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떠나는 지동원, 런던올림픽 주역의 아쉬운 퇴장
[이준목 기자]
국가대표 출신 공격수 지동원이 K리그1 FC서울을 떠난다. 서울 구단은 지난 1월 2일 2023년을 끝으로 계약이 종료된 지동원이 팀을 떠나게 됐다고 발표했다.
지동원은 K리그 전남 드래곤즈에서 프로에 데뷔했고 이후 유럽무대에 진출하여 잉글랜드 선덜랜드, 독일 아우크스부르크, 도르트문트, 마인츠, 다름슈타트, 브라운슈바이크 등에서 활약했다. 국가대표로도 A매치 55경기에 출전하여 11골을 기록했고, 2011년 AFC 아시안컵, 2014 브라질월드컵 등에 출전했다. 특히 지동원의 커리어에서 가장 빛난 순간은 2012년 런던올림픽 U-23 대표팀의 일원으로 활약하며 한국축구 역사상 최초의 올림픽 동메달을 수확한 장면이었다.
지동원은 2021년 7월 10년 가까이 활약했던 독일 무대를 떠나 FC서울에 입단하여 K리그에 복귀했다. 화려한 경력을 지닌 지동원의 합류에 서울 팬들의 기대는 컸다. 하지만 지동원은 잦은 부상에 시달리며 서울 유니폼을 입고 두 시즌 반 동안 K리그 25경기에 출전하여 2골 2도움이라는 실망스러운 성적에 그쳤다.
2024시즌을 앞두고 새롭게 서울의 지휘봉을 잡은 김기동 신임 감독은 최근 몇 년간 하위권을 전전한 팀의 체질개선을 위하여 선수단 정리작업을 단행하고 있다. 베테랑 중 기성용에 대해서만 전력구상에 포함시키겠다는 입장을 밝혔을 뿐, 오스마르, 비욘 존슨, 정현철, 강상희, 김진성, 김성민, 김윤겸 등 다수의 선수들과 계약 종료로 결별을 선택했다. 지동원 역시 계속된 부진과 몸상태를 놓고 끝내 구단의 신뢰를 얻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지동원 역시 구단의 발표 하루 뒤인 3일에 자신의 SNS에 직접 글을 올리며 서울 팬들에게 작별인사를 전했다. 지동원은 "FC서울 선수로서 경기장에서 여러분께 인사드릴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다. 힘든 시기가 많았지만 FC서울 일원으로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고 인생을 배운 시간이었다"고 고백했다.
이어 지동원은 "2년 6개월, 긴 시간 동안 경기장에서 뛰지 못했던 시간들이 많아 죄송하고 아쉬운 마음이 크다. 그럼에도 과분한 사랑을 주셔서 정말 감사드린다. 동료들과 웃고 떠들고 싸우고 그리고 팬분들과 승리를 함께 즐긴 행복한 기억만 가지고 가겠다"고 덧붙였다.
어린 시절에 데뷔하여 오랜 시간을 뛰어왔기 때문에 베테랑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지동원은 아직 만 32세에 불과하다. 현 국가대표팀의 주장인 손흥민과는 불과 1살 차이다. 동시대에 국가대표팀과 유럽무대에서 함께 활약하며 같은 '런던올림픽 세대'로 분류되는 기성용-구자철-이청용-김영권보다는 어리다. 태극마크를 달고 첫 메이저대회였던 2011년 AFC 아시안컵에 주전 공격수로 출전했을 당시 지동원의 나이는 불과 19세였다.
한때는 한국축구의 차세대 공격수이자 최고의 유망주로 기대를 모았던 지동원이지만, 어느덧 말년에 접어든 현재 결과적으로는 아쉬운 커리어를 남겼다. 월드컵과 올림픽같은 메이저대회도 밟아보고, 유럽 빅리그에서도 나름 오랫동안 뛰어봤으니 겉보기에 화려하기는 했지만 실속은 적었다.
애매한 포지션과 다재다능함이 한창 성장할 시기의 지동원에게는 독이 된 측면이 있었다. 지동원에게 최적의 포지션은 세컨드 스트라이커 혹은 공격형 미드필더였다. 그런데 뛰어난 신체조건과 연계능력 때문에 지동원은 소속팀과 대표팀 모두 최전방에서 2선 전 포지션을 넘나드는 멀티플레이어로 이리저리 기용되곤 했다. 특히 대표팀에서는 조광래호 시절 첫 메이저대회였던 2011 아시안컵의 영향으로 한동안 최전방 원톱 자원이라는 이미지가 박혀버렸다.
하지만 지동원은 애초에 득점력이나 포스트플레이에 강점이 있는 선수가 아니었다. 손흥민의 팀 동료이자 지동원과 신체조건이 비슷한 데얀 쿨루셉스키(토트넘)가 스트라이커가 아닌 중앙지향적인 인버티드 윙으로 주로 기용되는 것과 비슷하다. 애석하게도 지동원은 신체적 전성기에 소속팀에서나 대표팀에서나 자신이 원하는 포지션에서 꾸준히 뛰어보지 못했다. 이는 지동원의 다소 부족한 공격포인트 생산능력과 맞물려 '골 못 넣는 공격수'라는 오명으로 돌아왔다.
또한 지동원이 커리어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냈던 독일 아우크스부르크는 전형적인 중하위권팀이었다. 지동원이 선수층이 얇은 아우크스부르크에서 부족한 공격포인트 생산력으로 중용받은 이유는 여러 포지션을 두루 소화할 수 있는 자원이었기 때문이었다. 팀 사정에 따라 지동원의 주포지션은 매시즌 최전방에서 2선 좌우 측면과 중앙으로 일관성 없이 계속 바뀌었다.
이는 기록상의 활약을 떠나 아우크스부르크의 부족한 부분을 메워주는 데는 효과적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지동원의 꾸준한 성장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지동원은 독일무대에서 1~2부리그를 오가며 여러 시즌 유럽파로 선수생활을 이어가기는 했지만, 더 이상 아우크스부르크 레벨 이상의 팀으로 올라기지는 못했다. 한편으로 여러 포지션에서 활용할 수 있지만 어느 포지션에서도 경쟁자들에 비하여 확실한 우위를 보여주지는 못했다는 게 지동원의 한계이기도 했다.
다소 소극적인 멘탈도 약점으로 지목됐다. 골에 가장 가까운 공격수들은 다른 포지션에 더 주목을 받는 만큼 항상 결과에 따라 비난도 감수해야 한다. 지동원은 이런 압박에 취약한 모습을 자주 보였다. 선덜랜드 시절 결정적인 득점찬스를 머뭇거리다가 놓치고 당시 디 카니오 감독에게 '겁을 먹은 것처럼 보였다'는 질타를 듣기도 있으며, 대표팀 선배였던 구자철로부터 소극적인 플레이를 지적당하며 '너는 수비수냐?'라고 지적을 들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대신 지동원은 종종 기대하지 않았던 상황에서 예상밖의 한 방을 터뜨리는 경우가 있었다. 선덜랜드 시절 맨시티전 극장골, 런던올림픽 8강 영국전 선제골, 아우크스 시절 뮌헨전 2골 등 빅매치에서 강팀을 상대로 결정적인 골을 종종 터뜨리며 의외의 해결사 기질을 보여주곤했다. 결과적으로 한 팀의 주역을 감당하기에는 부족했지만, 기대와 압박에서 자유로운 지동원은 팀에 플러스를 더해줄 수 있는 훌륭한 도우미로 적합한 자원이었다.
지동원은 유럽시절부터 잦은 잔부상으로 신체능력이 하락했고 이는 결국 K리그로 복귀한 이후에도 치명적인 약점으로 반복되면서 결국 커리어의 이른 몰락을 불러왔다. 지동원보다 선배인 기성용이나 이청용, 김보경 등이 유럽무대에서 돌아온 이후에도 K리그에서 수준급 기량을 유지했던 것과 비교된다.
런던올림픽 세대의 막내급이었던 지동원은 당시 주역들 중에서는 가장 험난한 커리어의 말년을 보내고 있다. 차라리 지동원이 유망주 시절에 K리그에서 자신의 포지션이나 플레이스타일을 확실하게 정립하고 차근차근 유럽에 나갔더라면 어땠을까.
물론 서울을 떠난 것이 축구인생의 마지막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동국(전 전북)이나 주민규(울산)처럼 지동원보다 많은 나이에 K리그에서 극적으로 재기하고 득점왕까지 차지했던 선배들의 사례도 있다. 지동원도 이대로 잊혀지기에는 아직 젊다. 과연 지동원에게 다시 한번 재기의 기회는 돌아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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