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주연 써줄게" 이 말에 속았다…딸 위해 6억 투자한 엄마

문현경 2024. 1. 3.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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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중앙지법. [연합뉴스]


딸을 드라마 주연으로 써준다는 말에 수억 원을 투자했던 어머니가 드라마 제작이 불발된 후 이를 돌려달라는 소송을 내 이겼다.

지난달 7일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29부(부장 한정석)는 A씨가 투자했던 돈 5억 7000만원에 대해 드라마 제작사 대표이사 윤 모 씨와 캐스팅 디렉터가 함께 책임지고 돌려줘야 한다고 판결했다.

드라마 얘기가 오간 건 5년 전이다. KBS는 2019년 대한민국 건국 100주년을 맞아 안중근 의사의 일대기를 다룬 드라마 ‘의군-푸른 영웅의 시대’를 방영하려 했다. 유명 감독 양 모씨가 감독을 맡기로 했다. 신인배우 딸을 둔 A씨는 감독, 제작사 대표, 캐스팅 디렉터와 2018년 6월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이후 A씨는 제작사 대표로부터 딸을 주연 역할에 캐스팅할 것이니 딸이 나오는 드라마에 투자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한다. A씨는2018년 7월부터 몇 차례에 걸쳐 4억 원을 보냈고, 더 달라고 해 2019년 4월까지 1억 7000만원을 추가로 보냈다. 총 5억 7000만원을 받은 윤 대표는 11월까진 갚겠다며 공정증서를 써 줬다.

하지만 ‘300억대의 제작비와 중국 로케이션 촬영을 통한 역대급 스케일’로 홍보되던 드라마는 결국 방영되지 않았고, A씨의 투자금도 돌아오지 않았다. 모두에게 속았다고 생각한 A씨는 윤 대표뿐 아니라 캐스팅 디렉터 이 씨와 양 감독을 상대로도 소송을 냈다. 모두 한통속으로 딸을 주연에 쓸 것처럼, 투자금을 드라마 제작에 쓸 것처럼 거짓말해 5억 7000만원을 뜯어냈다는 주장이었다.

드라마 '의군'은 2019년 하반기 KBS에서 방영될 예정이었으나 무산됐다. [KBS 뉴스 캡쳐]


돈을 받은 윤 대표는 물론이고, 캐스팅디렉터 이씨의 책임도 쉽게 인정됐다. 일 년 가까이 답변서는커녕 두 차례 열린 재판에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A씨 주장이 그대로 인정됐다(자백간주 판결). 유일하게 변호사를 써 대응에 나선 양 감독만 다른 결론을 받았다. A씨는 “저명한 감독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윤 대표의 불법행위에 가담했거나 방조했다”며 함께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양 감독이 윤 대표의 기망행위에 가담했거나 방조했다고 보기 어렵고, 달리 증거가 없다”고 했다.

양 감독은 2018년 6월 카페 모임에 참석했고, 2018년 8월 드라마 촬영지를 보러 간 중국 상해에서 A씨 딸을 만나 식사까지 함께하기도 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카페 모임 외에 양 감독은 캐스팅 관련 논의를 한 적 없으며 투자 관련 서류 작성에도 개입하지 않았다”며 투자와 캐스팅은 윤 대표와 이씨가 맡은 것으로 판단했다.

A씨는 2019년 6월 양 감독이 드라마 제작이 진행 중인 것처럼 말했지만, 실제로는 두 달 전에 드라마 편성이 무산된 것으로 보인다는 점도 문제 삼았다. 재판부는 이 역시도 “그렇다 하더라도 이는 투자금 지급이 완료된 이후에 이뤄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또 “드라마의 투자와 편성에 대한 부분은 제작사에서 실시한 것으로 양 감독이 2019년 6월경 드라마 무산 사실을 확실히 알고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라고도 했다.

캐스팅디렉터 이씨와 A씨가 항소해 서울고등법원에서 2심이 진행될 예정이다. 윤 대표에겐 판결문이 전달되지 않아 재판부가 공시송달 결정을 내렸으며 항소 기한이 남아있다.

문현경 기자 moon.h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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