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 신기록 잔치 벌이지만…사람만 붐빌 뿐, 웃지 못하는 백화점 3사
연말 연초 국내 주요 백화점이 매출 신기록을 써 내려가고 있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이하 신세계 강남점)이 2023년 연매출 3조원을 돌파한 것을 비롯 롯데, 현대백화점에서도 매출 신기록을 낸 점포가 나왔다. 그러나 자화자찬 속 백화점업계 속내가 편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고물가, 고금리 장기화로 소비 심리가 잔뜩 얼어붙는 가운데 고정비가 증가하면서 이익률은 뚝뚝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롯데·현대 등도 매출 신기록
국내 백화점업계에 매출 신기록이 쏟아진다.
최근 신세계 강남점은 2023년 연매출 3조원을 돌파했다. 단일 점포로 매출 3조원을 달성한 것은 국내 백화점 중 처음이다. 단일 점포 기준 매출 3조원은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신세계 강남점은 전국 각지 고소비층을 대상으로 매출 3조원을 달성했다는 점에서 기존 백화점 성공문법과 구분된다. 신세계 강남점은 매출 3조원의 절반 정도가 서울 외 지역에서 나왔다. 처음 문을 연 2000년 당시만 해도 신세계 강남점은 압구정 현대백화점에 밀릴 것이라는 관측이 다수였다. 서울 고속버스터미널과 지하철 3·7호선 등이 연결돼 집객 효과는 뛰어나지만 강남권에서 상대적으로 낙후된 이미지가 약점으로 지목됐다. 고급 백화점으로 포지셔닝하기에는 한계가 따를 것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2000년대 후반 반포 일대 재건축으로 소비력 있는 고객층이 급증하면서 반전 드라마가 시작됐다. 2008년 에르메스, 2010년 샤넬 등이 입점한 데 이어 2012년 신세계가 센트럴시티 지분을 확보해 고속터미널 전체를 ‘신세계타운’으로 개발하면서 고급화 전략에 가속이 붙었다.
‘충성 고객’이 많은 점도 차별점이다. 2023년 신세계 강남점 구매 고객 가운데 절반은 VIP로 분류되는 신세계백화점 멤버십 블랙 등급(연간 800만원 이상 구매) 이상 고객이다. 다른 점포 VIP 고객 비율(평균 35.3%)보다 15%포인트가량 높다.
롯데백화점에서는 에비뉴엘 잠실점이 명품관 단일점 기준 2023년 국내에서 처음 매출 1조원을 달성할 전망이다.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본점도 2022년 매출 1조9343억원을 올린 데 이어 2023년 매출 2조원 첫 돌파가 확실시된다. 현대백화점은 여의도 더현대 서울이 2023년 12월 2일 기준 연매출 1조원을 달성했다. 문을 연 지 2년 9개월 만의 기록이다. 더현대 서울은 ‘에루샤(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로 상징되는 명품 브랜드 없이 2030세대를 중심으로 연매출 1조원을 달성했단 점에서 주목받는다.
돌파구 못 찾는 이커머스
매출 신기록 잔치를 벌이지만 국내 백화점업계에는 고민거리가 산적해 있다. 매장에 사람이 넘쳐나지만 정작 손에 쥐는 이익은 쥐꼬리만 한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이런 현상은 2023년 3분기 실적에서 엿볼 수 있다. 롯데백화점은 2023년 3분기 영업이익이 740억원으로 전년보다 32% 줄었다. 같은 기간 신세계백화점 영업이익(928억원)은 전년 대비 15%가량 줄어 11분기 연속 성장 달성이 불발됐다. 신세계백화점은 2023년 2분기까지 10분기 연속 성장세를 보였다. 2023년 3분기 현대백화점 영업이익은 798억원으로 전년보다 17% 줄어 3분기 연속 영업이익 감소세다.
시장에선 코로나 팬데믹 저금리 때 명품 소비를 지렛대 삼아 팽창했던 백화점 성장률이 기존 추세로 제자리를 잡는 과정으로 본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백화점업계 연평균 매출 성장률은 2015~2019년 1%대에 불과했으나 2021년 23%, 2022년 12%로 이전 추세선을 뛰어넘어 고성장했다. 이익률이 높았던 명품 매출 감소가 뼈아픈 대목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롯데·현대·신세계백화점 해외 유명 브랜드(명품)의 전년 동월 대비 매출은 2023년 8월 7.6% 역성장한 데 이어 9월(-3.5%)과 10월(-3.1%)에도 뒷걸음질 쳤다. 2023년 명품 매출은 1월을 포함해 4번 역성장했다.
문제는 오프라인과 온라인 채널 양쪽에서 뾰족한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유통 환경이 급변하면서 경쟁 우위 가변성이 심화하고 기존 경쟁 우위의 수명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백화점업계에서 전통적으로 경쟁 우위로 지목된 요인은 입지와 브랜드, 딱 두 가지다. 좋은 입지를 선점하면 막대한 집객 효과로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고 이를 지렛대 삼아 차별화된 브랜드를 유치했다. 백화점업계 경쟁이 가열된 이후에는 입지 하나만으로 차별적인 포지셔닝이 힘들어졌고 독점적 지배력을 가진 브랜드 유치에 사활을 걸었다. ‘에루샤’ 등 명품 브랜드를 독점 유치하는 전략은 백화점업계 성장에 버팀목이 됐다. 1인당 GDP 3만달러를 돌파하자 명품 소비력이 확대됐고 고객들은 럭셔리 브랜드 제품 구매를 위해 백화점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 팬데믹 때는 강력한 경쟁자인 면세점 채널이 무너진 반사이익도 누렸다.
팬데믹 과정에서 한껏 높아진 명품 의존도는 엔데믹 이후 부메랑으로 돌변했다. 인플레이션과 고금리 장기화로 소비 심리가 위축되면서 명품 수요가 급감했고 해외여행 재개로 소비 채널은 면세점 등으로 분산됐다. 경영 환경이 급변하면서 기존 경쟁 우위가 무력화됐다.
활로를 모색하던 백화점업계는 ‘더현대 서울’ 모델에 주목한다. 고객 경험을 기반으로 공간을 재구성해 매장 체류 시간을 늘리고 2030 중심 차별화된 브랜드를 유치하는 전략이다. 더현대 서울 모델은 외형적으로는 성공을 거뒀다. 단일 매장으로 단기간 매출 1조원을 기록한 것을 어떤 잣대로도 폄하하기는 힘들다. 현대백화점은 서울 목동, 판교, 대구 등으로 똑같은 방식을 이식했다. ‘더현대 서울스럽게’ 매장을 리뉴얼하는 방식은 백화점업계에서 유행처럼 확산했다. 경쟁 기업 신세계와 롯데도 팝업스토어, 영패션 브랜드 강화 등으로 벤치마킹했다.
더현대 서울 모델을 두고 객단가(고객 1인당 소비 금액)가 낮다는 꼬리표가 따라다녔으나 최근 현대백화점 측은 이례적으로 10만원대 객단가를 공개하며 세간의 논란을 불식시키는데 주력했다.
국내 이커머스 산업은 쿠팡이 사실상 지배적 사업자로 등극해 단기간 돌파구를 찾기 쉽지 않은 구조가 됐다. 신세계와 롯데 등은 그룹 곳간 사정이 빠듯해지면서 부동산을 비롯한 유형자산 유동화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이는 거꾸로 이커머스 부문에서 공격적인 성장 전략을 펼치는 데 장애물로 작용한다는 지적이다. 온라인 채널 성장으로 오프라인 매장 입점 수요가 줄면 유형자산 가치 하락으로 리츠 등 자산 유동화에 차질을 빚는다. 최근 쿠팡이 명품 플랫폼 ‘파페치(Farfetch)’ 인수에 나선 것도 백화점 업계에는 위협 요인이다. 쿠팡은 가전, 공산품에 비해 약점으로 꼽히던 패션 부문 경쟁력 강화를 벼르고 있다. 명품 시장에서 백화점과 사활을 건 경쟁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41호 (2024.01.01~2024.01.0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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