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피습…‘총선의 해’열자마자 쇼크
반복되지 말었어야 할 테러가 다시 정국에 소용돌이를 몰고 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일 60대 남성의 흉기를 맞고 쓰러졌다. 22대 총선을 99일 앞두고 생긴 일이다.
부산 가덕도 신공항 부지를 둘러본 뒤 기자들과 질의응답하며 차량으로 걸어가던 이 대표를 향해 “사인 하나만 해 달라”며 다가가던 김모씨(67)는 당 관계자가 접근을 제지하자 곧바로 흉기를 꺼내 이 대표의 왼쪽 목을 찔렀다. 오전 10시27분쯤이었다. 김씨는 ‘나는 이재명’이라고 쓴 파란색 종이 머리띠를 두른 채 다른 손에는 ‘총선 200석’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었다.
목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진 이 대표는 사건 발생 22분 만에 도착한 119 구급차에 실려 부산시 서구 부산대병원 외상센터로 이송돼 응급조치를 받았다. 1.5㎝가량의 열상을 입은 이 대표는 오후 1시쯤 헬기로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돼 봉합 수술을 받았다. 경찰은 김씨를 현장에서 체포해 부산경찰청에서 조사 중이다. 경찰은 김씨에게 살인미수 혐의를 적용했고, 그는 조사 과정에서 “죽이려고 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한다.
당초 이 대표는 가덕도 방문 직후 경남 양산 평산마을을 찾아 문재인 전 대통령을 예방할 예정이었다. 문 전 대통령은 사건 직후 민주당 최고위원들과의 통화에서 “대표의 상태는 어떻냐”고 물은 뒤 “저야말로 너무 걱정돼서 지금 바로 (병원으로) 가려던 참이었는데, 서울로 간다고 하니 이 대표의 빠른 쾌유를 위해 집중해 달라”고 당부했다.
정치권은 충격에 잔뜩 움츠러든 채 이어질 정치적 파장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민주당은 지도부의 윤석열 대통령과의 신년하례식 참석을 포함해 모든 당 일정을 취소하고 3일 오후 긴급 의원총회를 소집했다. 오후 6시30분쯤 정청래 최고위원은 브리핑에서 수술이 끝났다는 소식을 전한 뒤 “정치 테러에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며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고 도전”이라고 말했다.
권칠승 수석대변인은 오후 7시40분쯤 서울대병원 앞에서 브리핑을 열고 “당초 1시간을 예상했지만 오후 3시45분 수술을 시작해 오후 5시56분쯤 마쳤다”고 경과를 전했다. 이어 “수술명은 혈전 제거를 포함한 혈관 재건술”이라며 “경정맥 손상이 확인됐고 흘러나온 혈전이 많아 관 삽입 수술을 시행했고 중환자실에 입원해 회복 중”이라고 덧붙였다. 조정식 사무총장은 모든 시·도당 위원장에게 “예비후보자들의 선거활동이 차분하고 절제될 수 있도록 관리감독해 달라”는 공문을 보냈다.
윤석열 대통령은 피습 소식을 전해들은 뒤 “신속하게 진상을 파악하고, 이 대표의 빠른 병원 이송과 치료를 위해 최선을 다해 지원하라”고 경찰 등 관계 당국에 지시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가 어떠한 경우에라도 이러한 폭력 행위를 용납해선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4일 신당 창당 선언을 예고했던 이낙연 전 대표는 이날 사건 직후 페이스북에 “피습 소식에 충격과 분노를 억누를 수 없다”며 “부디 부상이 크지 않기를, 어서 쾌유하시기를 간절히 기원한다”고 썼다. 이 전 대표는 “폭력은 민주주의의 적이다. 절대로 용납될 수 없다”며 “피의자를 철저히 조사하고 처벌해 폭력이 다시는 자행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민주당 혁신을 주장하는 비주류 의원 모임 ‘원칙과 상식’도 “어떤 이유로든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으며, 용서받을 수 없는 민주주의의 적”이라며 “이 대표의 쾌유를 기원한다”는 입장문을 냈다. 이 전 대표 등의 민주당 이탈 움직임의 동력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 전 대표와 가까운 비명계 의원은 통화에서 “이낙연 전 대표도 이런 상황에서 신당 작업을 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현재로선 ‘올스톱’이다. 당 지지층도 민주당으로 결집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 전 대표의 한 측근도 “당분간 공개 행보를 하긴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여권도 피습을 규탄하고 빠른 회복을 기원했다. 대전을 방문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오전 예정에 없던 기자회견을 열어 “이 대표의 빠른 회복을 기원한다”며 “수사 당국은 엄정하고 신속하게 수사해 전말을 밝히고 책임 있는 사람에게 무거운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대전시당 신년인사회에 참석한 한 위원장은 “만약 제가 피습당했을 때처럼 생각해 달라”며 “그것이 우리 국민의힘이 수준 높은 정당, 수준 높은 시민이 동료 시민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당부했다. 한 위원장은 오후 6시로 예정된 대구·경북 신년교례회 참석은 취소했다. 박정하 수석대변인은 “예기치 않은 유감스러운 상황에 따른 일정을 최소화하려는 조치”라고 설명했다. 윤재옥 원내대표는 당내에 발언 자제령을 내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번 주 중 정무수석이 병실을 찾아 위문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외신들은 이날 사건을 한국의 극단적 정치 대립과 연결시켜 조망했다. CNN은 “한국 정치는 깊은 양극화로 분열됐다”고 보도하면서 특히 박근혜 전 대통령 수감 이후 몇 년 동안 분열이 심화했다고 전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범행 동기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면서도 “한국의 정치는 오는 4월 총선을 앞두고 더욱 분열되고 격렬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학계의 시선도 다르지 않다.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도 “양 진영이 상대를 적으로 규정한 극단적 대립정치가 가져온 정치 테러”라고 분석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치적 양극화,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불신, 개인주의화된 개인 등이 상호작용을 해서 발생한 비극”이라고 했다. 정치권이 일제히 이 대표의 빠른 쾌유와 진상규명을 외친 이날도 유튜브 등 온라인상에는 “사건의 배후가 있다”는 등의 음모론과 “이재명이 찔린 건 나무젓가락”이라는 등의 가짜뉴스가 범람했다.
성지원·강보현·김정재 기자 sung.ji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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