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체스터를 수놓은 샤넬 공방 컬렉션

김명민 2024. 1. 3.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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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한 아름다움과 강렬한 저항 정신이 부드럽게 충돌했다.
맨체스터 북부 토머스 거리에서 공개된 샤넬 2023/2024 공방 컬렉션.

산업혁명이 시작된 역사적 장소이자 포스트 펑크 록으로 전 세계를 휩쓴 밴드 조이 디비전과 뉴 오더, 오아시스, 스톤 로지스가 활약했던 도시. 극작가와 시인으로 활동한 캐롤 앤 더피와 〈시계태엽 오렌지〉라는 걸작을 선보인 작가 앤서니 버지스의 도시. 여성 참정권 획득을 위해 1903년 용감한 투쟁을 감행했던 사회운동가 애멀린 팽크허스트의 영혼이 살아 숨 쉬는 맨체스터. “내게 맨체스터는 음악 도시라 할 수 있습니다”라는 샤넬 아티스틱 디렉터 버지니 비아르와 “맨체스터 하면 뉴 오더가 떠올라요!”라고 했던 소피아 코폴라의 말처럼 고리타분한 편견과 구시대적 흐름에 정면으로 맞서는 저항 정신으로 독창적인 문화를 꽃피웠던 맨체스터가 샤넬 2023/2024 공방 컬렉션에 빛나는 영감을 선사하며 또다시 새로운 역사를 썼다.

컬렉션의 키 테마였던 트위드가 버지니 비아르의 시선으로 재해석됐다.
사진가 제이미 호크스워스가 촬영한 샤넬의 뉴 룩을 입은 맨체스터 소녀들.
쇼가 공개되기 며칠 전, 샤넬 공식 SNS 계정에 업로드된 감각적인 이미지와 콜라주 필름에서 맨체스터와 새 시즌 공방 컬렉션을 관통하는 에너지를 감지할 수 있었다. 샤넬의 뉴 룩을 입고 고요하게 정면을 응시하거나 미소를 지으며 서로를 바라보는 맨체스터 소녀들을 다감한 시선으로 포착한 제이미 호크스워스의 사진, 뉴 오더의 ‘Blue monday’가 경쾌하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맨체스터를 상징하는 아이코닉한 인물, 역사적 장면과 샤넬 로고 아트워크가 리드미컬하게 교차되는 패션 필름은 하우스의 오랜 조력자인 피터 사빌과 소피아 코폴라의 디렉팅과 함께 섬세한 연출력이 돋보인 비주얼로 화제를 모았다.
샤넬 쇼를 기다리는 이들의 기대감이 한껏 고조될 즈음 어둠이 내려앉은 저녁, ‘영국’답게 보슬비가 내리는 맨체스터 북부 토머스 거리(Thomas Street)에서 샤넬 2023/2024 공방 컬렉션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 컬렉션의 키워드는 트위드입니다.”샤넬의 근간이자 역사라 할 수 있는 트위드 소재가 버지니 비아르의 시선으로 재해석됐는데, 가브리엘 샤넬이 웨스트민스터 공작과 함께했던 시절의 이야기와 공작의 거칠고 투박한 남성용 트위드 아우터웨어를 처음 접했던 역사적 순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샤넬 여사가 웨스트민스터 공작의 외투를 입었을 때의 모습을 재현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여성용 트위드를 위해 처음 컬러를 입혔던 점에 착안해 생동감 넘치는 팝 정신을 강조했습니다.”버지니 비아르의 이런 호기심과 포부는 1960년대 스타일을 위트 있게 반영한 컬러플 트위드 룩으로 구현됐다. 색감 표현에 특히 심혈을 기울였다는 컬러 트위드 룩의 행렬은 비비드한 레드, 애플 그린, 머스터드, 스카이 블루, 온화한 피치 컬러(팬톤이 선정한 2024년 ‘올해의 컬러’) 등으로 어둠이 축축하게 내려앉은 맨체스터 거리를 환하게 밝혔다.
영국 밴드 프라이멀 스크림의 애프터 쇼 퍼포먼스.
사진가 제이미 호크스워스가 촬영한 샤넬의 뉴 룩을 입은 맨체스터 소녀들.
사진가 제이미 호크스워스가 촬영한 샤넬의 뉴 룩을 입은 맨체스터 소녀들.
영국 밴드 프라이멀 스크림의 애프터 쇼 퍼포먼스.
쇼에 영국적인 무드를 더해준 트위드 소재의 뉴스보이 캡.
난생처음 브릿 팝을 접했을 때 받았던 강렬한 충격이 떠오르는 팝 컬러 룩, 그 뒤를 ‘영국’ 하면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고전적인 실루엣과 소재를 내세운 룩들이 런웨이에서 존재감을 발했다. 영국 고전영화의 한 장면이 담긴 듯 단아하면서도 우아한 브라운과 그레이, 네이비와 자줏빛 색감이 돋보이는 클래식 트위드부터 서정적 패턴의 셰틀랜드 니트웨어, 부드러운 캐시미어 랩스커트, 고대(Godet)를 더한 미니스커트, 보이시한 버뮤다 팬츠와 코트 드레스는 ‘쿨’하게 눌러쓴 뉴스보이 캡과 메리 제인 슈즈, 주얼 액세서리와 짝을 이루며 완벽한 시너지 효과를 보여줬다.
맨체스터의 유명 축구 구단이 연상되는 스포티 재킷과 컬러플한 패턴의 머플러는 쇼의 흐름에 경쾌한 리듬감을 선사했고, 반항적인 록 스피릿을 투영해 광택이 감도는 블랙 레더 세트업과 발칙한 블랙 시스루 톱, 섬세한 주얼 장식의 베이비 돌 드레스, 빈티지 주얼리의 조합은 샤넬이 사랑하는 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모습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영국적인 스타일과 히스토리의 면면을 살피면서도 하우스의 코드를 충실하게 표현해 낸 이번 공방 컬렉션은 앞서 등장한 맨체스터 룩 외에도 재킷 하단의 체인을 더하거나 움직임의 자유를 선사하는 톱 스티치와 대비를 이루는 안감 적용 등 가브리엘 샤넬의 상징적인 테일러링 기술을 엿볼 수 있는 섬세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았다. 샤넬 Le19M 공방에서 탄생한 플리츠와 깃털 장식, 자수를 비롯해 장인 정신이 깃든 각종 장식은 ‘공방 컬렉션’이라는 명성에 부합하는 뛰어난 완성도로 Le19M과 장인 정신이 하우스의 더할 나위 없는 조력자임을 증명했다.
밴드 오아시스 멤버 리엄 갤러거의 아들인 진과 레넌 갤러거 형제.
클래식한 트위드 원피스를 입은 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
피날레 인사를 건네는 버지니 비아르.
2023/2024 공방 컬렉션 비주얼 작업에도 참여한 소피아 코폴라.
모델 크리스틴 맥메너미.
영국을 대표하는 배우 휴 그랜트.
배우 틸다 스윈턴.
한편 맨체스터에서 열린 쇼에 걸맞게 동시대 영국 문화를 대표하는 셀러브리티들이 대거 참석해 자리를 빛냈는데, 밴드 오아시스 멤버 리엄 갤러거의 아들 진과 레넌 갤러거 형제, 영국의 대표 배우 휴 그랜트, 틸다 스윈턴, 알렉사 청과 루시 보인턴, 맨체스터 출신 래퍼 에이치 등 많은 이가 참석해 샤넬 공방 컬렉션의 찬란한 밤을 함께했다.

끝없이 지속되는 성장 이후, 탈공업화 과정을 자연스럽게 경험하는 대도시처럼 맨체스터 역시 빛나는 전성기를 뒤로한 채 오랫동안 녹록지 않은 시기를 지나왔다. 하지만 이 특별한 장소는 지금까지 축구와 예술, 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서 독보적 행보를 보여주며 여전히 거부할 수 없는 에너지와 자극으로 우리를 이끈다. 유구한 역사를 가진 전통을 존중하면서 변화의 흐름 속에서 피어오른 저항 정신이 빚어낸 문화를 즐기는 맨체스터 고유의 애티튜드는 샤넬이 구축해 온 세계와 긴밀한 연결고리를 이루고 있다. 그 안에서 샤넬은 고유한 심미안으로 새로운 보석을 찾듯 또 다른 아름다움을 건져 올리는 데 성공했다. 관습적 패션과 고리타분한 사상을 타파해 자유를 탐미하는 샤넬 2023/2024 공방 컬렉션의 모험 정신은 맨체스터 밤거리를 또렷하게 밝히며 다시금 우리를 특별한 여정으로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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