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랑] 죽음은 ‘꽉 막힌 벽’에 불과할까요?
철학을 전공한 유호종 박사는 ‘죽음에게 삶을 묻다’라는 책에서, 죽음을 똥으로 볼 것인가 된장으로 볼 것인가에 따라 죽음을 대하는 태도가 전혀 달라진다고 얘기합니다. 둘의 공통점은 그 냄새가 몹시 이상하다는 점이죠. 마음 수양을 아무리 오래 했어도 똥을 한 숟가락 퍼서 입에 넣고 구수하다고 생각할 수는 없기에, 만일 죽음이 똥과 같은 것이라면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 절대로 생각도 하지 않고 지내는 것이 상책일 것입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냄새가 고약하지만 찌개를 해서 먹어 보면 아주 맛있는 음식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된장처럼, 죽음이 된장 같은 것일 가능성은 없겠느냐고 저자는 묻습니다.
또 저자는 많은 사람들은 죽음이 TV 리모컨의 전원 스위치가 눌러져 화면이 깜깜해진 상태와 같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런 게 아니고 다른 케이블 TV 버튼이 눌러져 그 채널로 들어가게 되는 것과 같은 게 아닐까 생각해 보길 제안합니다.
필자의 임상 경험으로 볼 때, 말기 암으로 인한 극심한 통증으로 괴로운 나날을 보내던 분들도 숨을 거두기 직전과 숨을 거둔 직후에는 얼굴에 평화로운 표정이 깃듭니다. 이를 보면, 죽음은 똥 같은 것이기보다는 된장일 가능성이 더 많아 보입니다.
영화 ‘히어 애프터(Here after)’는 휴가를 떠난 인도네시아에서 쓰나미에 휩쓸려 심장과 호흡이 멎었다가 사람들에 의해 구조된 후 심폐소생술로 되살아난 여주인공의 이야기가 담깁니다. 자신이 체험한 것의 정체를 알아가는 과정이 그려집니다. 아래는 주인공이 남자친구와 나누는 대화입니다.
“물어 볼 게 있어, 죽으면 어떻게 될까?”
“이상한 질문이네. 죽으면 그냥 불이 꺼지는 거지. 왜?”
“그냥 그거야? 꺼지는 것?”
“완전히 꺼지지. 플러그가 빠지는 거야. 영원한 공허겠지.”
“뭔가 존재할 순 없을까? 내세 말이야.”
“없을 거야. 그런 게 있다면 지금쯤 누군가 발견했겠지. 증거가 있을 거야. 그런데 이 좋은 자리에서 그런 것들만 물어볼 거야?”
주인공의 남자친구가 말하듯 죽음은 정말 깜깜한 어둠이고 영원한 공허일까요? 과연 죽음은 꽉 막힌 벽이기만 할까요? 죽음을 벽으로 여길 것인지 아니면 벽에 나 있는 문으로 여길 것인지는 우리의 몫입니다. 문 저편의 다른 차원으로 옮겨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삶을 살아가는 태도와 방식이 크게 달라집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굿 바이’는 죽음과 용서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해보게 합니다. 오케스트라의 첼로 연주자인 주인공은 악단이 갑자기 해체되는 바람에 실직한 후 고향에 내려가 일자리를 찾습니다. 여행 도우미를 구한다는 광고를 보고 찾아간 곳이 사실은 ‘영원한 여행’ 도우미, 즉 시신을 염습해 입관하는 일을 하는 곳이었죠. 보수를 후하게 줄 테니 함께 일하자는 사장의 제안을 엉겁결에 받아들인 후 염습사로서 겪게 되는 여러 에피소드가 가슴 뭉클한 감동과 함께 유머러스하게 그려집니다.
주인공의 어릴 적 친구 어머니는, 건물을 헐고 큰 빌딩을 짓자고 떼를 쓰는 아들의 성화에도 오랜 단골손님들의 신의를 저버릴 수 없다며 목욕탕을 운영해 오던 중 갑작스럽게 사망합니다. 주인공은 경건하게 정성을 다해 염습을 해드리고 시신은 화장터의 화장로로 옮겨지는데, 목욕탕의 수십 년 단골손님이자 오랜 세월 화장로의 불을 지피는 일을 해 온 노인은, 뒤늦은 후회로 흐느껴 우는 고인의 아들에게 슬픔을 누르며 이야기합니다.
“여기 화장터에서 오래 일하면서 알게 됐지. 죽음은 문이야. 죽는다는 건 끝이 아니야. 죽음을 통과해 나가서 다음 세상으로 향하는 거지. 난 문지기로서 많은 사람을 배웅했지.”
오랜 경험에서 체득한 노인의 시각처럼, 죽음을 문으로 보는 죽음관은 우리의 일상생활에 긍정적이고도 심대한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 발간된 방대한 양의 죽음학 책인 ‘생의 마지막 춤: 죽음, 죽어감과 대면하기(The Last Dance; Encountering Death and Dying)’의 서문에서도, 죽음을 벽으로 볼 것인지 문으로 볼 것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스위스 출신의 정신과 의사이자 분석심리학을 창시한 칼 구스타브 융은 그의 수제자였던 폰 프란츠 여사를 통해 “죽음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알 수 없는 세계로 가는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또한 융 자신도 생전에 썼던 편지에서, “죽음의 저편에서 일어나는 일은 말할 수 없이 위대해서 우리의 상상이나 감정이 제대로 파악하기조차 어렵다”고 했지요.
우리는 여행을 가기 전, 가려는 곳에 대해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기도 하고 관련 책자를 사서 열심히 정보를 얻으려고 합니다. 또 떠나기 직전까지 집안을 정돈하고 다른 가족을 위해 이것저것을 챙겨 놓거나 단속해 놓고, 자신이 집을 비운 사이 필요할지도 모르는 여러 가지 사항을 메모로 남겨 놓습니다. 그런데 최장거리 여행이라고 할 수 있는 죽음을 앞두고는 어떤 준비를 하고 계신가요? 자신의 죽음을 위한 사전 준비는 아무리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대학 총장을 지낸 명예교수 한 분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대화는 ‘평등하다’고 말합니다. 아파트 평수와 자식의 학교 시험 등수 외에는 만나서 하는 얘기가 별로 없다는 겁니다.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돈이 필요하고 명예도 추구하는 법이지만, 이러한 물질적인 관심에만 붙들려 살다 가기에는 우리가 찾아야 하는 삶의 의미들이 실로 무궁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사람은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삶은 무엇인가? 살아갈 이유는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 갈 것인가?’와 같은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사유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죽음에 대해서도 피하지 않고 성찰하게 됩니다.
앞서 언급한 책 ‘죽음에게 삶을 묻다’에서는, 죽음을 직시한다는 것은 지상에 머물렀던 시선을 돌려 먼 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것과 같다고 얘기합니다. 죽음에 대해 제대로 성찰한다면, 두려움에 사로잡혀 삶의 의욕을 잃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빛나는 삶의 의미를 발견하게 될 겁니다.
죽음을 직시하는 게 두렵다면 지금 생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라도 한 번쯤 죽음이라는 문을 상상해보시길 바랍니다. 나 자신의 삶뿐 아니라 이웃과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 나눔, 사랑의 실천에 더 가까이 다가서게 될 것입니다.
암 환자 지친 마음 달래는 힐링 편지부터, 극복한 이들의 노하우까지!
포털에서 '아미랑'을 검색하시면, 암 뉴스레터 무료로 보내드립니다.
Copyright © 헬스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미랑]“나를 믿고 의사를 믿는 것, 암을 이겨내는 가장 좋은 지름길”
- “부기 빼주고 다이어트 효과까지”… 욕실서 스타들이 하는 ‘관리법’, 뭘까?
- 혈당 안 잡히는 이유 도대체 뭔지 모르겠을 때… 아침 '이 습관' 점검해 보세요
- AZ 임핀지, 보험 급여 청신호… 담도암·간암 급여 첫 관문 통과
- ‘K보톡스’ 인기라는데… 휴젤·대웅제약·메디톡스 ‘톡신 3사’ 판매 실적은?
- 한미그룹 3인 “머크처럼 전문경영인 체제로… 독단적 의사결정 없어야”
- 뇌에 직접 투여하는 유전자 치료제… FDA, '케빌리디' 가속 승인
- SK플라즈마, 인도네시아 국부펀드 투자 유치
- 비보존제약, 3분기 매출 236억·영업이익 13억… 지난해보다 32.2%·13.3% 늘어
- 셀트리온제약, 3분기 영업이익 136억… 전년比 108.3% 증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