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 걸으며 바다를 즐긴다

남호철 2024. 1. 3.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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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고장’ 강릉 괘방산 ‘산우에바닷길’
이른 아침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괘방산 활공장에 오른 등산객들이 일망무제로 펼쳐진 동해에 솟아오르는 해가 수놓은 장쾌한 풍경을 감상하고 있다.


강원도 강릉은 북쪽 주문진에서 최남단 옥계까지 70여㎞에 달하는 기나긴 해안선을 보유한 ‘바다의 고장’이다. 강릉 바다는 여행자를 위한 종합선물상자다. 방탄소년단(BTS)의 앨범 재킷 사진 촬영으로 유명해진 주문진 향호해변부터 소돌해변, 영진해변, 연곡해변, 사근진해변, 강문해변, 정동진해변을 지나 옥계해변까지 다채로운 바닷가 여행을 할 수 있다.

강릉에서 이색적인 바다 풍광을 즐길 수 있다. 산을 걸으며 발아래 바다를 조망하는 것이다. 강릉의 남쪽 강동면에 자리 잡은 괘방산(掛膀山·345m)이 제격이다. 안인진에서 정동진까지 이어지는 힐링 산행길 ‘산우에바닷길’이다. ‘산 위’를 지역 사투리 그대로 적었다. 해맞이 산행지로도 유명하다.

산우에바닷길은 ‘강릉바우길’ 8구간이기도 하다. ‘강릉바우길’은 바위가 많은 강원도의 길을 친근하게 부르는 명칭으로, 17개 구간 400㎞에 달한다. 바빌로니아 신화에서 ‘한 번 어루만지는 것으로 죽을 병을 낫게 한다는 건강의 여신’ 바우(Bau)에 빗대기도 한다.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부산 오륙도 해맞이공원에 이르는 해파랑길(750㎞) 강릉 구간과도 겹친다.

들머리는 안인진 삼거리 주차장이다. 안인진은 조선 성종 때까지 수군만호 군영이 있던 곳이다. 주차장 바로 옆 산우에바닷길 이정표에 강릉바우길과 해파랑길도 함께 표시돼 있다.

상어 이빨 모양의 삼우봉 바위 너머 안인진 일대.


‘안보체험 등산로’ 글귀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1996년 9월 18일 발생한 무장공비 침투사건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당시 안인진 포구 남쪽 1.5㎞ 지점 해상에 북한 잠수정이 좌초됐다. 잠수정에는 인민무력부 정찰국 소속 특수부대원 26명이 타고 있었다. 택시기사가 잠수함을 발견했을 때는 이들 모두가 강릉 일대 산악으로 침투한 뒤였다.

49일간 소탕작전 끝에 13명이 사살되고 1명이 체포됐다. 11명은 살해된 채 발견됐다. 우리 측도 군인 11명, 예비군 1명, 경찰 1명, 민간인 4명이 사망했다. 공비들이 소탕된 뒤 강릉시와 지역 산악인들이 산길을 정비해 등산로를 만들었다.

계단을 올라 동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뻗은 능선을 걸으면 왼쪽에는 바다가 펼쳐지고, 오른쪽에는 동해고속도로와 7번 국도가 지난다. 숨바꼭질하듯 감질나게 모습을 드러내던 풍경은 ‘통일공원 제2활공장’에서 트인다. 탁월한 바다 전망대다. 활공장 앞뒤로 제법 넓게 나무데크가 깔려 있다.

바다 쪽으로 강릉통일공원과 해안도로가 아래로 내려다보이고, 그 너머로 동해가 일망무제로 펼쳐진다. 뒤로 시선을 돌리면 하얀 눈이 덮인 백두대간 선자령에서 강릉 시내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보는 일출이 장관이다. 검푸른 바다를 헤치고 치솟는 태양이 감동적이다.

고려 시대 축성된 괘방산 산성터 돌무더기.


이곳에서 고도를 내렸다가 다시 올리면 고려시대 축성된 산성의 돌무더기가 보인다. 산성터를 지나면 곧 삼우봉이 반긴다. 상어 이빨 모양으로 생긴 바위가 있어 눈길을 끈다. 소나무와 어우러져 시원한 풍광을 펼쳐놓는다.

삼우봉에서 700m 정도 가면 길에서 약 10m 벗어난 숲속에 괘방산 정상석이 있다. 실제 정상에는 통신 시설이 설치돼 출입할 수 없어 따로 정상석을 만들어 놓았다. 산 이름은 옛날 이 지역 사람들이 과거에 급제하면 두루마기에 급제자의 이름을 쓴 방(膀)을 이 산 어디엔가 붙여(掛) 고을 사람들에게 알렸다는 데서 유래됐다고 한다.

이후 봉우리 몇 개를 넘으면 ‘183고지(183m봉)’ 표지목이 있는 마지막 봉우리다. 정동진까지 1.3㎞ 남았다. 1962년 보통역으로 문을 연 조그만 정동진역은 1995년 드라마 ‘모래시계’로 알려졌고 2019년 말부터는 KTX까지 정차하는 유명 관광지가 됐다.

파도 소리 들으며 호젓한 산책 하기 좋은 등명해변.


정동진에서 북쪽으로 조금 가면 등명해변이다. 철길 건널목을 통과해 솔숲을 지나면 새하얀 모래사장과 푸른 바다가 펼쳐진다. 그 북쪽엔 통일공원이다. 통일안보전시관과 함정전시관이 조성돼 있다. 2001년 9월 26일 개관한 통일공원은 야외에 공군 항공기를 비롯해 전시시설을 갖추고 있다. 이곳에 무장공비 소탕 작전에서 희생된 이들을 추모하는 위령비도 세워져 있다. 북한 잠수함을 전시한 구역은 정비 중이어서 폐쇄돼 있다.

여행메모
산우에바닷길 9.4㎞, 약 4시간 소요
바다 조망 괘방산 임해자연휴양림

강원도 강릉은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개통된 경강선 KTX를 이용하면 서울에서 1시간 30분대에 연결된다. 제2영동고속도로(경기도 광주∼원주), 서울양양고속도로 등을 이용하면 서울에서도 반나절 여행이 가능한 ‘이웃 도시’다.

산우에바닷길은 전체 9.4㎞로, 쉬엄쉬엄 4시간가량 걸린다. 출발지인 안인진 삼거리에 무료 주차장과 화장실, 등산 안내도 등이 마련돼 있다.

데크가 있는 활공장은 과거 백패킹 명소였다. 하지만 요즘 ‘야영 금지’를 알리는 현수막이 곳곳에 붙어 있다. 정동진역 승강장에 들어가려면 입장료 1000원을 내야 한다.

정동진이 유명해지면서 정동진역이나 안인항 일대에 숙박업소가 많이 생겼다. 괘방산 기슭에 위치한 임해자연휴양림은 천혜의 절경에서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휴식 공간이다.

‘커피 도시’ 강릉에는 최근 빵과 커피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베이커리 카페’가 속속 들어서고 있다. 대부분 오션뷰를 내세우고 있다.

괘방산(강릉)=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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