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n, Fearless, Female! 유쾌하고 겁 없는 여성의 수영 도전기
일상의 에피소드를 유쾌한 색감과 키치한 감성으로 풀어내는 일러스트레이터. 매거진, 패키지 디자인, 티웨이항공 캘린더 일러스트, 세스코×무신사 컬래버 아트워크 전시 등 일러스트 기반의 다양한 작업에 참여 중이다.
수영장에서 연락이 온 것은 1월 첫 주 수요일이었다. 마침 내가 원하던 화·목요일 오전 10시 클래스에 빈자리가 났다는 소식이었다. 누군가가 새해 결심을 단념했구나 생각하니 기뻐할 수만은 없을 듯도 했지만, “어쨌든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수영 가방을 챙겼다. 방치되어 있던 PVC 재질 가방을 비누칠해 씻은 다음 물기가 빠질 동안 공병에 샴푸와 보디 워시를 채우고 택배 상자에서 새 수영복을 꺼냈다. 속옷 서랍에 넣어두었던 실리콘 패드 포장을 뜯어 가슴에 대본 다음 오른쪽만 수영 가방에 담았다.
뻥 안 치고 나는 진짜 내 가슴이 작은 줄 알았다. 한쪽을 도려내기 전까지는. 절제술을 받고 보니 있는 쪽은 태연히 있고 없는 쪽은 완전히 없어서… 웃겼다. 누군가 내 몸을 보고 웃는다면 그건 대단한 무례겠지만 나만은 그래도 되지 않나, 내 마음대로 웃을 수 있지 않나. 뭐랄까, 부재를 통해 마침내 느끼는 존재(했음)?
의사는 환자분 나이가 젊으시니 유방 재건술까지 하는 편이 좋겠다고 했지만, 마른 편이어서 가슴에 이식할 만큼의 자가 조직을 찾기 어렵다고도 했다. 인공 보형물은 자가 이식보다 부담이 큰 데다 회복 기간이 길어 마음에 걸렸다. “그럼 저는 일단 그냥 살아볼게요. 원래 그렇게 크지도 않은데 누구 눈치를 본다고 굳이.” 나름대로 너스레를 떤 것이었으나 의사는 웃지 않았다.
그때 의사가 웃어주었다면 내 몸의 새로운 형태에 대한 내 태도도 다를 수 있었을까? 나는 사람들이 내 가슴을 보고 웃기를 바라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인상을 썼으면 한다거나 동정 및 연민의 팔자 눈썹을 만들기를 원하지도 않았다. 길거리에서 맨 가슴을 까서 보여주고 다닐 일은 없겠지만 아무튼 의사가 유감스러운 표정을 지었으니 앞으로 내 가슴과 마주칠 사람들도 그럴 것 같다는 불안이 솟았다.
수술 후 첫 수영 수업에 한 시간 가까이 일찍 간 것은 그런 불안 때문이었다. 수업료를 내야 한다는 핑계도 있었지만 결제야 뭐 순식간에 끝나는 거니까. 나는 탈의실 가장 구석진 자리에서 옷을 벗었다. 일부러 가린 건 아니지만 어쩌다 보니 가려졌다는 듯 스포츠 타월을 겨드랑이에 끼워 수술 자국을 숨기고, 머리를 말리거나 패딩 지퍼를 올리는 수강생들 사이를 지나쳤다.
오전 9시 20분의 샤워실에는 나 말고도 사람이 셋이나 있었다. 보아하니 한 명은 9시 수업에 늦은 수강생, 한 명은 이전 수업을 들었지만 세월아 네월아 아직까지 씻는 할머니 수강생 같았고 한 명은 쓰레기통을 비우러 다니는 청소 직원이었다. 나는 탈의실에서와 같이 모서리로 가 냅다 뜨거운 물을 틀고서 두껍게 김이 서린 거울 앞에서 빠르고 꼼꼼하게 비누 거품을 만들어 가슴에 얹었다. 새 수영복에 보디 워시를 발라 미끌거리게 만든 다음 잽싸게 다리를 꿰고 어깨끈을 힘껏 위로 잡아당겼다. 살짝 작으려나 싶었던 탄탄이 수영복은 원래 내 가죽이었던 것처럼 매끄럽게 끌려 올라와 몸에 달라붙었다.
나는 팔을 어깨끈 아래에 꿰고 김 서린 거울을 손바닥으로 닦으며 몸의 비눗기를 헹궜다. ‘좋아, 내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지만 아주 잘 어울려.’ 큼직한 플로럴 패턴 때문인지 얼른 보아서는 양쪽 가슴 크기가 짝짝이인 것도 표가 나지 않았다. ‘패드 안 써도 되겠는데?’ 어깨를 돌려 옆모습을 거울에 비추어보며 나는 생각했다. 우레탄을 거의 섞지 않아 신축성이 없는 탄탄이 수영복은 약간이나마 있던 왼쪽 유방과 전혀 없는 오른쪽 유방을 거의 평등하게 만들었다.
쾌재를 부르며 머리를 감고 수모를 쓰고 이를 닦았다. 그러고도 수업 시간까지는 30분 가까이 남아 있었다. 엉거주춤하는 사이 나와 같이 오전 10시 수업을 들을 사람들이 씻으러 들어오기 시작했다. 샤워실에 더 볼일도 없고 사람도 꾸역꾸역 많아져서 떠밀리듯 밖으로 나왔다. 언제 왔는지도 모를 할머니 몇 분이 수영장에 딸린 사우나에 앉아 유리창 너머의 나를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아 맞아, 이런 게 있었지.’ 사우나에 들어가자 할머니들은 내가 차고 있는 스마트워치를 가리키며 그런 건 얼마씩 하냐, 그걸 쓰면 어디에 좋으냐 물어왔다. 물음에만 그럭저럭 답하고 쓸데없는 소리, 이를테면 수술 잘 끝난 기념으로 샀다는 둥의 말은 하지 않았다.
“색시 원래 여기 다녔었지?”
준비운동을 하려고 수영장에 들어가자 할머니 수강생 또 한 분이 말을 걸어왔다. 나에게도 낯이 익은 분이셨다. 항상 ‘JUST SWIM’이라는 문구가 핫 핑크 컬러로 새겨진 검정색 수모를 사용하셔서 내가 남몰래 ‘블핑할매’라는 별명을 붙인 분. 수모에 담긴 기개와는 딴판으로, 내가 처음 등록할 때부터 중급반으로 옮긴 후 수술 때문에 수영을 쉬게 될 무렵까지 쭉 초급반이셔서 의아했던 분. 오지랖이 넓은 건 둘째치고 결혼도 안 했고 연애도 딱히 안 하는 나를 비롯해 좀 젊다 싶은 여자들은 몽땅 색시라고 불러 난감했던 분…. 블핑할매는 여전히 블랙핑크 수모를 쓰고 있었고 변함없이 나를 색시라고 불렀으며 난감하게도 아직 초급반이셨다.
“네, 좀 오래 쉬었죠.”
“왜 그렇게 오래 안 나왔어? 이사 간 줄 알았잖아. 참, 중급반 올라가지 않았었나?”
대답하기가 난처해 웃음으로 무마하려던 차에 수영 강사가 나와서 구령을 붙이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나는 강사를 따라 팔을 돌리며 은근슬쩍 블핑할매 뒤로 물러났다.
준비운동을 시킨 강사는 초급반 담당이었고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새해 다짐으로 수영을 시작한 생초보 회원들과 함께 발장구 연습을 시키려 하길래 수영을 배운 적이 있다고 하니 블핑할매가 끼어들어 저 색시는 중급반이었다고 말했다.
“그래요? 그런데 왜 초급반으로 오셨지?”
“아팠어요” 한마디면 될 일이었지만 “어…” 하고 멍청한 소리만 냈다. 강사는 더 묻지 않고 나를 앞으로 끌어당겼다.
“그럼 제일 먼저 출발하셔도 되겠네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수경을 쓴 후 팔을 모아 높이 올린 자세로 물에 기댔다. 전신이 물에 안기자 즉각 드는 생각이 있었다.
‘그래, 이 느낌이었어.’
쭉 뻗은 왼팔에 머리를 얹고 물 밖으로 숨을 토해내며 나는 생각했다. 다시 수영을 하고 싶다고 생각한 건 이 해방감 때문이었다. 중력의 영향력을 다소 벗어나 떠오른 몸으로 팔을 뻗으면 뻗는 만큼, 발로 물을 걷어 올리면 올릴수록 정직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감각. 의사도 어깨와 가슴 근육을 많이 쓰는 운동이라 재활에 좋다며 수영을 권했지만 의료적인 이유가 아니었어도, 심지어 건강에 조금 나쁘다는 소견을 들었더라도 나는 수영을 고집했을 것이다. 물의 감각에 순응하는 동시에 물의 무게에 저항하는 이 오묘하고도 역동적인 느낌을 아예 몰랐다면 모를까, 이미 알아버린 채로는 잊고 살 수 없었다. 수술 후의 몸을 남들에게 보이는 일을 겁냈으면서도 그 불안과 공포에 압도되지 않고 결국 수영장에 나온 것은 그래서였다. ‘그래, 나는 이 느낌을 사랑하지. 사랑은 두려움을 이기지.’
나는 벅찬 숨을 내뱉으며 바닥을 딛고 일어섰다. 초급반 레인 한가운데였고 온몸이 저렸다. 이윽고 블핑할매의 어깨가 내 등허리에 부딪혔다. 할매는 어푸어푸 헤매다가 똑바로 일어서서 수경을 벗고 내게 따졌다.
“아니 색시, 왜 그렇게 느려?”
이윽고 자유형을 하는 초급반 수강생 나머지가 도미노처럼 각자의 자리에 멈춰섰다. 나는 아찔함을 느끼며 한 사람씩 차례를 양보해주었다. 블핑할매는 나를 째려보다가 수경을 쓰고 내 바로 앞을 헤엄쳐 갔다. 곧장 뒤따라 머리를 담갔지만 할매를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수술 후 처음 하는 수영에는 그토록 그려온 해방감만 가득한 게 아니었다. 기가 막히게 떨어진 체력과 근력 때문에 죽자 사자 팔다리를 휘둘러도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거리에서 숨이 달렸다. 거기다 아무리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왼쪽 몸의 곡선과 오른쪽 몸의 직선을 지나는 물의 흐름이 완전히 다르게 느껴져 똑바로 나가지 못하고 자꾸 한쪽으로 치우치게 되었다.
한 바퀴 돌아 출발점으로 돌아가자 강사는 내 순서를 뒤에서 세 번째로 바꿔주었다. “정말 중급반 올라가셨던 거 맞아요?” 아무 생각 없이 놀리는 강사를 발로 한 대 차주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사회인다운 참을성이 발휘되어서가 아니라 물 무게를 거슬러 힘껏 발길질을 할 힘이 없어서였다.
수업이 끝나자 두 손 두 발로 기지 않고서는 물 밖으로 나올 수도 없을 만큼 기운이 빠져 있었다. 거의 유방암 진단을 받았을 때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큰 좌절감과 상실감이 똑바로 설 힘도 없는 몸을 내리누르는 것 같았다. 나는 기둥을 붙들고 간신히 일어나 갓 태어난 기린 새끼처럼 후들거리며 샤워실로 들어갔다. 내 몫의 샤워기 헤드를 찾기도 힘들 만큼 사람이 많아서 아차 싶었지만 다시 수영장으로 나갈 기운은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모서리 자리가 하나 있어 수영 가방을 들고 가서 그 자리에 섰다. 사람들이 그 자리를 남겨둔 것은 딱히 나 같은 사람을 배려해서가 아니고 그냥 그 자리가 좁아서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만둘까? 수영.’
나는 뜨거운 물을 틀고 수모와 수경을 한번에 벗어 수영 가방에 아무렇게나 쑤셔 넣었다. 수영을 다시 시작하기에는 아직 일렀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핑 돌고 코 안쪽이 시큰시큰했다. 샤워 헤드에 얼굴을 정면으로 대고 여러 번 문지른 다음 보디 워시를 몸에 발랐다. 신축성 없는 수영복을 수월히 벗기 위해서였다. 또 다른 문제를 감지하는 데도 오랜 시간이 들지는 않았다. 팔에 힘이 전혀 없고 어깨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아 어깨끈 밑으로 팔을 빼내는 게 불가능했다.
참았던 눈물이 터진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나는 조용히 눈물만 흘리지 못했다. 서럽고 원통해서 엉엉 소리를 내서 울었다. ‘뭐냐고, 이게.’ 떨어진 체력도, 도루묵이 되어버린 수영 실력도 억울하고 아까운데 하물며 수영복 입고 벗기도 제대로 못 하는 몸이 되어버리다니. 앞서 다녀간 사람이 김서림 방지제라도 발라두었는지 거울에는 내 뒷모습을 힐끗거리는 다른 수강생들의 시선이 고스란히 비쳤다. 너무 민망했지만 그 때문에라도 더더욱 눈물을 그칠 수가 없었다. ‘뭘 보세요, 구경이라도 났냐고요, 각자 겨드랑이랑 사타구니나 잘 헹구고 그냥 가시라고요.’ 나는 모두로부터 등을 돌리고 있으면서도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울었다.
“다 큰 색시가 왜 이런 데서 울고 그래?”
내 수영복 오른쪽 어깨끈에 손을 콱 쑤셔 넣으며 말을 건네온 것은 분명 블핑할매였다.
“아이고, 어디서 이렇게 쫀쫀한 걸 사 왔어.”
블핑할매는 자기 샤워 거품망을 내 어깨에 문지르며 탄식했다. 너무 당황스러워서 나는 마저 우는 것도 잊었다.
“그냥 두세요. 제가 안내 데스크 가서 가위 빌려서 자를 거예요.”
“원 미친 색시를 다 보겠네. 멀쩡한 수영복을 왜 잘라?”
할매는 어깨끈을 단단히 붙들고 내 왼쪽 옆자리 사람에게 다른 쪽을 맡도록 지시했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은 울고 난 후의 열기와 민망함 때문에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한 명은 울고불고 한 명은 호통치고, 그 바람에 샤워실 안의 모든 눈이 우리를 향해 있었다. 블핑할매는 누구의 시선도 아랑곳 않고 힘차게 구령을 넣었다.
“자, 하나 둘 셋!”
생가죽처럼 몸에 달라붙어 있던 플로럴 패턴 탄탄이 수영복은 구령 셋에 벗겨져 내려왔다.
순식간에 고요가 찾아왔다. 작은 소리도 크게 울려서 왁자함이 수증기처럼 꽉 차 있던 샤워실에 물줄기가 가냘프게 떨어지는 소리만 남은 듯했다. 마치 영원처럼 느껴지는 수치의 순간이었다. 나는 거울을 보지 않으려고 눈을 질끈 감았다. 내가 거울로 사람들의 시선을 살폈듯 사람들도 거울로 내 흉터를, 가슴을 보고 있을 것이었다. ‘죽고 싶다. 죽고 싶을 만큼이나 부끄럽다. 내가 왜 수영장에 다시 다니려고 했을까.’ 블핑할매의 오지랖이 원망스러워 그쳤던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고 죽고 싶다는 생각만 자꾸 들었다.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해야 하지. 살고 싶어서 수술을 했고, 살고 싶어서 수영장에 왔는데 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거지.’ 모순을 느끼면서도 눈물을 그칠 수는 없었다.
별안간 팡 하는 소리가 온 샤워실에 울렸다. 등에 따끔한 통증이 내려앉은 건 이상하게도 그 소리가 난 다음이었다.
“수영을 해야 수영복에 길이 들지!”
블핑할매의 불호령이 신호라도 된 듯 조용하던 샤워실이 다시 시끌벅적해졌다. 나는 조심스럽게 눈을 떴고 사람들이 내게 더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내 수영복 왼쪽 어깨끈을 잡아당긴 옆사람조차도 눈을 질끈 감은 채 자기 머리를 감고 있었다. 나는 블핑할매가 때린 등짝을 만져보려 했지만 등 뒤로 팔이 잘 돌아가지 않았다. 대신에 할매가 다시 손을 얹었다.
“세상에 색시 혼자만 아파본 게 아니야. 내가 왜 맨날 초급반에만 있게? 나는 심장 아프고서 수영 시작했어. 무리 안 하고 오래 살 만큼만 운동하는 게 내 목표야.”
블핑할매는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늘어진 왼쪽 가슴을 들어 자기 수술 자국을 보여주었다. 민망한 동시에 실례스럽게도 우스운 행동이었다.
“감사합니다.”
“뭐가 감사해? 죄송해야지. 색시 때문에 나 씻지도 못했잖아.”
블핑할매는 투덜거리며 가슴을 놓고 자기 가방이 놓인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고 보니 나도 멍하니 물줄기를 맞을 뿐 전혀 씻지 못한 상태였다. 손이 빠른 사람들은 이미 속속 샤워실을 떠나고 있었다. 나는 수영복을 마저 벗은 다음 모서리 자리를 떠나 여유로운 벽면에 자리를 잡고 다시 물을 틀었다. 내가 평평해진 내 오른쪽 가슴을 숨기지 않고 돌아다니는데도 사람들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뭘 그렇게 겁내고 부끄러워한 걸까. 애초에 의사가 유방 절제술 후 재활 운동으로 수영을 권했다는 건, 가슴을 떼고 수영을 한 여자가 내가 최초도 아니라는 뜻이었을 텐데. 수술 전날 금식을 하면서는 아마존을 떠올리기도 했었지. 활쏘기에 편하도록 일부러 한쪽 가슴을 납작하게 만들었다는 여자들을.
나는 거울을 등지고 목을 뒤로 젖힌 채 머리를 헹궜다. 막 샤워실에 들어온 오전 11시 수업 수강생들이 내 가슴을 보거나 보지 않은 채로 지나갔다. 그들의 시선은 내가 남의 몸에 두는 시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머쓱하면서도 한결 가뜬해진 기분으로 샤워실을 나왔다. 블핑할매가 샤워실 문 앞 커다란 공용 거울 앞에 드라이기를 들고 서 있었다. 수모를 쓰지 않은 할매는 눈에 익으면서도 낯선 인상이었다. 할매는 바로 옆에 서 있는 나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머리만 말렸지만 나는 직원이 와서 샤워실 문 앞에 서 있지 말라고 주의를 줄 때까지 꼼짝 않고 서서 할매를 지켜보았다.
Writer _박서련
철원에서 태어난 소설가. 어마어마한 겁쟁이라 똑같은 상황에서 겁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할지 상상하다가 오히려 무모한 결정을 내릴 때가 적잖이 있다. 여자 이야기를 주로 쓰고 읽는다. 지은 책으로 〈체공녀 강주룡〉 〈프로젝트 브이〉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 〈나, 나, 마들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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