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칼에 찔렸는데 "젓가락 쇼"… 테러만큼 극심한 가짜뉴스
대낮에 공개된 장소에서 제1야당 대표가 괴한이 휘두른 흉기에 목을 찔렸음에도 온라인에선 ‘자작극’이라는 음모론과 가짜뉴스가 극성을 부렸다. 극단적 정치 문화의 현주소라는 지적이 나온다.
3일 온라인에선 단연 화제는 ‘나무젓가락 흉기설’이었다. 직장인 커뮤니티 어플리케이션 블라인드에 모 회사 직원은 “이재명 영상을 슬로우로 보면 민주당원이 왼손에 칼, 오른손에 종이로 말은 나무젓가락을 들고 오른손으로 찌른다”며 “자작극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다른 회사 직원도 피습 장면 영상을 프레임 단위 정지 사진으로 올리면서 “범행 직후 범인의 오른손에는 칼이 아닌 무언가 짧은 물건이 들려 있고 나무젓가락으로 추정된다”며 이 같은 주장에 힘을 실었다.
범인 김모씨(67)가 이 대표를 찌른 데 사용한 도구가 이 대표의 팬클럽이 사용하는 깃발 모양 응원도구인 ‘잼잼 응원봉’의 깃대 부분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한 네티즌은 디씨인사이드 홈페이지 국민의힘 갤러리에 올린 ‘아니 누가 자작극이래’라는 글에서 응원 도구 사진을 올리며 “그냥 범행도구가 ‘잼잼 응원봉’이라는 데 왜 (민주당이) 영상 다 내리고 모자이크하고 고소·고발·협박까지 하느냐”고 적었다.
범행 당시 난 소리를 근거로 의혹을 주장하는 경우도 있었다. 국민의힘 갤러리엔 “이재명 피습 후 0.5초 가량 지난 순간 ‘똑’ 하고 나무가 부러지는듯한 소리가 들림”이라며 “과연 나무 부러지는 듯한 소리의 정체는 무엇이냐”는 글이 올라왔다. 이 게시글의 댓글엔 “똑 소리 들리네. 그것도 힘없는 나무젓가락따위 똑 부러지는 소리”와 같은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이런 가짜뉴스가 확산되자 부산경찰청 수사본부는 이날 브리핑에서 구체적인 범행 도구를 설명했다. 경찰은 “김씨가 범행에 사용한 흉기는 길이 18㎝(날 13㎝) 등산용 칼”이라며 “김씨는 칼자루를 빼고 테이프로 감았고, 칼날은 A4 용지 등으로 감싼 뒤 이 대표를 습격하는 데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특히 ‘나무젓가락 흉기설’에 대해서는 “사실이 아니다”라며 “A4 용지로 감쌌기 때문에 나무젓가락 등으로 오인했을 수는 있다”라고 덧붙였다.
경찰의 적극적인 해명에도 이날 ‘나무젓가락 흉기설’을 비롯해 전날 피습 사건이 민주당의 자작극이란 주장은 보수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인터넷 홈페이지 ‘일간베스트’ 게시판에는 ‘이재명 자작극 증거 확실’이란 제목으로 “휴지로 지혈을 하는데, 휴지에는 피 한방울 번지지 않는다. 이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나”라는 주장이 올라왔다.
자작극 주장은 조롱을 낳았다. 네이버카페 부동산스터디에는 “(속보) 민주당 젓가락 판매금지법 발의”라는 글이 올라왔고, 뉴스 댓글 창에는 이 대표의 상처 크기를 언급하며 “1cm 열상 가지고 쇼 제대로 한다”거나,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를 언급하며 “법원 선고 앞두고, 하여간 잔대가리 굴리는 것은 인정해주마”라는 글들이 줄줄이 달렸다.
가짜뉴스를 확대재생산한 건 보수성향 유튜브였다. ‘신의 한 수’는 3일 “민주당, 왜 굳이 이재명 사고 내용에 대해서 영상을 지워달라고 요구하고 있을까. 무엇이 그렇게 겁이 나서 법적조치까지 운운하고 있을까.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며 나무젓가락과 응원도구를 범행 도구로 의심하는 내용을 방송했다. 이 과정에서 “그 정도의 세기로 칼을 찔렀다고 하면 이거는 관통할 수 있는 정도의 수준 아니겠느냐. 하지만 결과는 뭐였다? 1cm의 열상이었다”고 주장했다.
앞서 ‘이봉규TV’는 사건 발생 직후 “한동훈 지지율이 오른 뒤 피습사건이다. ‘자작나무’(자작극을 의미) 사건일 수 있다”는 내용을 송출했다. ‘가로세로연구소’도 “제가 볼 때는 종이를 돌돌 말아서 찌른 것, 사실상 주먹으로 때린 거에 가깝다는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진성호 전 의원이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진성호방송’은 “이재명 습격범, 이거였어?”, “이재명 수술 뭘 감추나, 서울대병원 이런 짓을?” 같은 썸네일로 호기심을 자극했다.
민주당은 강경 대응 방침을 밝혔다.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정치적 자작극이라느니 하는 허위 사실 유포는 명백한 2차 테러”라며 “당 차원에서 대책 기구를 만들어 법적·정치적 대응을 하겠다. 결코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박성준 대변인도 “가짜뉴스는 물론 살인 예고글이 이어지고 있다. 추적해서 엄정한 법적 조치를 하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 대표에 대한 테러뿐만 아니라, 이후 벌어진 가짜뉴스 소동이 우리 사회에 내재된 병리현상을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프로파일러 출신 배상훈 전 우석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흉기 논란에 대해 “각자의 정파적 선호에 따라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일종의 사회적 병리현상”이라며 “명백한 사실을 뒤덮는 가짜뉴스를 해명하느라 수사기관이 에너지를 낭비하는 게 과연 정상적인 일이냐”고 반문했다.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는 “문재인 정권 이후 우리나라 정치 문화가 진영논리에 입각해 양극단으로 쪼개져서 상대를 힘으로 누르거나 퇴출하는 방식으로 퇴보해왔다”며 “그런 정치인을 지켜보는 국민도 극단적 대립을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받아들이고, 서로가 서로를 증오의 대상으로 인식하다보니 정치 테러의 심각성마저 인식하지 못하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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