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소 살피다 ‘번뜩’ 체온 솔루션 개발…희귀 질환 신생아 살리려 ‘AI 진단’ 도전

최창원 매경이코노미 기자(choi.changwon@mk.co.kr) 2024. 1. 3.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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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보! 인생 2막, 4050 창업자들] 유형 (1) 기술 창업

중장년 창업은 ‘양날의 검’이다. 그간 축적한 역량과 경험과 자산은 분명한 무기다. 하지만 실패 시 재기가 어렵다는 점은 큰 리스크다. 중장년 창업 대부분이 전문성과 무관한 자영업에 몰린 배경이다. 상대적으로 낮은 리스크에 끌린 것이다. 그러다 보니 혁신을 목표로 한 ‘기술 창업’ 대부분은 청년들의 몫이었다.

창업 세계 속 일종의 고정 관념을 깨뜨린 이들이 있다. 기술 창업에 뛰어든 4050 중장년층이다. 이들은 수십 년 한 우물을 판 특정 분야 최고 권위자들이다. 다만 ‘전문성’ 하나만으로 기술 창업 성공을 기대하고 도전장을 내민 것은 아니다. 이들은 어떤 요소를 가미해 기술 창업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

본업 속 개선점이 창업 아이템으로

농장 수익 직결 ‘폐사율’ 관리 눈떠

기술 창업 성패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 중 하나는 ‘인사이트’다. 말은 거창하지만 특별한 건 없다. 기존 산업에서 부족한 부분을 찾아내고, 어떻게 채워낼지 대안을 제시하는 게 중요하다는 의미다. 특정 분야에서 오래 일한 중장년층은 확실한 인사이트를 갖고 있다. 당장 어떤 부분이 약점이고, 개선할 지점인지 몸으로 느껴왔기 때문이다.

축산 ICT 전문 기업 ‘팜프로’의 박병옥 대표는 이를 제대로 활용한 중장년층 창업자다. 박 대표는 과거 15년 이상 축산 농장을 운영한 농장주였다. 매일 아침 농장을 찾아가 아픈 소나 발정한 소가 있는지 살피는 게 일과였다. 그러던 박 대표 눈에 국내 축산 산업 문제점들이 보였다. 소의 건강을 지키고, 번식을 잘 유도할 방법이 마땅찮았다.

박 대표는 당시를 떠올리며 “자유무역협정(FTA) 등 외부 요인들이 농장을 위협한다는 말이 많았는데, 사실 진짜 문제는 내부에 있었다. 국내 송아지 폐사율이 연간 25~30%에 달했고 수정률은 40%를 넘지 못했다. 두 가지 요소가 농장 수익과 직결되는 구조인데, 덮어두고 방치했던 꼴”이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해결 방안을 찾아 나섰다. 고민 끝에 떠오른 게 체온 측정 솔루션이다. 박 대표는 “사람도 아프면 병원에 가서 체온을 측정한다. 이런 방식을 가축에 적용하면 어떨까 싶었다”면서 “실시간 체온 변화와 활동량 변화를 체크하는 솔루션이 떠올랐고 개발자들을 구해 2018년 창업까지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게 팜프로의 ‘전자 이표(Ear Tag)’다. 전자 이표는 소의 체온과 활동량을 10분 단위로 실시간 수집해 분석한다. 농장주는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가축을 관리할 수 있다. 팜프로에 따르면 전자 이표 사용 후 생후 6개월 이내 송아지 폐사율이 10분의 1로 줄었다. 최근에는 해외 진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뉴질랜드와도 시범 농장 MOU를 체결하는 등 협업 중이다. 박 대표는 “축산 선진국인 뉴질랜드에서 인정받으면 세계 어디에서나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이라며 “축산 ICT 시장은 아직 초기 단계인 만큼 제품과 서비스 개발 역량을 키워나가겠다”고 밝혔다.

지능형 로봇 서비스 기업 클로봇의 김창구 대표도 본업으로 얻은 인사이트를 창업에 활용한 케이스다. 약 8년 동안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지능로봇사업단에서 서비스 로봇을 개발하던 김 대표는 로봇 산업 성장을 위해서는 ‘소프트웨어 서비스’가 필수라고 판단했다. 뜻이 맞는 동료들을 모아 클로봇을 개발했다. 창업 초기에는 어려움도 있었지만, 로봇 산업의 확실한 ‘페인 포인트’를 찾아낸 클로봇은 빠르게 성장했다. 2022년 약 71억원의 매출을 달성했고, 2023년 100억원이 넘는 매출이 예상된다.

김 대표는 “매년 위기가 있었지만, 위기 때마다 동료들의 도움이 컸다”면서 “40대 이후 창업자라면 자신을 도울 수 있고 함께 일할 수 있는 사람과 협력하는 게 좋다. 사업도 자기가 전문성이 있는 분야에서 승부를 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팜프로 ‘전자 이표’ 모습. 소 귀에 걸어 사용하는 방식이다. (팜프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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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적 네트워크, 또 다른 성공 열쇠

기술 창업은 품이 많이 드는 일이다. 확실한 인사이트를 갖고 있어도 이를 솔루션이나 서비스로 고도화해줄 ‘연구·개발 인재’가 없다면 창업 성공 가능성은 떨어진다. 연구·개발 인재난이 펼쳐지고 있는 요즘, 인적 네트워크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인적 네트워크는 40대 이후 창업자들이 상대적으로 ‘강점’을 지닐 수 있는 분야다. 김창구 대표는 “40대 중반에는 과거 알던 지인들이 기업에서 중책을 맡게 된다. 자연스레 인적 네트워크를 통한 시너지가 큰 시기”라며 “중장년층 창업의 가장 큰 장점은 네트워크와 전문성 그리고 사회생활에 대한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리스크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메디사피엔스’의 강상구 대표도 비슷한 경우다. 메디사피엔스는 ‘살릴 수 있는 아이들은 살리자’를 모토로 인공지능(AI) 활용 신생아 희귀 질환 진단 기술을 개발 중이다. 강 대표는 “현재는 신생아집중치료실(NICU)에 집중하고 있다. 유전적으로 취약한 신생아들이 입원하는데, 보통 전체의 10% 정도라고 본다. 이 중 질환 진단을 못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우리가 이를 도와 살릴 수 있는 아이들을 최대한 살려보자는 게 창업 취지”라고 설명했다.

강 대표는 그야말로 엘리트 직장인이었다. LG데이콤(현 LG유플러스)을 시작으로 JP모건과 노르텔네트워크, 삼성전자 미국 법인과 도시바, 3M 등 이름만 들으면 알 수 있는 국내외 대기업에서 약 20년 동안 직장 생활을 했다. 주로 IT 마케팅 업무를 맡으며 화려한 커리어를 쌓은 그가 창업에 눈뜨게 된 건 우연한 계기였다.

강 대표는 “한창 알파고 신드롬과 IBM왓슨 제품이 열풍을 불던 때였다. 우연히 ‘공학과 의학의 만남’ 주제의 콘퍼런스에 참여했는데, 이곳에서 과거 동료를 만났다. 알고 보니 IBM왓슨 부사장이 됐더라. 이후에도 수차례 만났다. 자연스레 의료 AI 존재와 가치를 이해하게 됐고 관련 인적 네트워크도 쌓으면서 2017년 메디사피엔스를 창업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창업 후 탄탄대로만 걸었던 건 아니다. 강 대표는 그때마다 ‘오랜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강 대표는 “수많은 직장을 다니며 박힌 ‘스트레스’에 대한 굳은살이 힘들 때마다 큰 힘이 된다. 또 업무적으로 보면 힘든 시기를 벗어날 수 있는 조언을 줄 만한 사람들을 인맥으로 많이 알고 있다는 게 강점”이라며 “또 최근 바이오의 키워드가 ‘기술 일변도’에서 ‘상업화 가능성(Commercialization)’으로 넘어가고 있는데, 마케팅 분야에서 오랜 기간 일했던 경험이 도움이 되고 있다. 아무리 좋은 기술도 잘 소개하고, 잘 팔지 못하면 끝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힘든 시기를 이겨낸 메디사피엔스는 2022년 일찌감치 시리즈A 투자 유치에 성공, 충분한 현금을 확보하고 있다. 현재까지 누적 77억원을 유치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41호 (2024.01.01~2024.01.0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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