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그룹, 강성부펀드와 전격 합의? 지주사 전환 속도 내나
김남호 회장이 이끄는 DB그룹이 ‘강성부펀드’로 유명한 사모펀드 KCGI와 DB하이텍 지분 블록딜을 전격 추진한다. 이를 활용해 그룹 숙원 과제인 지주사 체제 전환에 속도를 낼지 재계 관심이 뜨겁다.
KCGI의 DB하이텍 지분 매입 추진
DB그룹 지주사 격인 DB Inc.(이하 DB)는 2023년 12월 28일 KCGI의 투자목적회사 캐로피홀딩스로부터 DB하이텍 주식 250만주를 시간 외 대량매매(블록딜)로 총 1650억원에 양수했다고 공시했다. 이로써 DB하이텍 최대주주인 DB 지분율은 12.42%에서 18%로 늘고, KCGI 지분율은 7.05%에서 1.42%로 줄었다. 즉 DB가 사들인 KCGI의 지분은 5.6%가량이다.
DB그룹이 사실상 ‘불편한 동거’를 해왔던 KCGI와 화해 무드를 조성한 배경은 뭘까. 지주사 전환을 두고 발등에 불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DB 지주사 전환은 반도체 파운드리 자회사 DB하이텍 주가 흐름과 관련이 깊다. 최근 DB하이텍 주가가 급등하면서 자회사 지분 가치가 60%에 달해 지주사로 강제 전환될 상황에 처했다. 2023년 11월 초까지만 해도 4만8000원대에 거래되던 DB하이텍 주가는 최근 6만원에 육박할 정도로 치솟으며 지주사 전환 조건을 충족했다(12월 27일 종가 5만7500원). DB 자산 규모는 5133억원으로 5000억원을 넘는다.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총자산이 5000억원을 넘고, 자회사의 지분 가치가 전체 자산의 50% 이상인 기업은 지주사로 강제 전환된다. 이때 지주사는 상장 자회사 지분의 30% 이상을 의무적으로 보유해야 한다.
지금 분위기대로라면 DB는 2024년 다시 지주사 전환 통보를 받게 된다. DB그룹은 2023년 5월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연말까지 지주사로 전환할 것을 통보받았다. 그러다 DB하이텍 주가가 떨어지면서 자산 요건이 달라져 지주사 전환 대상에서 겨우 벗어났다. DB하이텍 물적분할 계획을 발표하면서 주가가 곤두박질친 영향이 컸다.
하지만 DB하이텍 주가 상승으로 또다시 지주사 전환 요건을 충족해 DB는 향후 2년 내 상장 자회사 보유 지분율을 30%까지 늘려야 한다.
재계에서는 DB가 결국 고심 끝에 DB하이텍 2대 주주인 KCGI 지분 인수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KCGI는 DB하이텍 지분 7.05%를 보유했다.
DB와 KCGI는 이전까지 사사건건 티격태격하던 앙숙이었다. DB가 2023년 9월 이사회를 열고 합금철 제조 계열사 DB메탈을 흡수합병하기로 하면서 갈등이 극에 달했다. DB 측은 “IT, 무역, 브랜드 사업이 안정적 성장세를 보이지만 지속 성장하려면 기존 사업과 시너지가 가능하고 신성장동력을 창출할 사업 포트폴리오 확보가 필요하다”며 합병 목적을 설명했다. 기존 IT, 무역, 브랜드 사업 등에 더해 DB메탈 전문 분야인 합금철 사업을 합쳐 성장성을 더하고 경영 효율성도 높이겠다는 의미다.
DB메탈은 합금철 분야 국내 1위, 정련합금철 분야 세계 2위의 합금철 전문 기업이다. 2022년 연결 기준 매출 6436억원, 영업이익 1493억원을 기록했다. DB메탈 최대주주는 지분 28.83%를 보유한 DB하이텍이다. DB는 2022년 연결 기준 매출 4013억원, 영업이익 236억원을 올렸다. DB와 DB메탈이 합병하면 단숨에 매출 1조원대 회사로 커진다.
하지만 KCGI는 DB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번 합병을 통해 DB 자산을 늘려 공정거래법상 지주사 강제 전환을 막기 위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다”고 꼬집었다.
시장에서는 DB와 DB메탈 합병을 두고 김남호 DB그룹 회장 일가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 아니냐는 분석까지 나왔다. 김준기 창업회장과 장남 김남호 회장, 장녀 김주원 부회장 등 오너 일가는 DB 지분 43.82%를 보유한 상태다. 또한 김남호 회장을 비롯한 특수관계인은 DB메탈 지분 95.2%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DB그룹은 이번 합병 이후 김 회장과 오너 일가의 DB 지분이 52.47%까지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이를 두고 KCGI는 DB하이텍 주가 저평가 원인으로 지배주주의 사적 이익 추구, 불투명한 경영, 무시되는 주주 권익을 지적하는 등 본격적인 주주행동에 나서면서 경영권 분쟁 우려가 불거졌다.
시장에서 DB와 DB메탈 합병 관련 논란이 커지자 DB그룹은 결국 2023년 10월 합병을 철회했다. DB 관계자는 “합병을 통해 양 사 시너지를 높이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하려 했지만 시장 오해, 일부 주주 우려 등을 감안해 합병 철회를 결정했다”고 해명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KCGI 측도 더 이상 공격 수위를 높이기 어려워졌다. 그렇게 소강상태가 이어지다 전격적인 블록딜이 발표된 것. DB그룹 입장에선 KCGI 지분을 넘겨받을 경우 강성부펀드와의 ‘불편한 동거’를 끝낼 수 있는 만큼 이참에 타협에 나선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재계 관계자는 “김준기 창업회장이 지주사 전환 결심을 하고 직접 나서서 강성부 KCGI 대표와 소통하면서 이번 협상이 진전된 것으로 안다. DB 입장에서는 지주사 전환이라는 숙원 과제를 해결하고, KCGI도 지분 매각으로 넉넉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만큼 ‘윈윈’이라는 분석이 많다”고 귀띔했다.
DB하이텍 실적 악화 일로
물론 변수는 있다. 지주사 전환에 성공하더라도 주주 환원책이 미약하거나 신사업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DB하이텍 소액주주 반발이 커질 수 있다. DB하이텍은 최근 극심한 실적 부진에 시달리는 중이다. 2023년 3분기 매출 2678억원, 영업이익 503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40%, 77% 줄었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글로벌 반도체 수요 부진으로 가동률이 떨어지면서 DB하이텍 실적이 부진했다. 2023년 연간 기준으로도 영업이익이 2791억원에 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DB하이텍은 부랴부랴 신성장동력 발굴에 나섰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다. 차세대 전력반도체로 주목받는 갈륨나이트라이드(GaN), 실리콘카바이드(SiC) 제조에 필요한 핵심 장비 도입을 추진 중인데 아직까지 가시화된 성과는 나오지 않은 상태다. 대규모 자금이 필요한 12인치 웨이퍼 라인 공정 투자도 미지수다.
논란이 커지자 DB하이텍은 지배구조 개선과 주주친화정책 강화를 골자로 하는 경영 혁신 계획을 내놨다.
지배구조 개선 계획으로 대표이사-이사회 의장 분리와 내부거래위원회·보상위원회 설치, 감사 기능 강화 등을 제시했다. DB하이텍은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함으로써 이사회 독립성을 높이고 내부거래위원회와 보상위원회를 설치, 사외이사를 각 위원회의 의장으로 선임해 내부통제를 강화하겠다고 설명했다. 또한, 주주친화정책 강화를 위해 자사주 매입·소각, 배당 등 주주 환원율을 30%대로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배당 성향을 종전 10%에서 최대 20%까지 확대하고, 현재 6%대인 자사주 비중을 15%까지 확대해 순이익의 30% 이상을 주주들에게 환원한다는 계획이다. 대규모 투자를 통해 매출 4조원, 영업이익 1조원, 시가총액 6조원을 기록하는 회사로 거듭나겠다고 덧붙였다.
“KCGI 지분 인수 이후에도 DB하이텍 실적이 부진하고 주가가 휘청이면 언제든 소액주주들이 반발할 수 있다. 멀리 보고 과감한 투자를 통해 DB하이텍 기업가치를 높이는 데 힘써야 할 때다.” 재계 고위 관계자 귀띔이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41호 (2024.01.01~2024.01.0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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