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게 결혼해 애 낳아라? 정부의 위험한 '동거혼'

황두영 2024. 1. 3.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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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의 '등록 동거혼'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 ①

[황두영 기자]

 2023년 12월 27일 자 <조선일보> "프랑스처럼 동거커플도 가족 인정 추진" 기사
ⓒ 조선일보
 
<조선일보>의 12월 27일 보도에 따르면,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이하 저출산위)가 '등록 동거혼'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동거하는 남녀에게도 가족 지위를 인정해 법적 권리와 복지 혜택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12월 26일, 윤석열 대통령이 저출산 문제에 대해 "원인과 대책에 대해 그동안과는 다른 차원의 고민을 해야 한다"고 말한 뒤에 이어진 소식이다.

나는 국회에서 처음 생활동반자법을 입안했다. 그리고 책 <외롭지 않을 권리>를 통해 입법 필요성을 설명했다. 생활동반자법은 혼인이나 혈연 관계가 아니더라도 같이 살며 서로 돌보는 성인 두 명이 국가에 관계를 등록하면, 함께 사는 데 필요한 법적 권리와 복지 혜택을 주도록 하는 법이다.

책 출간 이후 생활동반자법은 마침내 국회에서 첫 발의가 되었다. 법제사법위원회 법안 심사 과정에서는 많은 민주당 의원들이 필요성에 공감하기도 했다.

현행법에서는 혈연이 아닌 사람과 가족을 만들 방법이 혼인밖에 없다. 법적으로는 성인 간 양자 입양이 가능하긴 하지만 대등한 관계 형성이라고 보긴 어려울 것이다. 거기에다가 '혼인'을 단순히 행정적 신고가 아닌, 자격시험을 통과한 특정 연령대끼리의 결합으로 여기는 사회 문화까지 합쳐지면서 우리 사회에서 법적으로 인정받고 보호받는 가족이 되기 위해서는 까마득하게 높은 장벽을 넘어야 한다.

이런 가족 구성의 장벽은 '정상가족'이 아닌 가족을 차별하면서, 사람들이 함께 살도록 장려하기보다는, 오히려 서로 돌보며 함께할 의사가 있는 사람들끼리도 함께 살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1인 가구가 가장 흔한 가구 형태가 된 지 오래며, 아무런 법적 보호 없이 동거하는 '비혈연 가구'도 100만 명은 넘어섰다. 특히 가난하고 빈곤한 노인·중년 1인 가구의 폭증은 고독사 등 생존권의 문제로까지 이어진다. 또 사회복지 재정에도 밑 빠진 독이 되고 있다.

생활동반자법 등 대안적 가족 구성 제도를 반대해 온 윤석열 정부에서도 어쨌든 가족 구성의 장벽을 낮추는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한 건 그만큼 이 문제가 심각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나는 윤석열 정부의 등록 동거혼 도입 추진이 일단은 반갑다. 굳고 굳어진 가족 정상성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보수 정부에서도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만으로 말이다. 시대의 변화에 밀리고 밀려 어쩔 수 없이 나온 것이지만 말이다. 이 변화는 결코 윤석열 정권이 원하는 수준에서 멈추지 않을 것이다. 가족이란 무엇이고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런 전망을 갖고 반가워하기는 하지만 등록 동거혼은 올바르지도 않고 효과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위헌적이다. 정부의 공식 발표가 아닌 <조선일보>를 통한 단독 기사가 나온 것이라 정부의 구체적 안이 무엇인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보도에 따르면, 기존 결혼보다 합치고 헤어지는 게 쉽다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배우자 가족과 인척 관계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현행 가족관계등록부에 기재하지 않는 별도의 관계등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커플은 각자의 재산을 별산으로 관리하고, 동거 중 아이가 태어나도 동거 커플 사이의 자녀로 자동으로 간주되지 않기 때문에 친권과 양육권을 갖지 않는다. 또 커플 중 한 명이 원할 경우 관계를 끝낼 수 있는데, 공동형성 재산이나 연금 수급권 등에 대한 재산 분할 요청도 할 수 없다.

[문제1] 남성이 양육 책임 회피할 가능성

등록 동거혼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짚기 전에, 세부적이지만 중요한 문제점들을 우선 지적하자. 우선, 둘 사이에 태어난 아이에 대해 남성의 친권과 양육권을 자동으로 인정하지 않는 문제, 즉 '친생자 추정'을 적용하지 않는 문제다. 등록 동거혼은 명확히 남녀 간의 성애적 관계를 전제하고 저출산 해결이 목적인 제도이기 때문에 양육 책임은 이 제도에서 핵심적 부분이다. 등록 동거혼은 일방적 해소가 가능한 제도인데, 남성의 친생자 추정을 적용하지 않으면 남성이 양육 책임을 회피하기가 지나치게 쉽다. 이 경우 여성이 양육 의무를 온전하게 떠맡게 된다. 일방적으로 관계를 해소하고 떠난 남성을 찾아, 그의 친자임을 입증해야만 양육비 등 의무를 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여성, 즉 엄마의 권리가 침해될 뿐더러, 아동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학대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또 지금도 함께 살지 않는 부모가 양육비를 안 줘서 행정력이 소모되는데, 등록 동거혼에서는 행정력 낭비도 더 심해질 것이다. 차라리 한부모 가족 지원 정책을 보강하고, 혼외 출산 전체에 대한 지원 체계를 갖추는 게 더 현실적이다.

물론 생활동반자법에서도 생활동반자 중 한 사람이 아이를 낳아도 생활동반자 상대에게 자동으로 양육권과 친권을 부여하진 않는다. 하지만 생활동반자법은 애초에 성애적 관계에만 한정된 제도가 아니라, 비성애적인 친구나 돌봄 관계에도 적용되며 동성 간에도 맺을 수 있는 제도다. 그렇기에 당연히 '친생자 추정'을 적용할 수가 없다. 하지만 애초에 출산을 전제로 한 등록 동거혼에서 친생자 추정을 빼는 건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2023년 10월 25일 오후 서울의 한 구청 민원실에 출생신고서가 비치되어 있다.
ⓒ 연합뉴스
[문제2] 여성의 재산권이 침해될 가능성

둘째로 '재산분할'의 문제다. 민법 제정 이전 그리고 민법을 만들고도 꽤 오랜 기간 이혼 시 재산분할권은 실질적으로 없었다. 여성은 그냥 남성이 떼어주는 만큼 받고 집을 나가야만 했다. 여성이 경제활동을 하지 않고 가사와 양육, 돌봄 노동만 하기 때문에 여성의 노동은 재산 형성에 전혀 기여하지 않는다고 여겨져 왔다. 재산분할 제도의 발전은 여성의 몫, 여성의 가사노동을 인정받기 위한 투쟁의 역사다. 가사노동과 재생산 활동을 한 배우자도 재산 형성에 같이 기여한 것이라고 점차 법이 바뀌어 왔다.

등록 동거혼에서 재산분할권을 인정하지 않으면, 여성의 재산권이 심각하게 침해될 가능성이 크다. 여성의 경제활동이 보편화되고 남성도 가사노동을 분담하는 만큼 공동형성 재산에 대해 분할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남성과 차별 없이 임금을 받는 여성노동자는 매우 적고, 여성의 가사노동 시간은 남성보다 훨씬 많다. 성별 임금 격차와 가사노동 시간 차이는 명확한 통계상 사실이다.

특히 출산 양육의 단계마다 많은 여성이 노동 시장에서 탈락하고 양육을 전담하게 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더더욱 현재의 출산 양육 환경을 이해하지 못한 정책 방향이다. '재산분할'이 없는 가벼운 혼인은 여성들이 출산을 더 꺼리게 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피켓 시위 중인 양육비해결총연합회 이영 회장
ⓒ 양육비해결총연합회
 
양육비와 재산분할 권리까지 날리면 

무엇보다 등록 동거혼과 기존 혼인의 차이는 무엇인지를 물어야 한다. 법적으로 별도의 명부로 관리한다는 것 외에 제도의 수용자, 즉 가족을 만들고자 하는 국민 입장에서 차이점이 명확하지 않다. 일단 제도 명칭에 '혼일할 혼'자를 써 놓고는 혼인이 아니라고 하니 헷갈린다. 기존 민법상 법률혼도, '등록하고', '동거하는', '혼인'인데, 그거랑 별도로 등록하고 동거하는 혼인인데 법률혼은 아니라니, 대체 여집합이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

여권에서 등록 동거혼을 처음 거론한 나경원 전 저출산위 부위원장은 "등록동거혼은 계약이고, 법률혼은 혼인"이라고 설명한다(2023.12.19. JTBC 유튜브 라이브 <장르만 여의도>). 근데 혼인도 분명히 일종의 계약이고, 민법에 따라 명확한 계약조건들이 있다.

결국은 무언가 획기적인 대책을 내놓은 느낌만 주는 말장난일 뿐이다. 기존 법률혼과 가장 큰 차이점은 일방적 해소가 가능하다는 점뿐이다. 미국법에서의 이혼처럼 '파탄주의'를 도입하는 것이다. 이것으로 관계를 시작할 장벽이 다소 낮아진다고 볼 수 있으나, 파탄주의에서는 해소에 동의하지 않는 상대방의 권리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가 훨씬 중요하다. 파탄주의를 도입하면서 동시에 양육비 지급, 재산 분할 등의 권리까지 같이 날려버리면 대체 어쩌잔 말인지 모르겠다.

결혼이든 동거든, 둘 사이의 관계가 어떻게 공정하고 평등하게 이뤄지도록 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법률혼이 무거워? 그럼 이것저것 다 빼고 가볍게 만들어줄게'라는 사고방식으로는 실제로 국민의 권리를 지킬 제도를 만들 수 없다. 대입 경쟁이 너무 심하니 학벌과 상관없이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대신, 킬러문항을 빼버리겠다는 어이없는 해답을 내놓았던 것처럼, 법률혼의 무엇이 국민을 어렵게 하는지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은 전혀 없는 언 발에 오줌누기 식 대안에 불과하다.

- 2편 <아기 낳을 남녀에게만 집착하니 이런 대책이>(https://omn.kr/26xyr)로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황두영은 더불어민주당 서울 서대문갑 국회의원 예비후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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