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목 부총리의 전화 한 통, 삼성의 로비는 성공했다
[최기원 기자]
▲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023년 12월 29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리는 임시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
ⓒ 권우성 |
지난 글 <박근혜 미르재단 설립 행동대장이 경제부총리라니>(https://omn.kr/26v7j)를 통해 밝혔듯이, 최상목 경제부총리는 박근혜 정부 청와대에서 미르재단 설립을 주도한 인사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는 미르재단 출연의 '대가'로 보일 수 있는 결정과도 관련되어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승계에 결정적이었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시 삼성의 편의를 봐준 공정거래위원회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있다. 이 부분을 살펴보자.
한 달 동안 펼쳐진 역전 드라마
2015년 말 삼성은 골치 아픈 문제를 풀어야 했다. 이재용의 삼성전자 지배력을 높이기 위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추진했지만, 이 과정에서 공정거래법에 따라 삼성SDI의 삼성물산 지분 상당을 팔아야 한다는 문제가 발생했다. 삼성물산은 순환출자로 복잡하게 얽힌 삼성그룹 전체의 지배구조에서 지주회사 격의 위치를 점하고 있었으므로, 이 지분이 외부로 풀리는 것은 이재용에게 큰 부담이었다. 따라서 처분해야 할 삼성물산 주식수를 최소화할 필요가 있었다.
1000만 주(당시 가액으로 1조 4500억 원 상당)를 팔아야 한다는 공정위 실무라인의 1차 판단을 삼성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9차례에 걸친 의견 제출에도 불구하고 공정위가 판단을 바꾸지 않자 삼성은 공정위 고위급에 대한 로비를 시도하기에 이른다.
2015년 11월 17일, 삼성전자 미래전략실(미전실) 사장 김종중은 공정거래위원회 김학현 부위원장을 만나 공정위의 결론(1000만 주 처분안)을 재검토해달라고 부탁했다. 12월 16일 이 문제가 공정위 전원회의에 회부되고, 결과에 따라 실무자들은 900만 주 처분안을 만든다. 그런데 12월 22일, 900만 주 안과 별개로 김학현은 최종 검토안에 삼성 입장인 500만 주 처분안을 갑자기 추가한다. 고심하던 정재찬 공정거래위원장은 김학현으로부터 청와대의 독촉 사실을 전달받고 다음 날인 12월 23일 500만 주 안으로 최종 결재한다. 한편의 역전 드라마가 펼쳐진 것이다.
삼성 미전실 사장이 공정위 부위원장을 만나서 청탁을 시도했고, 공정위 부위원장은 삼성에 유리한 <2안>을 갑자기 만들어 추가했고, 당일 청와대는 결정을 재촉하고, 결국 삼성에 유리한 <2안>으로 그다음 날 결정이 됐다. 대단히 이상하고 부적절한 과정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1심 판결문 中>
아래와 같이 김종중이 2015. 11. 17.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 김학현을 만나 공정거래위원회의 2015. 10. 14.자 검토 결론(삼성SDI 및 삼성전기 보유 주식 각 500만 주, 합계 1,000만 주 처분)에 대한 재검토를 부탁한 이후, 이 사건 합병에 따른 신규 순환출자고리 해소 문제가 2015. 12. 16.자 전원회의 토의안건에 회부되고, 실무자들이 위 전원회의 토의결과를 고려하여 2015. 12. 19. 잠정적으로 마련한 검토 안(삼성SDI 보유 주식 900만 주 처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김학현이 2015. 12. 22. 최종 검토 안에 새로운 안(삼성SDI 보유 주식 500만 주 처분)을 추가하였으며, 이후 공정거래위원장 정재찬이 김학현으로부터 안종범의 결정 독촉 사실을 전달 받고 결국 2015. 12. 23. 김학현이 추가한 안(삼성SDI 보유 주식 500만 주 처분)으로 최종 결재한 사실이 인정된다. 이와 같은 사실에 의하면 결과적으로 김종중의 김학현에 대한 청탁이 성공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최상목이 없었다면 삼성안 관철은 가능하지 않았다
문제는 이 '역전 드라마'에서 당시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이었던 최상목의 역할이다.
최상목은 서울법대 선배인 공정위 부위원장 김학현을 '형님'으로 부르는 사이로 김학현에게 청와대의 입장을 전달한 당사자였다. 최상목은 12월 22일 저녁 김학현에게 전화해 '(정재찬) 위원장이 결재를 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안종범의 반응이 좋지 않으니 형님이 500만 주 안으로 설득을 해 달라'고 부탁했다. 말을 전해 들은 김학현은 정재찬에게 빨리 결정해야 한다며 500만 주 안으로 해야 한다고 설득했고, 정재찬은 다음 날 500만 주 안으로 결정한다. 최상목의 전화가 바로 삼성안을 관철하는 핵심 고리였다.
▲ 서울중앙지법 2018. 2. 13 선고 2016고1202-1등 판결 (최서원, 안종범, 신동빈1심) |
ⓒ 서울중앙지법 |
김학현은 '최상목이 500만 주 안을 언급한 것은 못 들었다'고 진술했는데 최상목은 김학현의 이 말을 방패막이로 삼는다.그러나 이런 진술에도 불구하고 모든 판결문에는 떡하니 최상목이 <2안>(500만 주 안)으로 독촉했다고 적혀 있다. 심지어 김학현은 특검에서 이런 이야기까지 했다. "최상목 비서관이 12월 21일 전화로 '삼성 처분주식을 500만 주로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냐'고 물어서 어떻게 하면 가능하다고 얘기했다"고 했다. 재판에서도 "최 비서관이 물은 건 맞고 '500만 주가 더 맞다는 생각'이라고 대답했다고" 진술했다. 최상목이 단순히 안종범의 말을 전한 수준이 아니라, 삼성 안을 밀어붙이기 위해 미리 공정위에 의사 타진을 했다고 볼 만한 부분이다.
삼성 미전실의 공정위 로비와 별개로 최상목이 수장이었던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실 역시 삼성의 접촉 대상이었다. 당시 청와대 선임행정관 인민호는 최상목이 전화를 걸기 이틀 전인 12월 19일 삼성 측 변호사(김앤장 황창식)를 만나 삼성의 입장을 전달받는다. 이는 예의 '장충기 문자'를 통해 확인되는 사안이다. 인민호는 최상목에게 해당 문제를 설명하면서 공정위의 900만 주 안은 과하다는 취지로 말하고 최상목도 이를 인정한다(2017.6.7 공판 진술).
▲ 서울중앙지법 2018. 2. 13 선고 2016고1202-1등 판결 (최서원, 안종범, 신동빈1심) |
ⓒ 서울중앙지법 |
최상목은 단순히 삼성에 농락당한 것일까
500만 주 안을 공정위가 당일 결재하지 않는다고 청와대가 타박하는 것을 상식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최상목은 여기에 대해 '시장의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사안을 빨리 처리할 필요가 있다는 안종범의 의사를 전달한 것'이라고 해명한다. 이게 말이 되는가?
▲ 청와대의 공정위 결정 독촉 이유를 물은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서면질의에 대한 최상목 경제부총리 후보자의 답변 |
ⓒ 국회 |
12월 16일 공정위 전원회의에서조차 500만 주 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잠정적으로 실무자들이 마련한 안은 900만 주 안이었다. 12월 22일 이전까지 500만 주 안은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앞서 서술한 숨 가쁜 과정을 거쳐 김학현이 갑자기 12월 22일 <2안>으로 올린 것이다. 당일 처음으로 등장한 안을 당일 통과시켜야 할 정도로 급박한 사안이었을까? 전혀 그럴 문제는 아니었다.
시장이라기보다 이재용의 불확실성을 줄이는 일이라는 점에서는 그럴 수 있다. 이 문제는 이재용 부회장이 그룹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해 다시 사들여야 하는 주식 수를 결정하는 문제일 뿐이기 때문이다. 삼성그룹 지배구조에서 삼성물산이 사실상의 지주회사이므로 이재용의 입장에서 삼성물산의 지분이 외부에 풀리는 것을 막아야 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처분된 500만 주 중 이재용 부회장이 2000억 원을 들여 130만 주, 삼성생명공익재단이 200만 주를 재매입했다.
정리해 보면 삼성이 공정위와 청와대에 로비를 걸었고, 공정위는 머뭇거렸고, 최상목 경제금융비서관이 공정위 김학현 부위원장을 채근했고, 결국 삼성의 뜻대로 관철이 됐다. 여기서 최상목이 김학현에게 전화를 걸지 않았다면, 또는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면, 혹은 이 연결고리에서 존재하지 않았다면 삼성의 로비가 성공했을까?
모든 것은 박근혜와 안종범의 뜻이었고 최상목은 '영혼 없이' 지시를 수행했을 수도 있겠다. 이를 인정한다 해도 분명한 것은 당시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실이 삼성의 로비에 완전히 농락당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불과 두 달 전 미르재단 설립을 주도하며 삼성 계열사로부터 125억 원을 받아낸 이도 최상목이었다. 지난 29일 윤석열 정부의 경제부총리가 된 그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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