일베를 비판하는 커뮤니티들은 숨은 일베 표식 찾기를 중요한 활동 중 하나로 삼았다.
그런데 생긴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메갈리아는 남초 커뮤니티에서 순식간에 일베와 같거나 더 사악한 존재가 됐다. 대부분의 한국 남초 커뮤니티가 여성 혐오와 반페미니즘을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미러링을 통해 여성 혐오를 거울처럼 되돌려주었던 메갈리아의 대항 행동은 큰 마음의 상처를 줬다. 이렇게 만들어진 ‘메갈≥일베’의 도식은 페미니스트도 일베처럼 상징을 이곳저곳에 숨기길 원할 것이라는 억측을 불러왔다. 그 결과가 오늘날 아무 손가락에나 가서 분통을 터트리는 기괴한 광경이다.
물론 일베는 자신들의 표식 숨기기를 적극적이고 의도적으로 행했다. 이는 공공장소에서 나치즘을 상징하는 하켄크로이츠 같은 것을 의도적으로 사용하는 행위와 비슷한 것으로, 일종의 혐오 행위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목록에 메갈리아의 손가락이 들어가기 위해서는 메갈리아와 페미니즘이 남자들을 대상으로 차별과 폭력을 휘둘렀던 억압의 역사 정도는 있어야 한다. 현실은 단지 머리가 짧다는 이유만으로 “페미는 맞아야 한다”며 생면부지의 남성에게 폭행당하고, 꼬리 자르기에 급급한 기업들 때문에 직업을 잃을 위기에 처한 여성들이다.
한편 이런 흉흉한 일들이 게임업계를 중심으로 반복되는 이유도 생각해봄 직하다. 우선 기본적인 배경으로는 게임이 여전히 남성 위주의 산업이라는 점이다. 여성의 게임 이용률은 계속해서 높아지고 있지만, 더 열성적으로 게임에 돈과 시간을 쏟아붓는 쪽은 남성들이고, 한국의 게임 산업 역시 여전히 남자들만을 고객으로 여기고 있다. 게다가 한국 게임업계 종사자의 성비는 약 7:3으로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고, 의사 결정 권한을 갖고 있는 관리직이나 임원급에서 여성의 비중은 20%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까지 포함하면, 한국의 게임업계가 이런 종류의 책동에 제대로 대처할 수 있을 가능성은 매우 낮아진다. 현실은 작금의 사태에서 보다시피 더 밑바닥이다.
안타깝게도 업계가 급한 불을 끄기 위해서든 혹은 그 스스로가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서든 이런 억지 주장에 굽힌다고 해서 이 책동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별다른 위험부담도, 비용도 없이 몇몇 게시판과 고객센터를 약간 시끄럽게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이토록 많다면, 더 많은 억지 주장을 펼치며 트집 잡지 않을 이유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이런 사회적으로 무용한 행동들의 가장 큰 동인은 영향력을 과시하고 그로부터 효능감을 얻는 것인데, 게임업계가 섣불리 던져준 먹이들은 너무 크고 기름졌다. 이번 사태에 대해 "맹목적으로 타인을 혐오하는 데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고 몰래 드러내는 데 희열을 느끼는 사람들에 단호히 반대한다“라는 넥슨 고위 관계자의 메시지는 향해야 할 곳의 반대 방향을 겨누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스스로도 겨누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성차별과 이성애 중심주의가 결합돼 있는 사회에서 여성을 성적으로 만족시키는 능력은 개인과 사회의 차원 모두에서 남성성의 중요한 요소로 여겨지며, 그것을 위해서는 커다란 남성기가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수많은 남성이 손가락에 발작적인 반응을 일으키는 이유다. 과거 남성과 여성의 관계는 섹스를 통해 종결됐고 여성은 남성의 소유가 됐다. 하지만 오늘날 섹스는 소유도 종결도 아닌 섹스일 뿐이다. 또 남성기의 삽입과 여성의 성적 만족 사이의 관계 역시 희미해진 지 오래다. 손가락은 그러한 관계 속에서 이성애자 남성들이 느끼는 불안의 상징과도 같다. 여성은 대등한 경쟁자로, 만족시킬 수 없는 존재로, 그래서 나를 좌절시키는 존재로 나타난다.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변화와 적응 대신에 온갖 해괴한 방법으로 여자들을 탓하기로 선택한 결과, 여자들은 매우 합리적으로 남자들과 상대하지 않기를 택하고 있다. 2022년에 진행된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혼 남성의 53%가 동년배 이성과 같이 있고 싶다고 답한 데 반해 미혼 여성은 21%만이 그렇다고 답했다(한국갤럽, ‘결혼과 양육 저출생 관련 인식’). 이 집단적 광증에 차도가 없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간극은 커질 것이다.
손가락 사냥 같은 최소한의 논리도, 명분도, 의미도 없는 행위를 용인하는 것은 사회의 붕괴를 가속화한다. 손가락의 자리에는 그 무엇도 올 수 있고, 결국에는 어떤 표현이나 생각도 이 광적인 마녀사냥과 검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 난장판을 각자의 불운으로만 여겨서는 안 된다. 부끄럽게도 이곳이 우리 문명의 시험대다.
Writer_최태섭
문화 평론가이자 사회학 연구자. 대학에서 문화, 젠더, 섹슈얼리티, 계급을 중심으로 연구와 저술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지은 책으로 〈한국, 남자〉 〈모두를 위한 게임 취급 설명서〉 〈잉여사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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