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 주장 거부하는 비토크라시 멈추고, 토론 문' 열어야" [박성민 정치의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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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정치는 표 얻는 기술로 전락한 지 오래입니다. 공익보다 사익을 앞세운 정치인들이 야기한 극심한 갈등은 국민을 좌절케 하고 나라를 퇴행시키고 있습니다. 박성민 정치컨설턴트는 아래 칼럼에 담은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정치의 재구성을 위해 노력하는 정치인들을 만나 그들의 진단과 해법을 들었습니다. 첫 인물은 오세훈 서울시장입니다.
」
최근 ‘피크 코리아(Peak Korea)’란 말이 자주 나옵니다. 올해 합계출산율은 0.68, 내년은 0.65명으로 더 추락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빨리 발전한 나라’가 ‘가장 빨리 사라진 나라’가 될 수도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지금이 정점일까요.
1948년 대한민국이 태어났을 때 국제사회는 ‘100년 뒤엔 존재하지 않을 나라’로 전망했습니다. 그러나 ‘조국보다 먼저 태어난 세대’의 헌신 덕에 위대한 승자가 됐습니다. 미·중 신냉전 시대에도 그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까요.
세계화에 따른 경제적·정치적 ‘이중 양극화’는 세계 각국에서 포퓰리즘과 극단적 진영 싸움이란 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했습니다. 미국 하원의장에서 해임된 케빈 매카시는 “워싱턴이 더 많이 일할수록 미국은 더 나빠진다”고 한탄했는데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의도가 더 많이 일할수록 나라가 더 나빠집니다.
세상엔 ① 변화를 이끄는 사람 ② 변화를 뒤쫓는 사람 ③ 변화가 두려운 사람 ④ 변화에 둔감한 사람이 있습니다. 세상의 변화를 이끌어야 할 정치는 지금 변화를 두려워하거나 최소한 둔감합니다. 애국심과 공적 책임감은 뒷전이고 당파적·사적 이익이 우선입니다. 통찰이나 성찰 없이 현찰만 좇습니다.
저는 2006년 『강한 것이 옳은 것을 이긴다』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원형극장에서 노예 출신 검투사들은 피 흘리며 싸우다 죽어간다. 황제와 귀족들은 술 마시며 즐긴다. 그러나 지금 칼 들고 싸우는 사람은 누구인가? 놀랍게도 황제다. 대중은 술 마시며 즐기고 있다. 이제 정치인은 더는 통치하는 자가 아니다. 죽지 않기 위해 칼을 휘두르는 검투사 신세가 됐다.’
1990년대만 해도 달랐습니다. 정치가 세상을 이끌던 자유와 개혁의 시대였습니다. 아고라에서 언론과 함께 공론을 주도했습니다. 지금은 콜로세움에서 칼로 상대를 죽이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자유주의 관점에서 보수주의와 사회(진보)주의의 차이 설명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이를 우리 사회에 원용하면 80년대는 보수주의에 맞서 양김(김영삼·김대중)으로 상징되는 자유주의가 진보주의와 연합한 시기였습니다. 90년대는 자유·보수주의 세력이 3당 합당과 DJP(김대중·김종필)로 연합한 시기입니다. 자유주의자인 김영삼·김대중이 헤게모니를 잡았기에 자유와 개혁의 시대가 될 수 있었습니다. 정치인·지식인·언론인이 나라의 비전을 놓고 논쟁하던 시대가 그립습니다. 2000년 이후 보수 정당은 박근혜·윤석열 시대를 거치며 자유주의 세력이 사실상 소멸했습니다. 민주당도 문재인·이재명 시대를 거치며 같은 길을 갔습니다. 양당 모두 자유주의적 개혁 세력은 없습니다.
지금 대한민국 정치는 상대 정파 주장을 모조리 거부하는 비토크라시(Vetocracy)의 늪에 빠져 있습니다. 꿈(비전)도, 길(전략)도, 힘(국민통합)도 잃었습니다. 한국 정치는 상대를 ‘이길’ 경쟁자가 아니라 ‘죽일’ 적으로 봅니다. 정치를 재구성해야 합니다. 콜로세움 정치를 청산하고 아고라 정치로 돌아가야 합니다.
탈냉전과 세계화 30년간 보수와 진보는 두 큰 대결을 벌였습니다. 보수는 ‘더 큰 대한민국’을 모토로 경제·문화를 역사상 가장 크게 키웠고, 진보는 ‘더 따뜻한 대한민국’을 내걸고 양극화의 틈새를 파고들었습니다. 또 다른 대결은 남북관계입니다. 민주당 대통령들은 “평화가 경제”라며 남북 정상회담을 했습니다. 보수 진영은 “경제가 평화”라고 맞섰습니다.
지금 신냉전과 탈세계화의 시대를 맞아 세계화의 승자 대한민국이 큰 위기를 맞았습니다. 대전환기에 새로운 상상력으로 정치를 재구성하려 분투하는 정치인들에게 나라의 비전과 전략, 그리고 정치의 미래를 묻는 이유입니다.
강찬호·안혜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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