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홍의 시선] 위기의 자유주의 세계 질서

2024. 1. 3. 0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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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홍 국제외교안보에디터

지구촌에서 자유주의 세계 질서가 위협받고 있다. 권위주의 진영이 득세하고 자유민주주의 진영이 움츠러드는 모양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우위를 확보하고 있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대만 통일 의지를 밝히며 철권통치를 강화하고 있다. 오는 11월 치러지는 미국 대선에서는 조 바이든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대결이 유력한 가운데 트럼프가 여론조사에서 앞서고 있다. 유럽에서는 극우 정당들이 반이민 정서를 이용해 세력을 불리고 있다.

러시아군은 지난달 29일 우크라이나 전역에 2022년 2월 전쟁 발발 이후 최대 규모의 공습을 벌였다. 푸틴은 “결코 후퇴하지 않을 것”이라며 공세를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푸틴은 최근 여론조사에서 79.3%의 지지율을 기록해 오는 3월 대선에서 무난한 승리가 예상된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미국 유권자들의 피로감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친푸틴 성향의 트럼프가 대선에서 승리하면 푸틴에게는 유리한 환경이 마련된다. 미국·유럽의 우크라이나 지원이 크게 감소한 상황에서 푸틴의 공세가 심해지며 러시아가 점령지를 인정받고 전쟁을 끝낼 가능성이 크다.

시진핑은 신년사에서 “조국 통일은 역사의 필연”이라며 대만과의 통일 의지를 분명히 했다. 오는 13일 치러지는 대만 총통 선거를 앞두고 대만 유권자에게 보낸 경고라고 파이낸셜타임스는 분석했다. 시진핑은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대만을 통일해야 한다는 입장이어서 친미·독립 성향의 민진당 후보가 당선된다면 중국과 대만의 갈등은 더욱 고조될 전망이다. 그는 또 부패 척결과 군부 숙청 등을 통해 권력을 더욱 집중화하고 있다. 시진핑은 역사 유물주의에 따라 자본주의 미국에 대해 사회주의 중국이 최종 승리할 것이라 믿는다. 시진핑은 지난해 1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미·중 정상회담에서 “지구는 중국과 미국 두 나라가 살기에 충분히 넓다”고 말했다. 중국식 권위주의가 미국식 자유주의와 함께 지구촌을 양분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 권위주의 세력 지구촌에서 득세
한국은 자유주의 체제의 수혜자
미국 등 자유진영 연대 강화해야

유럽은 오는 6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 정당이 세력을 확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은 내전에 시달리는 시리아·리비아 등에서 이민자가 대거 유입되며 반이민 정서가 팽배해지고 있다. 극우 정당들이 득세할 경우 우크라이나 지원 축소 등 국제 질서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전망이다.

가장 큰 문제는 자유민주주의 보루로 여겨지던 미국이 ‘자국 우선주의’로 기울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2차 대전 이후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를 근간으로 세계 질서를 유지·확산하는 역할을 해왔다. 미국의 압도적 군사력은 세계 운송로를 안전하게 만들었고, 세계무역기구(WTO)로 대변되는 자유무역 질서는 전 세계 국가에 번영의 기회를 제공해왔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전쟁에서 미국이 막대한 피해를 보며 미국 내에서 국제 문제에 나서기보다는 미국 이익을 돌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시리아 내전에 개입을 꺼리며 발생한 대규모 이민 사태는 반이민을 내세운 유럽 극우 정당이 약진하는 기폭제가 됐다.

오는 11월 미국 대선에서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는 트럼프가 재선한다면 세계는 더욱 권위주의 색채가 짙어질 것이다. 트럼프가 집권할 경우 주한미군 철수나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탈퇴 등의 정책이 추진될 수 있고, 모든 수입품에 ‘10% 보편 관세’ 부과로 자유무역이 쇠퇴하고 보호무역이 활개 칠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일한 알리사 파라 그리핀 전 백악관 공보국장은 최근 ABC 방송에서 “트럼프의 두 번째 임기는 우리가 알고 있는 미국 민주주의의 종말을 의미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로버트 케이건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밀림의 귀환(The Jungle Grows Back)』에서 2차 대전 이후 자유주의 세계 질서가 유지된 데는 미국의 힘이 뒷받침됐다고 진단한다. 하지만 미국의 상대적 힘이 쇠퇴하고, 미국 보수·진보 진영이 모두 국제 문제 개입을 꺼리며 이 질서가 위협받고 있다. 그는 자유주의 세계질서가 무너지면 국제사회에 약육강식의 정글이 펼쳐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한국은 자유주의 세계 질서의 수혜자이다. 한국전쟁 이후 수출 위주의 경제정책이 성공한 데는 미국이 보장하는 자유무역체제가 뒷받침됐다. 세계에서 권위주의가 힘을 얻으면 무역 국가 한국의 입지는 그만큼 줄어든다. 한국의 국력에 걸맞게 미국·일본·유럽 등과 연대해 자유주의 세계 질서를 수호하는 것이 우리의 국익을 보장하는 길이다.

정재홍 국제외교안보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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