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디오의 기인' 로웰 조지가 이끈 밴드 리틀 피트 [B메이저 - AZ 록 여행기]

최우규 2024. 1. 3.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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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메이저 - AZ 록 여행기] 리틀 피트의 <딕시 치킨>

[최우규 기자]

원하는 소리를 구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믹싱 테이프를 자르고 붙이며 새로운 소리를 첨가했던 완벽주의자, 뛰어난 보컬과 슬라이드 기타 연주로 일가를 이룬 아티스트. 스튜디오의 기인 로웰 조지(Lowell George) 이야기다. 그가 이끌던 스왐프·블루스 록 밴드 리틀 피트(Little Feat)는 1970년대 초중반 전성기를 구가하며 영미권 무대에서 한 획을 그었다.

로웰 조지는 1945년 미국 할리우드에서 태어났다. 플루트, 기타, 일본 대나무 피리 샤쿠하치, 인도 현악기 시타르, 색소폰을 배웠다. 1965년 드러머 리치 헤이워드(Richie Hayward)와 포크록 밴드 팩토리(the Factory)를 결성했다. 이들 노래 두 곡을 프랭크 자파(Frank Zappa)가 프로듀스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로웰은 자파 밴드 마더스 오브 인벤션(Mothers of Invention)에 들어가 작곡 기법과 밴드 리더로서 자세를 배웠다.

이때 만난 베이스 연주자 로이 에스트라다(Roy Estrada)와 1969년 밴드를 결성했다. 바로 리틀 피트다. 드럼에 리치 헤이워드, 키보드에 빌리 페인(Billy Payne)까지 4인조였다. 밴드 이름은 로웰 별명 '작은 발(little feet)'에서 따왔다. 멤버들은 비틀스(the Beatles)를 추앙하며 중간 모음 철자를 베낀 'Little Feat'라고 작명했다.

슬라이드 기타 명인으로서 로웰의 경력은 이즈음 시작된다. 첫 음반 녹음을 앞두고, 그는 집 부엌에서 취미인 모형 비행기를 조립했다. 프로펠러에 손을 깊게 베었다. 손가락 세 개에 감각이 무뎌졌다. 로웰은 이 사실을 숨겼다. 그는 줄을 누르는 대신 미끄러져 내리는 '슬라이드' 연주법으로 갈아탔다. 몇 마디씩 연주해 이어붙이는 방식으로 녹음했다.

느슨하고 느리지만 소리는 풍성했다. 다친 손이 회복되면서 연주 실력이 좋아졌다. 맑고 명료하면서도 장음을 유지했다. 그의 스타일은 우연한 사고에 악착같이 대처한 아티스트로서의 분투에서 출발했다.

완벽을 지향하며 끊임없이 소리 섞은 비운의 아티스트

리틀 피트의 첫 두 음반 <리틀 피트> <세일린 슈즈(Sailin' Shoes)>에 평단은 호감을 표했다. 컨트리록, 스웜프록(미국 남부의 흙먼지 냄새를 품은 듯한 로큰롤)에 시카고 블루스, 펑크(funk), 가스펠, 리듬앤블루스 등 미국 1970년대 대중음악의 플래터 메뉴 같다.

음반 판매에 실망한 에스트라다는 1972년 밴드를 떠났고, 케니 그래드니(Kenny Gradney)가 그 자리를 채웠다. 리듬 기타 폴 버레르(Paul Barrére), 타악 주자 샘 클래이튼(Sam Clayton)도 합류했다. 리듬 파트가 강화되자 음악은 더욱 펑키해졌다. 그렇게 나온 음반이 <딕시 치킨(Dixie Chicken)>이다. 1973년이었다.
 
 리틀 피트 세 번째 앨범 <딕시 치킨> 앞면 커버로, 아방가르드 화가 네온 파크가 그렸다.
ⓒ 최우규
 
A면 첫 곡 '딕시 치킨'은 서던 록 보컬과 부기우기 피아노가 소리의 쾌감을 고조한다. 세 번째 곡 '롤 엄 이지(Roll Um Easy)'에는 악기가 두 종만 동원된다. 어쿠스틱 기타와 슬라이드 기타다. 무심한 듯 컨트리 창법이 섞인 노래에 악기가 얹히면 무대 공간감이 확장되는 느낌이다. 토미 볼린(Tommy Bolin) 같은 노래와 연주가 흡입력을 발휘한다.

B면은 둔중한 블루스 '온 유어 웨이 다운(On Your Way Down)'으로 시작한다. 일렉트릭 기타로 소리를 열고 뒤이어 매끈한 버터 같은 키보드 소리가 깔리면 스피커가 녹아내리는 듯하다. 올맨브라더스 밴드(The Allman Brothers Band)나 두비 브라더스(The Doobie Brothers) 팬이라면 빠져들 곡이다. 다음 곡 '키스 잇 오프(Kiss It Off)'는 가장 이질적인 곡이다. 당대 유행한 프로그레시브 록 냄새가 난다. 아프리카 리듬에 벌 날갯짓을 닮은 기타 소리, 불안한 듯한 전자 건반 음은 방금 들었던 그 서던 록 밴드 연주가 맞나 싶다. 맨프레드 맨스 어스 밴드(Manfred Mann's Earth Band) 같다.

리틀 피트 대표곡 중 하나로 리듬이 복잡한 '팻 맨 인 더 배스터브(Fat Man in the Bathtub)', 플루트 소리가 두드러진 발라드 '줄리엣(Juliette)', 슬라이드 기타가 주도하는 '라파예트 레일로드(Lafayette Railroad)로 이어진다.
 
 리틀 피트의 세 번째 앨범 <딕시 치킨>의 뒷면 커버.
ⓒ 최우규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연주자들과 평론가, DJ들이 그들 음악을 주목했다. 레드 제플린(Led Zeppelin) 기타리스트 지미 페이지(Jimmy Page)는 1975년 음악 전문지 <롤링 스톤>과 인터뷰에서 "가장 좋아하는 미국 밴드는 리틀 피트"라고 말했다. 로버트 플랜트(Robert Plant)도 이 인터뷰에서 "로스앤젤레스 플라자 호텔에 묵었을 때 '리틀 피트 레코드를 너무 크게 튼다'는 항의를 투숙객에게서 받았다"라고 털어놓았다.

로웰은 점차 술과 약에 의존했고, 폭식증을 얻었다. 밴드 리더로서 압박감이 문제였다. 로웰은 스튜디오에서 밤샘 작업에 매달렸다. 만족할 소리가 나올 때까지 오버더빙(먼저 녹음한 소리에 다른 소리를 덧입히는 작업)을 계속했다. 건강과 음악적 영감이 함께 쇠퇴했다.

1979년 여덟 번째 음반 <다운 온 더 팜(Down On The Farm)>을 준비하면서 멤버와 불화가 극에 달했다. 로웰은 자신의 솔로 앨범 <탱스 아일 이트 잇 히어(Thanks I'll Eat It Here)>에 매달렸다. 음반 발매 후 백밴드와 함께 투어를 나섰다가 심장마비로 숨졌다. 34살이었다. 뛰어난 블루스 연주자이자 가수 보니 레이트는 그를 "로큰롤의 셀로니어스 몽크"라고 했고, 가수 잭슨 브라운은 "록의 오슨 웰스 감독"이라고 비유했다.

1987년 남은 멤버들이 밴드를 다시 구성해, 지금까지 음반 발매와 공연을 이어오고 있다. 로웰 생전의 번득임은 찾아보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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