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르보이스] 새해에는 귀를 열고, 마음을 열고
강남구 역삼동에서 지냈던 2년 동안 나는 선릉역 4번 출구 앞 쿠팡 본사 앞에서 이어진 쿠팡 노조 시위를 수없이 마주했다. 4번 출구 앞에는 늘 영정사진처럼 만든 피켓들이 놓여 있었다. 일하다 사망한 배달 노동자들, 아무런 처우 없이 사지로 내몰리는 배달 노동자들. 불만이 있으면 일하지 말고 나가라는 듯한 회사의 태도에 화를 내며 8000명에 달하는 배달 노동자들의 환경을 개선하려는 외침이었다. 출퇴근길이어서 2년 동안 매일 그 앞을 지나다녔다. 어떤 날은 전단지를 받았고, 어떤 날은 서명을 했으며, 어떤 날은 줄지어 앉은 그들의 농성을 들었다. 그 앞을 지나갈 때면 나도 모르게 꽂고 있던 이어폰을 뺀다. 늘 봤던 피켓이지만 언제나 멈춰 글자를 읽는다. 전단지는 꼭 받는다. 돌아보면 그것은 회사에 항의하거나 그들이 원하는 로켓 배송을 탈퇴하는 것과는 다른 결의 몸짓이다. 내가 당신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고, 무관심한 듯 지나치는 사람 속에서도 누군가는 당신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그렇게 2년을 그곳에서 지내다 이사를 갔다. 마지막 날에도 그들은 외치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 이야기를 들어줄까? 역삼, 선릉, 삼성. 출퇴근 시간만 되면 대한민국 인구가 여기에 다 모인 듯한 강남대로를 가득 채운 사람 중에서 경청하는 이들을 상상해 본다. 그 앞을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잠시라도 발걸음을 멈추는 사람들이, 당신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몸짓을 주는 사람들이 더 늘어나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외침의 시대에 들어서기 전에도, 우리는 늘 듣는 것을 어려워했다. 듣는 건 이해의 선행이다. 이해는 공감과 상관없는 ‘받아들임’이다. 어떤 이해는 자연스럽게 흡수되지만 어떤 이해는 덩어리 진 채 몸 곳곳에 낀다. 가끔 불편하고, 때로는 외면하고 싶다. 하지만 이해라는 것이 원래 어렵고 힘든 거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듣는 게 한결 쉬워지지 않을까? 듣는다고 해서 상대방의 말을 온전히 흡수할 필요가 없으니까. 튕겨나갈 수도 있고, 끝내 외면해도 좋으니 일단은 듣는 것이다.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무엇이 문제여서 저토록 외치고 있는 것인지. “바라건대 진심으로 경청하는 사람들의 세계에서 살고 싶다. 판단을 잠시 멈추는 사람들의 세계, 상대방의 삶에 자신의 상을 욱여넣으려 하지 않는 사람들의 세계, 복잡함을 인정하는 사람들의 세계”. 다시, 김겨울이 원하는 이 세상을 나도 원한다. 다가올 2024년은 경청의 해가 되기를. 기후 위기와 난민, 취업과 육아, 갈등과 불합리, 투쟁과 패배, 고통과 환희, 뜻하지 않은 절망과 예견된 절망, 무너져가는 빙하와 무너져가는 나라, 뚜렷한 적과 흐릿한 적, 살려달라는 외침과 살고 싶다는 외침을 모두가 듣는 세상이 되기를 원한다. 그러니 이런 말을 하고 싶다. 일단 귀를 엽시다. 마음은 아직 모르겠습니다. 끝내 열지 않으셔도 됩니다. 열었다가 도로 닫으셔도 됩니다. 그저 들읍시다. 듣고 듣다 보면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들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흘려보내면 안 되는 것이 무엇인지, 이 세상을 뒤덮은 흐릿한 적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천선란
1993년생 소설가. 2019년 첫 장편소설 〈무너진 다리〉를 펴낸 이후 〈천 개의 파랑〉 〈노 랜드〉 등 소설을 부지런히 선보이고 있다. 동식물이 주류가 되고 인간이 비주류가 되는 지구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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