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도너번의 마켓 나우] 정치·기술·소비 변화가 무역 세계화 끝낸다
지난 50년 동안 전 세계 무역 거래량은 전례 없이 급증했다. 2022년 세계 상품 교역량은 1972년의 8배였다. 무역 세계화의 엄청난 수혜국인 한국의 2022년 수출량은 불과 30년 전인 1992년에 비해 13배나 증가했다. 이런 초고속 세계화 국면도 이제 끝이 보인다.
가장 명백한 이유는 ‘정치’다. 구조적 변화가 국내 경제에 불확실성을 초래하면 ‘경제 민족주의’가 보편적 현상으로 자리 잡는다. 국내에 문제가 생겼을 때 외국인 탓하기와 무역 장벽 쌓기는 정치권에서 매혹적인 수단이다. 세계무역기구(WTO)는 보호무역주의가 확산일로라는 우울한 보고서를 내놓고 있다.
정치인의 반세계화와 병행하여 기업이 주도하는 지역화 바람도 거세다. 길고 복잡한 해외 공급망에 의존하기보다는 자동화 덕분에 소비자가 사는 곳과 가까운 공장에서 더 효율적으로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미국 의류 생산업체들은 중국 선전에서 뉴욕으로 공장 이전을 선택할 수 있다. 중국 노동자를 미국산 로봇으로 대체하면 운송비 절감을 비롯해 생산비를 낮출 수 있다. 지역화는 이미 일어나고 있지만 상당히 느리게 진행된다. 지역화에는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지역화가 세계 무역에 미칠 영향은 몇 달이 아니라 몇 년에 걸쳐 나타난다.
디지털화도 상품 교역을 멈추게 만들 수 있다. 요즘은 실물 CD를 구매해 음악을 듣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듣고 싶은 음악의 음원을 온라인으로 다운로드 할 수 있게 됐다. 세계 무역 시스템 안에서 CD를 실어 나르는 일은 거의 없어졌다. 디지털화에 따른 변화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실물 CD의 포장재가 되는 종이와 플라스틱뿐 아니라 CD를 생산하는 기계, 또 기계에 들어가는 각종 전자부품의 교역까지도 줄어든다.
마지막으로 소비 행태의 변화가 있다. 소비자들은 2020년과 2021년 상품 구매에 지출을 크게 늘렸다. 팬데믹 이후에는 다시 서비스 소비가 대세다. 이것은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근무 시간의 일부나 전부를 재택으로 일하는 유연근무자들은 상품보다는 사회적 경험에 지출을 늘리고 싶어 한다. 여행·맛집·술집·콘서트는 더욱 중요해질 거다. 소비 구성의 변화로 상품 수요는 확실히 줄어든다. 중년의 영국 경제학자도 BTS에 대해 들어본 요즘 세상이다. 여행과 엔터테인먼트도 수출 부문에 속하지만 포장 과정을 거쳐 컨테이너 선박에 실리는 무역품과는 거리가 있다.
세계 무역은 공급망이 점점 더 길어지고 복잡해지는 가운데 지난 수십 년 동안 급격한 증가세를 누렸다. 정치, 기술 그리고 소비 행태의 변화가 복합적으로 결합한 결과다. 하지만 미래의 무역은 세계 경제에서 더 작은 비중을 차지할 것이다.
폴 도너번 UBS 글로벌 웰스 매니지먼트 수석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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