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김현식을 떠나보낸 날, 상갓집에 울려 퍼진 노래
[강인원 기자]
김현식의 음악에 대한 열정은 활화산처럼 치솟아 올랐으며 주체하지 못해 언제나 넘치고 있었다. 음악으로 평화를 그려보려 했던 자유인이었다. 그는 사랑으로 늘 앓고 있었다. 펄펄 끓는 물에 밤새 앓다가 새벽녘에 마른 눈물자국만큼의 수분도 남기지 못한 채 다 증발해 버리고 손 대면 금방 화인 자국이 날 만큼 달아오른 채 진동하고 있는 주전자처럼 늘 혼자 앓고 있었다.
김현식은 천재였고 보헤미안이었다. 그는 누구에게라도 사랑을 느끼게 해줄 수 있는 낭만이 아주 풍부한 사람이었다. 그는 마음이 너무 여렸다. 그의 거친 목소리와 반항적인 눈빛, 유혹에 가득찬 표정, 균형잡힌 체격, 팔뚝에 난 상처 자국 등은 그런 여린 감성을 잘 감춰주고 있었다.
그는 늘 사랑과 평화, 음악과 진실의 갈망에 여린 마음을 가누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었다. 그가 입버릇처럼 얘기하던 자유인, 한국인. 그가 갈구했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를 늘 접하고 스쳐간 모든 사람들이 입에 담고 있었던 그 잡다한 얘기들이 그의 실체였을까.
▲ 소탈스럽고 장난끼 많았던 김현식을 아이패드로 그려 보았다. |
ⓒ 강인원 |
아주 오래전, 어스름한 저녁 무렵, 서울 동부 이촌동의 어느 편의점 앞 파라솔 테이블에서 맥주 한 병을 사서 그와 나누어 마시다가 작은 다툼이 일었다. 그가 나보다 나이가 많으니 형님 뻘이 되고 나는 그의 동생 뻘이 되니 형 대우해 달라는 그의 주장 때문이었다. 그 당시 서로 한 두 살의 나이차는 (무시한 채) 그냥 친구처럼 지내는 사회적 관습이 있었고, 한편으론 그의 천진스러운 치기가 얄궂기도 했다. 실제로 난 그보다 두살 더 많았다. 결국 둘 다 주먹 한번, 욕설 한번 내뱉지 못하고 낄낄거리며 그만두고 말았다.
김현식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가슴이 아프다. 그의 운명적인 죽음이 야속하다. 그의 소망대로 모두가 함께이지 못하는 우리 모두의 외로움, 그리고 늘 그리워 하고 갈망했던 사랑, 현실의 궤도에서 벗어난 그 자신의 무질서에 대한 두려움, 음악의 이상과 괴리된 현실에서의 좌절감. 그는 모든 것이 재미없었는지 모르겠다.
김현식이 떠나버린 후 나는 그의 음악동료이자 친구였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큰 소외감을 느끼고 있었다. 동부 이촌동의 상갓집에 모여든 많은 이들이 과하리만치 표출해 내는 슬픔과 애절함 속에 내 슬픔의 자리는 눈물 한 방울의 평수만큼도 남겨지지 않았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단지 한편에 물러서서 되새겨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남기고 간 음악의 혼이었다. 그의 생명의 오저에서부터 솟구쳤던(어쩜 그도 몰랐을), 그의 의식세계 저 밑바닥 심층에서부터 눈 뜨고 있었을, 음악의 혼 말이다. 동부이촌동 아파트 주차장의 한 쪽에 쳐놓은 상가집 천막 안, 저 혼자 돌아가는 카세트에선 그의 유작 노래 육성이 한없이 반복되고 있었다. 그가 떠난 후 남겨진 이승의 쓸쓸한 풍경이었다.
▲ 동숭로 대학로를 걷다가 다리가 아파 마로니에 공원 벤치에 앉아있다가 찍힌 사진이 <비오는날 수채화> 앨범 커버가 되었다. |
ⓒ 지구 레코드 |
음악에 있어 혼이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소울'은 모든 예술의 본질이며 실체이기에 누구나 생색내지 않으면서 표출하는 것이요, 누구든 증거없이 느낌만으로 확인되는 본질인 것이다.
그래서 음악인에 있어 혼의 표출은 그만큼 고통이며 아픔인 것이다. 혼이 깃들지 않은 노래란 빈 껍데기처럼 초라한 소리의 소음이다. 김현식의 노래는 그의 고통과 아픔만큼 정비례하고 있었다.
엉뚱한 끼를 곳곳에 퍼뜨리고 다녔던 피에로 같았던 김현식. 사랑천국 문지기로 천국 문 앞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을 것 같은 그가 그립다. 그가 있는 곳이 이 우주 어느 지점일까, 거기선 방랑과 무질서와 두려움과 외로움이 아닌 평화와 온전함으로, 드넓은 대지와도 같은 편안함으로 행복했으면 좋겠다. 동숭로의 커다란 고목 밑 벤치에 앉아 그날에 찍었던 사진을 보며 그를 생각한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가수이자 싱어송라이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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