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석운 칼럼] 지금이라도 특별감찰관을 임명하는 게 옳다
권력 비리 수사에 늘 단호
좌천과 징계도 감수하며 맞서
정작 취임 후 오랫동안
특별감찰관 자리 비워두는 건
‘거악 척결 검사’와 안 어울려
명품백 동영상 유포 이후
특검법 지지 여론 높아져
늦었지만 초심으로 돌아가야
윤석열 대통령은 검사 시절 권력 비리 수사에 늘 단호했다. 자신이 불이익이나 징계를 받아도 소신을 굽히거나 타협하지 않았다.
박근혜정부 때는 국정원 댓글 수사를 하다 좌천됐다. 문재인정부 때는 당시 민정수석이자 법무부 장관으로 지명된 조국의 비리를 수사하다 여권과 충돌했다. 문 전 대통령의 오랜 친구를 울산시장으로 당선시키기 위해 청와대가 개입한 사건을 서울중앙지검이 수사하도록 지휘한 것도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이었다. 이성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수사팀이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과 황운하 더불어민주당 의원, 송철호 전 울산시장 등 13명을 기소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윤 총장의 뚝심이 있었다. ‘살아있는 권력에 맞서 거악을 척결한 검사 윤석열’의 이미지가 그를 대통령 자리까지 밀어 올렸다. 그랬던 윤 대통령이 취임 이후 본인의 가족과 측근의 비위를 감찰하는 특별감찰관 자리를 오랫동안 공석으로 둔 것은 뜻밖이다.
역대 대통령들은 민주화 이후에도 예외 없이 가족이나 측근들의 비리로 곤욕을 치렀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아들 현철씨가 한보 비리로 구속되자 대국민 사과를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역시 두 아들이 비리 혐의로 구속되자 사과 성명을 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형 건평씨의 구속 직후 사과했고, 퇴임 후 부인 권양숙 여사가 검찰 수사를 받자 극단적인 선택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그의 형 이상득 전 의원 의 구속 직후 사과문을 발표했고, 퇴임 후에는 이 전 대통령 본인이 뇌물 혐의로 구속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비선 실세 최서원(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사건으로 탄핵당하면서 구속됐다. 대통령 가족과 측근들의 비리는 정권의 몰락이나 도덕성 추락으로 이어졌다.
특별감찰관은 이를 막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그런데 박 전 대통령이 2013년 임명한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이 특별감찰관은 우병우 당시 민정수석의 비위를 찾아내고 그를 검찰에 고발했다. 하지만 감찰내용을 언론에 흘렸다는 이유로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 임기 3년을 채우지 못하고 물러났다. 문재인정부는 임기 내내 특별감찰관을 임명하지 않았다. 이철희 당시 정무수석은 ‘국회 추천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핑계를 댔으나 문 전 대통령의 의지가 없었다고 봐야 한다. 특별감찰관이 있었다면 울산시장 선거개입이나 문 전 대통령의 전 사위 서모 씨의 특혜채용 의혹 등이 불거지지 않았거나 진작에 정리됐을 것이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특별감찰관의 부활을 약속했다. 그러나 집권 3년 차에 접어들도록 공석으로 두는 걸 보면 전임 대통령들처럼 특별감찰관을 껄끄러워하는 것 같다.
김건희 여사가 명품백을 받는 동영상이 공개된 지 한 달이 넘었다. ‘서울의소리’라는 인터넷매체가 몰래카메라 형태로 찍은 일종의 함정취재였다. 김 여사를 망신주려는 의도가 담긴 취재윤리를 비판할 수는 있지만, 동영상 속 김 여사의 말과 행동도 충격이다. 김 여사는 “왜 자꾸 이런 걸 사오느냐”, “이렇게 비싼 걸 앞으로는 절대 사오지 말라”면서도 선물을 거절하지 않았다. 특별감찰관이 알았다면 결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사안이다. 선물이 전달된 건 2022년 9월인데 영상이 공개된 건 2023년 11월이다. ‘김건희 특검법’의 국회 통과가 임박한 시점이었다. 특별감찰관이 진작 활동했다면 김 여사에게 부정한 의도를 가지고 접근하는 사람들을 미리 차단할 수 있지 않았을까. 설사 특별감찰관이 사후에 인지했더라도 1년 2개월이 지나서야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여권이 곤경에 빠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국회를 통과한 김건희 특검법은 10여 년 전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을 다루자는 것으로 명품백과는 상관이 없다. 그러나 이 동영상이 퍼지면서 특검법에 대한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반대하는 여론이 압도적으로 많아졌다.
윤 대통령은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지금이라도 특별감찰관을 임명해야 한다. 윤 대통령마저 권력의 자기 감시를 소홀히 하거나 불편해한다는 인식을 심어준다면 지지자들의 눈초리도 차가워질 것이다. 그것이 국민의 오해라면 불식시킬 책무가 윤 대통령에게 있다. 윤 대통령이 끝내 특별감찰관 임명을 미룬다면 헌법소원감이다.
전석운 논설위원 swch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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