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장 결단 없었다면... 귀한 주전자, 북한 소장품 될 뻔

임영열 2024. 1. 2.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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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유물유적] '용' 담아낸 국보... 청자 어룡형 주전자·금제 띠고리·용두보당

[임영열 기자]

다사다난했던 계묘년(癸卯年) 검은 토끼의 해가 지고 2024년 갑진년 새해가 밝았다. 갑진년(甲辰年)은 육십갑자 중 41번째로 '푸른 용'의 해다.

십이지(十二支)의 동물 중에서 용(龍)은 유일하게 지상에 존재하지 않은 상상의 동물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용은 신성한 '영물(靈物)'로 간주돼 숭배의 대상인 동시에 한 편으로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렇기에 먼 옛날부터 용은 수많은 신화나 전설은 물론이며 문학 또는 미술의 소재가 됐다. 우리나라 어느 곳을 가더라도 용과 관련된 설화나 지명 하나쯤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렇듯 용은 비록 현실세계에 실존하는 존재가 아니라 할지라도 우리들 마음속에 오랫동안 '문화적 소산물'로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약 1만 6천여 건의 유·무형 문화유산이 있다. 그중 역사적·학술적·예술적 가치가 탁월하다고 인정된 380여 건이 국보로 지정돼 있다. 국보 중에서도 용을 소재로 한 것들이 상당수 있다. 우리 국보 속에서 살아 숨쉬는 용은 어떤 모습일까.
             
용머리에 물고기 몸... '청자 어룡형 주전자'
 
 국보 청자 어룡형 주전자. 높이 24.4cm, 배지름 13.5cm, 밑지름 10.3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12세기 고려시대.
ⓒ 문화재청
 
고려청자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 예술품 중의 하나다. 그중에서도 12세기 청자의 절정기에 만들어진 비취색의 '상형청자(像形靑磁)'는 고려청자의 으뜸이다. 상형청자는 각종 식물, 동물, 인물 등의 모양을 본떠 빚어낸 청자로 오묘한 푸른빛과 아름다운 조형미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상형청자의 대표 격으로 1962년 국보로 지정된 후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청자 어룡형 주전자(靑磁魚龍形酒煎子)'가 있다. 높이 24.4cm, 배지름 13.5cm, 밑지름 10.3cm로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적당한 사이즈다.

한눈에 봤을 때 무슨 동물인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용의 머리에 물고기 몸통을 가진 상상의 동물 한 마리가 힘찬 도약을 준비하며 잔뜩 몸통을 움츠린 채 꼬리를 추켜올리고 있다. 금방이라도 박차고 날아오를 듯 역동적 자세를 취하며 긴장감을 더하고 있다.

주전자의 주둥이 부분에 커다란 용의 머리가 있고 약간 벌어진 입 사이로 술이나 물을 따를 수 있도록 다자인했다. 용의 이빨과 수염, 갈기의 가장자리에 백토(白土)를 발라 사실감을 더했다. 얼굴과 지느러미 등은 가늘고 섬세한 음각선으로 묘사했고 용의 눈동자는 검은색 철화 안료로 '화룡점정(畵龍點睛)'을 찍었다.
          
물고기는 수직으로 꺾여 있고 몸통에는 수많은 비늘이 세밀하게 양각돼 있다. 뚜껑은 물고기의 꼬리모양으로 장식했다. 전면 좌우 갈퀴 모양의 큰 지느러미는 마치 날개처럼 활짝 펼쳐져 있다.

주전자의 아랫부분은 연꽃으로 감싸 올렸고 손잡이는 연꽃 줄기를 꼬아서 만든 모양이다. 전체적으로 담록빛 비취색을 띠고 있다. 신령스러운 용의 모습과 다산(多産)과 풍요를 상징하는 물고기가 결합된 '어룡(魚龍)'을 표현했으며 고려 왕실에서 사용한 것으로 추정한다.

발견 장소와 소장 경위가 밝혀지지 않은 이 주전자는 고려의 왕궁터였던 개성의 만월대 근처에서 발견된 다른 국보급 청자들과 함께 국립박물관 개성 분관에 수장·전시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위기가 닥쳤다. 1949년 5월, 개성 시내에 북한군의 포탄이 떨어지며 전운이 감돌았다.

전쟁의 위기감을 느낀 진홍섭(秦弘燮, 1918~2010) 개성 박물관장은 200여 점의 유물과 함께 청자 주전자를 급히 열차에 실어 서울로 보냈다. 당시 진홍섭 관장의 결단이 없었다면 이 유물들은 아마 북한의 소장품이 됐을 것이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국보급 청자의 대부분은 그때 개성에서 피난 내려온 것들이다. 박물관에서는 이들을 개성에서 왔다고 해서 '개성품'이라 명명하고 있다.
           
비상하는 일곱 마리 용... '금제 띠고리'
 
 일곱 마리의 용이 웅비하는 국보 '금제 띠고리'. 길이 9.4㎝ 너비 6.4㎝로 허리띠를 연결시켜 주는 고리다. 순금 14.3돈(53.9g)으로 만들어졌다. 이천 년 전 낙랑 시대의 유물로 추정된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문화재청
 
1910년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조선의 국권을 강제로 침탈하고 이 땅의 주인 행세를 시작했다. 조선총독부는 '고적조사단'을 설치하고 우리의 고적과 유물을 조사했다. 일본 미술사학의 대부로 알려진 동경대학교 교수 세키노 타다시(關野貞)가 단장을 맡았고 야스이 세이이시(谷井濟一) 등이 수행원으로 참여했다.

우리나라 매장유물의 상당 부분은 총독부 고적조사단에서 발굴한 것들이다. 조사단의 기록은 국립중앙박물관의 유리건판 사진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그들의 발굴 작업은 일본 문화재 발굴을 위한 '연습'이었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넘어 분노를 금할 수 없다.

1916년 세키노 일행은 기원전 108년 중국 한(漢)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그 땅에 낙랑·임둔·대방·현도 등의 행정구역을 두고 유민들을 통치했다는 이른바 '한사군(漢四郡)'의 실체를 찾고자 했다. 한사군의 실체에 관해서는 지금도 재야사학자들과 강단사학자들의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어쨌거나 총독부는 맨 먼저 평안남도 대동군(현 평양시 낙랑구역)에 소재하던 '평양 석암리 9호분'을 발굴했다. 한(漢)나라의 식민지였다는 낙랑군의 실체를 찾아 민족정기를 말살하고 조선통치의 일환으로 '식민사관'을 심기 위한 계략이 숨겨 있었다.
      
석암리 9호분의 발굴 결과는 놀라웠다. 무덤에서는 철제 장검과 자동 화살 발사기 등 각종 무기류와 농기구, 청동 그릇 등 370여 점의 유물이 쏟아졌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현재 국보로 지정된 일곱 마리의 용이 웅비하는 '금제 띠고리'다.

길이 9.4㎝, 너비 6.4㎝로 허리띠를 연결시켜 주는 고리로, 지금으로 보면 벨트의 버클(Buckle) 같은 것이다. 순금 14.3돈(53.9g)으로 만들어졌다. 지금까지 한반도에서 발견된 금속공예품 중 가장 뛰어난 수작 중의 하나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큰 용 한 마리가 중심을 잡고 있고 주위에 여섯 마리의 작은 용들이 호위하듯 꿈틀대고 있다.

얇은 금판 위에 수많은 금 알갱이를 하나하나 붙여 영롱함이 더한다. 두 줄의 금실과 금구슬을 한 줄로 붙여가며 용의 머리와 몸통을 뚜렷하게 표현했다. 군데군데 41개의 물방울 모양 터키석을 박아 화려함을 더했는데, 지금은 7개만 남아있다.
      
이천 년 전 낙랑 시대의 유물로 추정되는 순금 띠고리는 한(漢)나라 황제가 변방의 낙랑 태수에게 하사한 위세품이라고 해석하고 있으나 이 순금 띠고리의 기원과 주인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1962년 국보로 지정됐고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깃대 끝에서 세상을 응시하는 용... '용두보당'
 
 국보 용두보당. 높이 73.8㎝의 작은 크기로 2층의 기단 위에 두 개의 기둥을 세웠고 그 가운데에 당간을 세운 모습이다. 리움미술관 소장. 고려시대.
ⓒ 리움미술관
 
8개의 원통을 쌓아 올린 깃대 끝에서 입을 반쯤 벌린 푸른 용 한 마리가 뿔을 앞뒤로 곧추세운 채 세상을 뚫어지게 내려다보고 있다. 휘날리는 갈기와 더듬이, 송곳니, 부릅뜬 눈과 눈썹, 귀의 솟음은 마치 살아있는 듯 역동적이다. 목 아래 양각된 비늘은 사실감을 더한다.

1971년 국보로 지정돼 삼성미술관 리움이 소장하고 있는 '금동 용두보당(金銅龍頭寶幢)'이다. 높이 73.8㎝의 작은 크기로 2층의 기단 위에 두 개의 기둥을 세웠고 그 가운데에 당간을 세운 모습이다. 과거 절에서는 사찰의 영역을 표시하거나 법회가 있을 때 절 입구에 깃발을 달아 두는데, 이 깃발을 매달아 두는 장대를 '당간(幢竿)'이라 하고 당간을 지탱해 주는 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깃대 끝에 용머리가 장식돼 있어 '용두보당'이라 한다. 불교에서의 용은 부처님의 가르침, 즉 불법을 수호하고 중생을 구제하는 호법신이다. 이런 역할을 하는 용은 대웅전이나 범종, 석탑과 석등 등 사찰 곳곳에 다양한 장식물로 나타났다.
      
그중 당간은 사찰의 입구에 높이 세워 경내로 들어오는 불자들에게 사찰의 위상과 권위를 나타내는 중요한 건조물이다. 고려 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용두보당은 실제 당간을 축소해서 만든 금속공예품으로 법당 내부에 세워뒀던 것으로 짐작한다.

8개의 원통을 이어 붙여 만들었다. 깃대 끝에 활달하고 호방한 용머리를 생동감 있게 장식했다. 원통 표면은 옻칠을 하고 난 뒤에 금을 도금했는데 지금은 벗겨지고 군데군데 그 흔적만 남아있다. 고려 시대의 당간 모습을 짐작할 수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이렇듯 우리 문화유산에 등장하는 용은 상상의 동물이 아닌 현실 속 신령스러운 영물로 간주되며 현대사회에서도 늘 우리와 공존하고 있다. 2024년 갑진년 푸른 용의 해를 맞아 거친 물살을 박차 올라 기어이 용이 되는 어룡(魚龍)처럼 '승천'하는 한 해가 되길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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