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남대의 은퇴일기㊷] 몸 따로 마음 따로

데스크 2024. 1. 3.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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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유수와 같다 했던가. 어릴 때 ‘마음은 청춘인데 몸이 말을 안 듣는다’라는 어른들의 말씀을 자주 들었다. 그때는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가 잘되지 않았는데 이제 그 말이 실감나게 다가온다.

120미터의 쌍둥이 폭포인 땃팬ⓒ

라오스 남부 지역의 팍세에서 볼라벤 고원으로 가는 길에 있는 라오스에서 가장 높은 120미터 높이의 땃팬이라는 쌍둥이 폭포에 들렀다. 주차장 입구에 들어서자 지축을 울리는 듯한 우렁찬 폭포 소리가 들린다. 관광객들이 난간에 빼곡하여 폭포를 내려다보기도 쉽지 않았다. 집라인을 타려는 사람들로 붐벼 한 시간은 기다려야 할 정도다. 대부분 이삼십대의 젊은이들이지만 호기심이 발동한다. 아내는 위험하다며 타지 말라는데 가이드는 이곳에 자주 오는 관계로 책임자를 알아 별로 기다리지 않고 탈 수 있다며 유혹한다. 과연 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이번에 타지 못하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 것 같아 용기를 내었다. 장비를 착용하고 헬멧을 쓰고 옆에서 십여 미터 로프에 줄을 걸고 브레이크 잡는 연습을 했다. 도중에 브레이크를 잡으면 중간에 대롱대롱 매달릴 수 있다며 주의하라고 한다.

집라인을 타고 땃팬 폭포를 건너는 관광객ⓒ

밧줄에 바퀴를 걸고 안전줄을 연결했다. 젊은이들은 핸드폰을 거치대에 끼우고 자기가 타는 장면을 직접 촬영하는데 거기까지 도전할 용기가 없다. 까마득한 아래로 폭포수가 떨어지는 모습이 보인다. ‘괜찮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지만 ‘다른 사람들도 다 하는데 내가 못할소냐’ 하는 각오를 다지며 로프에 도르래를 걸고 발을 들자 매달렸다는 것이 실감난다. 옆줄에서는 환호성을 울리며 저 건너편으로 미끄러져간다. 갑자기 ‘칠순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 어린아이들처럼 뭐 하는 짓이지’, ‘젊은이들 틈에 끼어 분수도 모르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는 사이 스르르 미끄러져 계곡으로 빨려든다. 육체를 이탈한 혼만 남았는지 공포는 유희에 잠식된다. 시원하게 떨어지는 폭포와 까마득한 계곡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새들이 유유히 날며 허공을 배회하는 이유를 알 듯도 하다. 주변에 펼쳐지는 멋진 풍경에 두렵다는 생각보다는 가슴이 펑 뚫리는 것 같다. 지상을 내려다보며 세상을 얻은 듯 정신이 팔린 사이 아득하게만 보였던 반대편에 닿는다.

외줄 타고 건너가기, 밧줄 타고 오르기와 같은 코스를 거치며 집라인을 다섯 번이나 탔다. 두 번째 집라인을 탈 때부터는 요령이 생겨 핸드폰으로 동영상까지 촬영하며 출발했던 지점으로 돌아왔다. 나이만 생각하고 도전하지 않았다면 느끼지 못할 짜릿한 쾌감을 맛보았다. 불현듯 ‘사무엘 울만’의 청춘이란 시가 떠오른다. 청춘이란 장밋빛 볼과 붉은 입술을 가진 어느 한 시기가 아니라, 두려움을 이기는 용기와 안이함을 뿌리치는 모험심 같은 마음가짐을 가질 때는 예순 살 노인이 스무 살 청년보다 더 청춘일 수 있다고.

열기구 안의 공기를 뜨겁게 하는 가스 램프ⓒ
열기구에서 내려다본 방비엥 시가지 풍경ⓒ
열기구를 배경으로 서 있는 작가ⓒ

가족 여행은 액티비티의 천국 방비엥으로 이어졌다. 저녁노을과 함께 각양각색의 열기구가 하늘을 수놓는다. 다음날 여명이 밝아올 즈음에 그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딸과 함께 하늘로 올랐다. 땅에서 멀어지며 조금씩 떠오르는 동안 사방은 미니어처로 변하고 있었다. 저 멀리 산 너머로 얼굴을 드러내는 아침 햇살을 받으며 도시와 들판과 유유히 흘러가는 강과 주변 산의 풍경이 눈 아래 펼쳐진다.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조용한 마을에는 자동차가 드문드문 오가고, 누렇게 익은 벼들이 출렁이는 황금 들판은 물감을 색칠해 놓은 것처럼 환상적이다. 지상에서는 감상하지 못하는 멋진 경치를 눈에 담고 가슴 깊이 새겨 추억의 한 페이지로 고이 간직하였다.

불루라군의 에메랄드 빛 연못 풍경ⓒ

오후에는 불루라군으로 갔다. 숲속에는 에메랄드빛 푸른색을 풀어 놓은 것 같은 연못이 어서 오라고 손짓한다. 주변 식당에서는 식사와 휴식을 취하며 아름다운 여인들의 수영 모습을 감상하거나, 아름드리나무에 설치한 높은 점프대에서 물속으로 뛰어드는 젊은이의 호쾌함에 도취하기도 한다. 시원스러운 모습을 바라보고만 있을 수 없어 수영복으로 갈아입었다. 점프대에 올라가 아래를 보자 밑에서 보았던 것과는 달리 까마득하여 자신만만하던 기세가 움츠러든다. ‘다른 사람들도 하는데 죽기야 하겠어’라며 용기를 내어 본다. 시간을 끌면 더 못 할 것 같아 무작정 뛰어내렸다. 짜릿함과 함께 물속 깊숙이 가라앉는다. 수직 자세를 유지하지 못했는지 손바닥이 화끈거린다. 아내가 촬영한 동영상을 보니 자세가 엉성하다. 올림픽 경기할 때 점프대에서 뛰어내리는 선수들은 ‘폭’ 하면서 물 튀김은 물론 소리도 거의 없이 들어가는데 나는 온 연못에 물을 튀긴다. 제대로 해 봐야겠다는 오기가 생겨 다시 올라갔다. 아래에서 보고 있는 가족들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줘야겠다는 마음으로 뛰어내렸는데 이번에는 자세가 구부정했던지 엉덩이가 얼얼하다. 아픔은 잠시일 뿐. 뿌듯하다. 이런 놀이는 젊은이의 전유물이 아닌가. 흥미와 모험의 유혹으로 시작했지만, 내일이면 나는 고희다. 이만하면 아름다운 도전이라고 우쭐해도 되지 않을까.

불루라군 점프대에서 뛰어내리는 작가ⓒ

비엔티안 외곽 1시간 거리에 있는 리조트를 찾았다. 자연보호 구역 내 숲속 계곡을 따라 숙소와 수영장과 각종 시설이 있다. 수영장 옆 식탁에서 식사하고 있는데 어린아이들이 물미끄럼틀을 신나게 타고 내려와 수영장으로 풍덩 떨어지며 깔깔거린다. 식사 후 모두 수영장으로 들어갔다. 호기심이 발동하여 사위와 함께 미끄럼틀 꼭대기로 올라가 몸을 눕혔다. 처음에는 천천히 내려가더니 갈수록 가속도가 붙어 엉성하게 만든 미끄럼틀 벽을 뚫고 튕겨 나갈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큰 충격을 받았는지 수영장에 떨어진 후 한동안 일어설 수가 없었다. 체중이 있다 보니 어린이들보다 속도가 엄청 빨랐던 모양이다. 미끄럼틀 벽에 부딪힌 충격으로 왼쪽 어깨가 얼얼하다. 약간의 통증이 있어 약을 먹으며 지내다 귀국 후 병원에 들러 엑스레이를 촬영하고 초음파검사를 했다. 의사는 오십견 증상이 있는데다 충격으로 신경을 건드려 그런 것 같다며 주사와 진통소염제를 처방해준다. 나이를 생각하지 않고 넘치는 열정을 행동으로 옮긴 결과다. 별 일없이 잘 나아야 할 텐데.

신나고 새로운 것을 보면 아직도 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가슴속에는 청춘의 피가 끓고 있는지 마음은 젊었을 때와 별반 다름없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라고 몸이 마음을 따라주지 못한다는 말을 인정해야 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 것 같아 조금 서글퍼지기도 한다. 그러나 의미 있는 순간들은 아주 짧게 지나간다. 그 순간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 영원히 잊지 못할 추억의 빛을 남긴다. 나이에 위축되지 않고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무쏘의 뿔처럼 당당히 나아가리라.

조남대 작가ndcho5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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