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례적 매도 보고서…화들짝 놀란 KT, ‘통신 공룡’ LG유플에 따라잡히나

배준희 매경이코노미 기자(bjh0413@mk.co.kr) 2024. 1. 2.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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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 공룡’ KT가 미뤄왔던 조직 개편을 마무리 짓고 분위기 반전을 모색 중이다. 하지만 2024년 영업 환경이 우호적이지만은 않을 전망이다. 2024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정부가 물가 안정에 사활을 걸면서 통신비 경감이 화두로 떠오른 데다 ‘만년 3위’ LG유플러스의 예봉도 매섭다. 새 CEO 선임 뒤에도 KT 특유의 고비용·저수익 구조를 혁파할 만한 쇄신 카드가 부재한 가운데 증권가에서는 이례적으로 KT 주식 매도 보고서까지 등장했다.

‘통신 공룡’ KT가 새 수장을 맞고 심기일전 중이지만 2024년 영업 환경은 녹록지 않을 전망이다. 사진은 광화문 KT 사옥. (매경DB)
통신비 경감 드라이브

KT 등 통신 3사 감익 우려

최근 증권가에서 김홍식 하나증권 애널리스트가 낸 KT 보고서가 이목을 끌었다. 통상 KT 같은 통신주는 경기방어주·배당주로 분류된다.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고 연말을 앞둔 때에는 통신주 매수가 일종의 공식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김 애널리스트는 KT 주식을 팔라는 보고서를 냈다.

매도 논리는 크게 4가지다.

첫째 2023년 4분기 영업이익 전망치의 큰 폭 하향 조정, 둘째 이동통신 가입자 수 급감에 따른 영업이익 감소, 셋째 고금리 장기화에 따른 배당 매력 감소, 넷째 고비용 구조 지속 등이다. 김 애널리스트 분석을 두고 시장에서도 갑론을박이 빚어졌지만 주가만 놓고 보면 어느 정도 타당성을 인정받은 듯싶다. 매도 보고서가 나온 뒤 배당락(배당권리 소멸) 당일(2023년 12월 27일) KT 주가는 5% 넘게 하락했다. 통신 3사 가운데 배당락 낙폭이 가장 컸다. 배당금에서 배당소득세와 지방소득세 등을 제한다면 주주 입장에선 배당락에 따른 시세 하락이 더 클 수 있다.

새 수장을 맞아 신년 사업 계획 준비에 분주한 KT는 이례적인 매도 보고서에 내부적으로 당혹스러운 분위기로 알려진다. KT 같은 소유 분산 기업일수록 의사 결정 과정에서 주주들에게 정당성(Legitimacy)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필수적이다. 소유 분산 기업 CEO가 행사할 수 있는 의사 결정의 협상력은 결국 실적과 주가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내년 3월 주총에서 신사업 계획 등을 밝히고 추진 동력을 얻기 위해서는 주가 관리가 필수적인데, KT 입장에선 연말 연초 첫 스텝이 꼬였다고 볼 수 있다”고 촌평했다.

2024년은 비단 KT뿐 아니라 통신 산업 업황 자체를 낙관하기 힘든 구도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무엇보다 총선을 앞둔 정부가 통신비 인하에 드라이브를 걸면서 캐시카우 이동통신 사업에서 수익성 훼손을 피하기 힘들게 됐다.

통신비가 가계에 주는 부담이 크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정부는 통신비를 잡겠다며 여러 방안을 내놨다. 정부 대책의 핵심은 소비자 선택권을 늘리겠다는 것. 이는 달리 말해, 통신사 영업이익과는 ‘트레이드 오프(Trade Off·상충 효과)’가 빚어질 수 있단 의미다.

정부는 우선 통신 3사 대리점 기준 월 4만원 중후반인 5G 요금제 최저 구간을 3만원대로 낮추고 30GB 이하 소량 데이터 구간 요금제도 세분화한다. 단말기 가격 부담을 줄이려 중저가 단말기 종류도 늘린다. 단말기에 상관없이 5G 요금제와 LTE 요금제를 이용자가 고르게 하고 선택 약정 기간을 줄이는 방안도 포함됐다.

5G 요금제 세분화는 통신사 ‘낙전 수입(데이터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받는 돈)’ 감소로 이어진다. 기존에는 데이터 30GB 이하 구간에 요금제가 2~3개뿐이었던 탓에 상당수 소비자가 실제 데이터 사용량보다 많고 값비싼 요금제를 울며 겨자 먹기로 선택해왔다. 이런 구조 아래 통신사는 실제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고도 이용자로부터 상당 수준의 낙전 수입을 올려왔다. 2024년부터는 상당수 소비자가 실사용 패턴에 맞춰 5G 요금제를 고를 수 있게 돼 통신사로서는 수익성이 악화한다.

5G 가입자가 정체 국면에 진입한 것도 KT 입장에선 달갑지 않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휴대폰 5G 요금제 가입자 수는 요금제 출시 이듬해인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월평균 14% 늘었다. 그러나 최근 가입자 증가세가 정체돼 2023년 초부터 같은 해 10월까지는 월평균 1.5% 증가세에 그쳤다. 차세대 서비스인 5.5G가 조기 도입됐으면 수익성 방어에 기대를 걸 수 있겠지만 도입 논의를 시작도 못한 상황이다.

거세지는 LG유플 예봉

경쟁 촉진 효과도

KT 입장에서 뼈아픈 대목은 시간이 갈수록 ‘만년 3위’로 간주되던 LG유플러스와 격차가 좁혀지거나 역전됐다는 점이다. 최근 몇 가지 부문에서 KT와 LG유플러스 간 격차가 허물어지는 장면이 연출된 것을 통신업계에서는 심상찮은 시선으로 바라본다. 민영화 이후 KT가 지배구조 논란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자원 소모가 반복됐다면, 후발 주자 LG는 그룹 측면 지원을 등에 업고 사업 다각화 등에 힘써온 결과가 조금씩 나타난다는 진단이 나온다.

‘2위 갈등’의 발화점이 된 지점은 이동통신 가입자 점유율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집계한 2023년 9월 기준 무선통신 서비스 가입 현황을 보면, LG유플러스 이동통신 가입자는 1801만6932명으로, KT(1713만3388명)를 앞섰다. LG유플러스가 이동통신 가입자 점유율에서 2위 자리에 오른 것은 창사 이후 처음이다. 당연히 날 선 신경전이 펼쳐졌다. KT는 “LG유플러스 사물인터넷 가입자가 왕창 늘어난 데 따른 착시일 뿐, 매출액과 사람 가입자 기준 점유율은 여전히 확고부동한 2위”라고 주장한다.

2023년 5G 품질 평가에서도 LG유플러스가 KT를 근소한 차이로 앞질렀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이 2023년 5월부터 11월까지 국내 유·무선인터넷 등 통신 서비스 수준을 측정·분석한 ‘2023년 통신 서비스 커버리지 점검·품질 평가 결과’에 따르면 LG유플러스는 20㎒폭 추가 할당 덕분에 가입자가 집중된 서울에서 KT를 앞섰다.

LG유플러스는 대관 영역에서도 KT를 앞서는 장면을 연출하는 등 ‘2위 굳히기’에 전사적 자원을 쏟는 분위기다. LG유플러스는 2023년 10월 데이터 제공량과 가격을 세분화한 신규 5G 요금제를 통신 3사 가운데 가장 먼저 내놨는데, 이를 두고 정부가 “후발 사업자의 혁신적인 시도”라며 공개 호평하는 장면이 연출된 것. 대정부 협상력을 키우는 자양분이 됐다는 통신업계 평가도 따랐다. 국내 대표 통신사를 자처해온 KT 입장에서는 체면을 구긴 셈이 됐다.

통신 산업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정부가 시장 지위 3위 사업자를 이례적으로 공개 호평한 대목을 ‘독과점 구조 혁파·경쟁 촉진’과 연결 짓는 시선이 적지 않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제4이동통신 사업자를 선정해 통신업계 콘크리트 독과점을 깨는 정책 효과를 기대하기는 현실적으로 현 정권에선 힘들다”며 “이보다는 2위 자리를 두고 긴장감을 자극한다면 사업자 간 이동통신 품질 고도화, 요금 경쟁을 촉발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짚었다.

“이동통신 사업(MNO) 가입자 급감, 5G 가입자 순증폭 감소 추세를 감안하면 2024년에도 영업이익 감소가 불가피해 보인다. CEO 교체에도 과감한 인력 구조조정, 인건비·제반 경비 절감에 실패함에 따라 고비용·저수익 구조가 지속되면서 낮은 PBR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할 전망이다.”

KT 매도 보고서를 낸 김홍식 애널리스트의 진단이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41호 (2024.01.01~2024.01.0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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