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괴 건물서 비명처럼 "빵빵"…공포의 日 지진 현장 구출작전
"사망자 유해가 발견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땅이 꺼질 듯한 한숨과 흐느낌이 들려왔다. 담요를 몸에 두른 채 구조 현장을 지켜보던 주민들 몇몇은 충격을 받은 듯 주저앉았다. 3일 오후 2시, 일본 이시카와(石川)현 와지마(輪島) 시내 지진 매몰자 구조 현장. 옆으로 쓰러진 7층 건물 주변으로 접근 금지 테이프가 드리워졌고, 안쪽에선 소방대원과 구급대원 수십명이 오가며 확성기에 대고 고함을 질렀다. 잔해 속에 생존자가 있는지를 확인하는 중이었다.
"빵빵!" 경적 소리가 들렸다. 건물 잔해에 깔린 차에서 며칠째 비명처럼 울리는 소리였다. 구급대원들은 붕괴된 건물 잔해 사이에 막대기를 끼워 2m 정도의 틈새를 확보한 후 진입을 시도했지만 파손 정도가 심해 구조 작업은 쉽지 않아 보였다. 무너진 건물 건너편 주택가에도 부서진 목조주택들이 어지럽게 엉켜 있었다. "그저께 지진이 일어난 직후 '살려달라'는 외침을 듣고 집에서 무작정 뛰쳐나왔어요. 어떻게든 구해주고 싶었지만, 건물이 통째로 무너져 방법이 없었습니다." 피난소에 머물다 이불을 가지러 잠시 동네에 들렀다는 60대 남성이 말을 잇지 못했다.
지난 1일 규모 7.6의 강진이 이시카와현 노토(能登) 반도를 덮친 지 만 이틀이 지나면서 피해지 곳곳에선 생존자 구조 및 복구 작업이 진행 중이다. 이날 오전 와지마 시내로 들어가는 도로 입구에는 산사태가 발생해 포클레인이 도로를 막고 있었다. 구급차 등 긴급 차량이 아니면 통과할 수 없어 기자 일행도 불과 수 km 거리를 두 시간 이상 돌아서야 현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골든 타임' 얼마 안 남았는데…발만 동동
면적 420㎢에 2만2000여 명의 주민이 사는 와지마시는 이번 지진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지역이다. 200여 동의 목조 상가가 불타버린 아사이치(朝市) 시장 거리에선 3일 오후에도 여전히 검은 잿더미 사이로 연기가 솟아올랐다. 전날까지 불길을 잡던 소방대원들은 철수했고 취재진과 주민 몇몇만 주변을 서성였다. 이 상점가에서 옷 가게를 하고 있다는 한 남성은 폐허로 변해버린 시장을 보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며 망연자실했다. 다행히 가게 건물은 불타지 않고 남았지만 "다시 장사할 날이 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무겁게 발길을 돌렸다.
3일 오후 7시 기준 이번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는 73명, 부상자는 이시카와현과 인접 지역을 포함해 총 370명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중상을 입은 사람들이 상당수인 데다 노토 반도 곳곳 외진 산골 마을엔 아직도 구조대가 진입조차 하지 못해 사망자의 수는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3일 오전 이시카와현 발표에 따르면 와지마시를 비롯해 나나오(七尾)시, 스즈(珠洲)시 등 현 내 최소 5개 지구에서 아직 약 수십 명이 고립 상태에 처해 있다.
생존자 구조의 '골든 타임'으로 불리는 72시간까지는 채 하루도 남지 않은 상황.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는 3일 기자회견에서 "무너진 건물 아래에서 구조를 필요로 하는 피해자들이 약 130명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며 "피해자 구조는 시간과의 싸움"이라고 말했다.
일본 언론들을 통해 희생자들의 안타까운 사연도 속속 전해졌다. 와지마시에서 건설업에 종사하는 70대 남성은 오랜만에 고향에 온 40대 딸 둘을 새해 첫날 잃었다. TV를 보던 중 흔들림을 느꼈고, '쾅'하는 소리와 함께 집이 무너졌다. 2층에 있던 남성은 간신히 탈출했지만 1층에 있던 딸들은 집이 무너지며 잔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숨을 거뒀다. 딸을 구하려 애썼지만 "쓰나미가 오니 빨리 도망치라"는 이웃 주민의 말에 높은 곳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계속되는 여진, 공포의 밤
이번 지진으로 집을 떠나 피난소에 머물고 있는 이재민 6만 여명도 열악한 환경 속에서 계속되는 여진으로 공포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전날 밤 기자가 도착한 와지마 시립 몬젠니시(門前西) 소학교(초등학교)는 불빛 하나 없이 캄캄했다. 이시카와현에선 지진 후 3만3800가구에 전기 공급이 끊겼고, 9만5000가구가 단수 상태다. 손전등에 의지해 다가간 교문에는 '근하신년(謹賀新年)' 이라고 적힌 종이가 휘날리고 있었다.
이 학교 교실과 체육관에 마련된 대피소엔 인근 마을 주민 120여 명이 모여 있었다. 불쑥 찾아온 외국 기자들에 곤란해하면서도 "물이 끊겨 화장실 사용이 불편한데 괜찮겠느냐"며 기꺼이 공간을 내줬다. 아기가 있는 가족부터 10대 중학생, 80대 노인까지 연령대가 다양했다. 종이 박스를 깔고 체육관 한쪽에 누워있던 80대 여성은 "평생 이렇게 무서운 지진은 처음이다. 정말 무섭다. 주변 사람들 도움으로 이렇게 살아 있어 다행"이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주민들이 건네준 박스와 비닐을 들고 농구대 아래쪽에 자리를 잡았지만 한 시간에도 두세번 "쿠르르르" 땅이 울리면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오전 2시 55분엔 커다란 흔들림이 느껴지면서 "지진 발생! 대피하십시오!" 휴대폰 경고음이 대피소에 울려 펴졌다. 1일 오후 4시부터 3일 오후 4시까지 노토반도에서 진도1 이상 지진이 521회 발생했다.
새벽 6시가 되자 주민들이 하나둘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학교 수영장의 물을 길어와 2층에 있는 화장실용 용수로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몇몇 주민들은 만두가 들어간 된장국과 주먹밥을 들고 와 나눠주기 시작했다. 오사카(大阪)에서 지진 소식을 듣고 부모님이 살고 계신 이시카와로 달려왔다는 20대 여성 나카구치는 "비상용으로 비축해 둔 음식이 있어 그나마 견딜 수 있는 상황이지만 물과 먹을거리가 많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자위대 현장 지원 인력과 경찰 구조견을 2배로 늘리는 등 구조 체제를 강화했다. 일부 해상 경로를 통한 물자 수송도 개시했다. 피해 지역의 참담한 상황이 알려지면서 전국에서 도움의 손길도 이어지고 있다. 1995년 한신·아와지 대지진을 겪었던 오사카 소방 당국은 과거 지진 현장에서 인명 구조 훈련을 한 특별 구조대 74명을 2일 오후 노토 반도에 급파했다. 간사이(関西) 지자체로 구성된 '간사이 광역 연합'은 바람과 비 등을 막아주는 천막지(블루시트) 1600장과 음료 8200리터분, 1000명분의 카레라이스 등을 트럭에 실어 재해지로 보냈다.
이시카와=김현예 특파원, 도쿄=이영희 특파원, 서유진 기자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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