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엄지손톱만 한 우박…金과일 만든 '미친 날씨' 더 온다
" 매달 날씨와 전쟁을 치른 한 해였어요. "
경북 예천에서 30년 사과 농사를 한 최효열(64)씨는 지난 1년 동안 어느 때보다도 하늘이 원망스러웠다고 했다. 봄에는 이상 고온으로 사과 꽃이 보름 일찍 피었다가 갑자기 영하로 떨어져 꽃이 얼었다. 20%가 착과(열매가 열림)를 못 했다. 여름과 가을에는 폭우와 고온이 겹치면서 과수 전염병이 돌았다. 출하를 불과 2주 앞둔 10월 말에는 굵은 우박이 떨어지는 바람에 사과가 줄줄이 멍들고 썩었다. 최씨는 “천재지변으로 사과 수확량이 1년 전보다 절반으로 줄었다. 주변에는 우박 때문에 며칠간 밥도 못 먹고 앓아누운 농장주도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반세기 만에 가장 덥고 기온 변화 컸던 2023년
지난 1년간 “날씨가 미쳤다”고 했던 농부와 시민들의 하소연은 허언이 아니었다. 중앙일보가 기상청이 전국 관측을 시작한 1973년부터 지난해까지 51년 동안 전국 62개 지점의 기온 데이터를 분석했더니 지난해 평균기온은 13.7도로 반세기 기상 관측 역사상 가장 높았다. 기존 최고 기록이었던 2016년(13.4도)보다 0.3도 올랐다. 평균 최고기온과 최저기온 역시 각각 19.2도와 8.9도로 신기록을 세웠다.
특히 기온 변동이 심했다. 겨울철을 중심으로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냉탕과 온탕을 오갔다. 1월과 11월, 12월의 평균기온 격차(일평균기온이 가장 높았던 날과 낮았던 날의 격차)는 각각 월별 역대 1위를 기록했다. 지난 12월은 20.6도의 기온 편차를 보이면서 계절에 관계없이 가장 큰 차이가 났다. 기상 관측을 시작한 이래 가장 더우면서도 극단적인 날씨를 오간 것이다. 기상학자들은 기후변화의 두 얼굴로 불리는 온난화와 변동성 증가가 동시에 나타난 현상으로 보고 있다. 이런 ‘미친 날씨’로 인해 농작물 생산량이 감소하고 과일은 금값이 된 셈이다.
줄어든 생산량에 과일 금값 됐다
지난해 봄부터 이어진 이상기후 현상의 여파로 과일을 비롯한 농작물 생산량은 줄줄이 감소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사과와 단감 생산량은 전년보다 각각 25%와 32% 줄어든 것으로 추정된다. 배 생산량 역시 19%가량 줄었다. 생육기에 기상 악화로 착과 수가 줄고 서리·우박 피해가 컸던 게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김원태 농촌경제연구원 원예실장은 “2010년대 이후부터 냉해 같은 기상재해로 인한 피해가 잦아지고 있다”며 “집중호우 이후 고온이 지속되면서 수확기에는 탄저병이 크게 퍼져 생산량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생산량 감소는 가격 급등으로 이어졌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유통정보를 보면 2일 기준으로 사과와 배의 가격은 10개당 2만 9700원과 3만 3900원이다. 1년 전보다 각각 35.7%, 32.5% 비싸졌다. 겨울이 제철인 딸기 역시 이상고온 여파로 초겨울에 출하량이 줄면서 금값이 됐다. 경기 안산에서 딸기 농장을 하는 정미근 대림농장 대표는 “올가을부터 날씨가 더워서 보통 12월 초에 딸기를 출하하는데 12월 셋째 주까지 출하가 늦어졌다”며 “딸기 농가 대부분이 비슷한 상황이라 딸기 가격이 급등한 것”이라고 했다.
한겨울 부산에 우박…“더 극단적 기상 변화 온다”
“변동성 증가로 기후 리스크 커져…대비 시스템 갖춰야”
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지금 추세대로 날씨의 변동 폭이 커지고 사계절의 경계가 무너지면 농업뿐 아니라 경제 전반에 걸쳐 기후 리스크가 커질 것”이라며 “기상 변화에 대한 예측 능력을 키우고 모니터링을 강화해 극한 기상에 즉각적으로 대비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천권필·정은혜 기자 feeling@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불륜녀 끼고 항암까지 다녔다…남편 욕창 걸리자 아내의 선택 | 중앙일보
- 대표 관광지 만장굴마저 폐쇄…이미 113만명 등돌린 제주 비명 | 중앙일보
- "노량진 대게, 썩은 것 아니다"…'검은점' 정체 밝혀낸 전문가 | 중앙일보
- 안도 다다오 설계한 美최고가 주택…2491억에 산 '큰손' 女가수는 | 중앙일보
- "메뉴판 바꾸는 돈이 더 들어요" 소줏값 그대로 둔다는 식당 | 중앙일보
- NBA 중계화면에 잡힌 이부진…그 옆에 앉은 '훈남' 정체 | 중앙일보
- 연 4.7% 이자 매일 나온다…7조 몰린 ‘연말정산 준비물’ | 중앙일보
- 이렇게 무서운 미키마우스는 처음…기괴한 얼굴로 살인마 됐다 | 중앙일보
- 아빠는 강간 살인범으로 몰렸다…10살 아들 속인 조작된 연필 [나는 무죄입니다] | 중앙일보
- 장범준·성시경도 분노…"6만원 콘서트 티켓, 100만원에 팔더라"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