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프리즘] 촉석루와 금각사
일본, 그중에서도 역사 도시로 불리는 교토를 처음 방문한 외국 관광객이라면 꼭 가는 필수 코스가 있다. 바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금각사(金閣寺)다.
최근 밀양 영남루(嶺南樓)가 국보로 재지정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아무 연관도 없어 보이는 이 ‘금각사’와 경남 진주 촉석루(矗石樓)가 겹쳐 떠올랐다. 각종 자료를 찾아보니 이 두 건축물이 동시에 떠오른 이유가 있었다. 바로 비슷한 시기에 소실돼 다시 지어졌지만 한 곳(금각사)은 ‘금 그릇’처럼 귀한 대접을 받고 있는데, 국보였던 촉석루는 푸대접을 받고 있다는 점이었다.
거칠게 요약하면 1397년 건축된 금각사는 1950년 방화로 대부분 소실됐다. 당시 이 절의 방화 소식은 일본 사회에 충격을 던졌다. 불을 지른 행자승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고 싶었다”고 범행동기를 밝히면서다. 주목할 점은 이후 복원 과정이다. 앙상하게 뼈대만 남았던 금각사는 5년 뒤 1차 복원됐지만 서둘러 복원해 군데군데 금박이 떨어져 나가 ‘금각’이 아니라 ‘흑각’이라는 야유도 받았다. 하지만 이후 2·3차 복원공사를 거쳐 1999년 현재의 금각사로 재탄생했다. 불탄 지 50년째 되던 해다.
반면 평양 부벽루(浮碧樓), 영남루와 함께 조선시대 3대 명루로 손꼽혔던 진주 촉석루는 한국전쟁 당시 폭격으로 전소된 후 재건됐다. 하지만 아직도 잃어버린 가치를 되찾지 못하고 있다. 1960년 재건됐을 당시만 해도 이승만 전 대통령이 방문할 정도로 전국적인 이목을 끌었지만, 1956년 국보에서 해제된 후 아직 그 위상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1983년 문화재 지정 심의가 이뤄졌지만, 문화재 가운데 가장 하위 등급에 해당하는 경남도 문화재 자료 제8호에 그쳤다. 이후 2004년과 2014년 두 차례 국보 환원 대시민 운동이 전개됐지만 큰 성과를 내지 못했고 그나마 2020년 경남도 유형문화재 제666호에 지정된 게 전부다. 여러 가지 사유가 있지만 “건축 연대가 짧고 재건축으로 원형과
달라졌다”는 게 이런 대접을 받는 가장 큰 이유라고 한다.
하지만 일본 금각사가 불탄 이후 이를 재건하기 위해 일본 사회가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조금만 살펴보면 촉석루가 국보로 환원되지 못한 가장 큰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비록 촉석루가 전소해 완벽한 원형으로 보존된 것은 아니지만, 촉석루는 고려 고종 때인 1241년 창건된 후 사실상 1000년 가까이 기적적으로 생존한 우리나라 누각 건축물의 상징이다. 또 진주대첩과 논개, 김시민 장군 등으로 대변되는 촉석루의 역사성과 상징성은 화재로도 소실되지 않는 불변의 가치다. 그것만으로도 진주 촉석루를 국보로 승격하자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위성욱 부산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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