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정의 생활의 발견] 사실은, 이라고 말하지는 말기
갑진년 새해가 밝았다. 해가 바뀌기 전부터 여의주를 문 푸른 용이 승천하는 듯한 이미지와 함께 ‘비상’이라는 단어를 미리부터 갖다 쓴 ‘데들’ 심심찮은 듯했다. 왜? 안팎으로 나쁜 뉴스가 너무 많았던 지난해였으니까. 왜? 안팎으로 아픈 뉴스가 유독 많았던 묵은해였으니까. 그렇다면 지지난해는 달랐단 말이냐 하면 또 아니다. 지금 먹고 있는 이 마음의 가짐과 별반 다를 바 없음을 일기장을 통해 확인해보았으니 말이다. 역시나 결론은 ‘아무렴 그렇지 그렇고말고’다. 우리 조상들이 천재인 데는 〈한오백년〉 가사만 봐도 안다. 오늘은 어제와 다름없는 내일인 것이다.
그럼에도 새 다이어리와 새 펜을 사겠다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문구점에서 나도 덩달아 어수선하게 손을 놀리고 있자니 집었다 놨다 만졌다 취했다 설렘을 담보로 한 동작의 다양함이 이상하지, 전에 없이 애틋해 보이는 것이었다. 왜? 살아 있음을 온몸으로 증명하고 있다 싶었으니까. 켜켜이 쌓여 있는 백지라는 적을 거리 가운데 내 것, 빽빽이 꽂혀 있는 색색이라는 쓸 거리 가운데 내 것, 그 하나의 내 것을 찾기 위한 사람들의 고심을 재미로 한 표정의 골똘함이 이상하지, 전에 없이 귀해 보이는 것이었다. 왜? 살아 있는 온몸을 더 잘 살 수 있는 방향으로 이끄는 태도 같았으니까.
용띠니까 각별한 한 해가 아니겠냐며 각오를 묻는 이가 몇 있었다. 올해의 목표라… 새해마다 도화지에 써 책상 앞에 붙이곤 했던 가지가지들. 그 가짓수를 한 사십쯤은 너끈히 써대던 십 대부터 그 가짓수를 한 다섯쯤으로 간신히 줄이게 된 사십 대에 이르기까지 빼먹지 않고 줄기차게 항목 속에 넣어왔던 것이 있다면 그 목표 ‘솔직하라’였다. 우리의 말속에 ‘사실은…’이라는 빈번한 내뱉음, 그 진위를 가려본다 할 적에 진실한 ‘척’은 아니었는지 미사여구를 가장한 습관은 아니었는지 올해는 기필코 “사실대로 말하고 사실은, 이라고 말하지는 말기”라는 목표를 실천해볼지어다. 시인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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