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세 왕회장 눈물로 읍소했지만…채권단 "태영 약속 안 지켰다"
3일 윤세영 태영그룹 창업회장(91)이 600여명 채권단 앞에서 “태영을 포기하는 것은 저만의 실패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며 눈물로 태영건설 회생을 호소했다. 이날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의 강석훈 회장은 “태영이 약속한 자구계획을 이행하지 않았다”며 유감을 표명했다. 채권단 설명회 첫날부터 상반된 목소리로 '태영건설 워크아웃' 절차에 난항을 예고했다.
이날 산은 본점에서 열린 태영건설 채권단 설명회에는 91세 고령의 윤 회장이 등장했다. 태영건설의 현 상황과 자구안을 직접 설명하고 채권단에 기업구조개선(워크아웃) 승인을 요청하기 위해서다. 비공개로 진행된 이 날 설명회는 600명이 넘는 채권단이 몰렸다.
윤 회장은 위기의 원인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가능성을 과신한 탓”으로 짚었다. 그러면서 “문제 되는 우발채무는 2조5000억원 정도로 가능성 있는 기업”이라고 주장했다.
주채권 은행인 산업은행에 이미 제출한 추가 자구 계획도 공개됐다. 산은에 따르면 태영이 밝힌 자구계획은 ▶태영인더스트리 매각 대금(1549억원) ▶에코비트 매각추진 및 매각 대금 ▶블루원 지분 담보제공 및 매각 추진 ▶평택싸이로 지분(62.5%) 담보 제공이다.
‘왕 회장’ 읍소와 달리 태영그룹이 제시한 자구 계획에 대한 채권단 반응은 냉랭했다. 채권자 관심이 컸던 사재출연 규모나 SBS의 지분 매각 등에 대해선 언급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양윤석 TY홀딩스 전무는 “SBS 매각이 워크아웃 방법론으로 제시될 순 있지만, 방송법상 제약이 많아서 요청하면 충분히 검토할 계획”이며 “사재 출연 역시 충분히 필요성 인식하고 준비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이뿐 아니라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태영건설이 약속한 자구 계획조차 지키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산은에 따르면 TY홀딩스는 태영인더스트리 매각 자금 중 1549억원을 태영건설에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매각자금은 이미 지주사인 TY홀딩스 연대 채무를 갚는 데 쓰고, 400억원만 태영건설에 지원했다.
골프장 운영업체인 블루원 지분 담보도 태영건설이 아닌 TY홀딩스에 제공하기로 말을 바꿨다는 게 산은 설명이다. 앞서 하도급 업체에 지급할 밀린 대금인 상거래채권 1485억 중 ‘외상매출채권 담보대출(외담대)’ 451억원도 이미 미납했다.
이날 채권단 설명회 직후 강석훈 회장은 기자 브리핑에서 “원래 약속했던 네 가지 자구안 대한 확약을 채권단 설명회에서 공표해 달라고 강력히 요청했지만, 태영 측은 구체적 자구 계획안을 제시하지 않고 단지 열심히 하겠으니 도와달라는 취지로만 얘기한 거로 이해했다”면서 “상식적으로 채권단이 이 모습으로, 이 제안으로 워크아웃 개시에 동의한다고 기대하기는 매우 어려울 거 같다”고 했다.
투자은행(IB)업계에선 태영이 사재출연을 비롯한 강도 높은 자구안을 내놓지 않으면 워크아웃 문턱을 넘기기가 어려울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워크아웃 승인보다 중요한 것은 워크아웃 성공 가능성인데 태영 측이 이런 식으로 나오면 성공을 담보할 수 없다”면서 “워크아웃 개시를 결정하는 오는 11일까지 납득할 만한 자구안을 다시 가져와야 한다”고 했다.
김남준 기자 kim.nam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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