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더레코드]이규형 "변발에 10kg 감량…무조건 '노량'이었죠"
영화 '노량' 왜군 장수 아리마役
뮤지컬·예능 활약…"눈 감고도 김밥 말아"
배우 이규형(40)은 다채로운 얼굴을 지녔다. 연기자에게 얼굴은 중요하다. 감정을 표현하는 창이자 마음을 비추는 통로다. 그는 예측 불가한 얼굴로 사납게 스크린을 장악했다. 섬세한 감정 표현과 순간적으로 바뀌는 서늘한 눈빛이 강점이다. 많은 대중에게 '슬기로운 감빵생활' 마약중독자 해롱이(한양이)로 이름을 알렸다. 약에 취해 혀짧은 소리를 해대지만 멀쩡할 때는 사랑으로 가득한 눈빛을 반짝이며 매력을 발산했다. 이번에는 정통 사극에 도전했다.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에서 왜군으로 변신한 그는 "배역 분량은 중요치 않았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최근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감독 김한민) 개봉을 앞두고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배우 이규형을 만났다. 영화에서 왜군 선봉장 고니시(이무생 분)의 부장 아리마 역을 연기했다. 충직한 심복이자 언변에 능한 왜군 장수다. 위기 상황에서 왜군 진영을 오가며 목숨을 걸고 시마즈(백윤식 분) 군에게 지원을 요청한다. 책사로서 기질을 발휘하며 최후 전투에 깃든 긴장감을 전달하는 활약을 펼친다.
이규형은 "사극 중의 사극"이라고 표현하며 "꼭 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이어 "거장 김한민 감독의 '명량'(2014)을 비롯해 '최종병기 활'(2011), '극락도 살인사건'(2007) 등이 인상적이었다. 이순신 3부작 10년 여정의 대미를 장식하는 영화라는 점에서 더 매력적이었다. 대본을 보기도 전에 무조건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고 했다.
일본어·변발·10kg 감량…왜군 장수로 여정이규형은 왜군 장수 아리마 역할을 일본어로 소화했다. 그는 "일본어 선생님 4명과 대본을 공부했다. 목표는 일본인이 봐도 위화감을 느끼지 않도록 만들어보자 였다. 후시 녹음도 필요 없도록 만들고 싶었다. 목숨을 걸고 열심히 했다. 다행히 후시 작업이 별로 없어서 호흡과 숨소리 정도만 작업했다"고 말했다.
변발 분장도 도전이었다. 올해 겨우 마흔살. 잘생긴 청춘 배우에게 머리 스타일은 중요하다. 물론 연기의 일부지만 머리카락 절반이 없는 채로 등장하기란 쉽지 않았을 터다. 이규형은 처음 분장하고 테스트 촬영을 했을 때를 떠올렸다.
"분장을 받고 거울을 봤는데 의외로 '생각보다 잘 어울리는데?' 싶더라고요. 옆에 이무생 형을 봤는데 엠(M)자 머리가 멋있었어요. 마치 드래곤볼 캐릭터 중에 베지터 같았어요. 고니시가 아리마보다 더 높은 지위 장수라서 그런지 머리에 힘을 주더라고요.(웃음) 형은 눈도 부리부리하고 잘 어울렸어요. 외형 디자인을 잘 해주셔서 인물들이 잘 살아난 거 같아요."
아리마가 악명 높은 살마군을 이끄는 왜군 최고 지휘관 시마즈(백윤식 분)를 찾아가 무릎 꿇고 설득하는 장면은 한 편의 연극처럼 그려진다. 이규형은 "그 장면이 첫 촬영이었다"며 웃었다.
"감정적으로 가장 중요한 장면이었어요. 또 백윤식 선배와 함께 찍는 장면이고. 농담으로 '감독님 저한테 왜 이러세요' 했죠.(웃음) 부담이 없었다면 거짓말인데, 기분은 좋았어요. 재밌겠다, 빨리 가서 연기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죠. 부담스러웠지만, 대작에서 놀 수 있어서 영광이었죠. 흥분도 되고요. 촬영 끝나고 감독님이 '술 한잔하러 가자'고 하셨는데. 마음에 드셨나, 아니면 끌고 가서 한마디 하시려나 걱정했죠.(웃음) 다행히 좋은 말씀을 해주시면서 잘 이끌어주셨어요. 이후 장면들은 여유가 생기더라고요. 매도 먼저 맞는 게 나았어요."
카메라 앞에서 대선배 백윤식의 눈을 처음 마주치던 순간이 뇌리에 강렬하게 남아 잊히지 않았다. 그는 "호랑이 같았다"고 표현했다. 이어 "문을 빡 열고 나왔을 때, 위압감과 압도적 존재감이 느껴졌다. 그 힘을 받아서 더 절박하면서 비굴한 감정이 나왔다"고 떠올렸다.
이규형은 양측 진영을 오가며 날렵하게 활약하는 왜군이 되는 과정에서 체중을 10kg 이상 감량했다. 그는 "지금까지 잘 유지하고 있다"며 웃었다. 그러면서 "작품 때문에 살을 빼는 일이 잦았지만, 한해 한해 다이어트가 더 힘들어진다"며 웃었다. "최근에도 뮤지컬 '몬테크리스토' 공연을 하면서 술을 안 먹어서 그런지 자연스럽게 살이 빠졌다"고 했다.
데뷔 23년 차 "무대는 나의 동력"
2001년 영화 '신라의 달밤'으로 데뷔해 드라마 '비밀의 숲'(2017) '슬기로운 감빵생활'(2017~2018) '라이프'(2018) '보이스 시즌4'(2021), 영화 '열정같은소리하고있네'(2015) '증인'(2019) '스텔라'(2022) 등에 출연했다.
무대에서 태동한 배우다. 뮤지컬 '빨래'(2009)를 시작으로 연극 '비스티 보이즈'(2014), '여신님이 보고 계셔'(2015) '사의 찬미(2017) '팬레터'(2021) '스위니 토드' '사랑의 불시착'(2022) 등에서 힘 있는 연기로 관객을 장악했다. 부지런히 활약하면서 드라마·영화 주연으로 자리를 잡았지만, 계속해서 무대에 오르고 있다.
"카메라 앞에서 촬영하다 보면 무대가 그립고, 무대에 있으면 촬영장이 그립고 그래요.(웃음) 영화는 감독에게 편집 권한이 있지만, 무대에서는 그 권한이 배우한테 있는 예술이란 점이 매력적이죠. 무대에 올라 관객들로부터 받는 기운이 연기 동력이 되기도 해요. 매년 한두 작품 반드시 공연하고 있어요. 주변에서 힘들지 않냐고 묻는데, 어릴 때부터 해와서 그런지 힘들지만 재밌어요. 익숙하고 편해요."
이야기하다 문득 무대에서 벗어나 처음 카메라 앞에 서던 때를 떠올렸다. 이규형은 "'비밀의 숲'이나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유독 고마운 작품"이라고 의미를 되새겼다. 그는 "당시 영화 '살인의 추억' 원작 연극 '날 보러와요'를 하고 있었는데, 운 좋게 '슬기로운 감빵생활' 신원호 PD님이 공연을 보고 캐스팅해주셨다"고 말했다.
다음달 25일까지 뮤지컬 '몬테크리스토' 무대에도 오른다. 이규형은 "현재 솔로이기에 가능한 스케줄"이라며 웃었다.
"2023년은 '노량'과 '몬테크리스토'로 마무리했어요. 12월 마지막 날에도 영화 무대인사와 공연을 했고요. 특별한 날 공연하면 더 좋아요. 관객이 꽉 차니까 힘이 나죠. 제 생일(11월29일)에도, 또 크리스마스 이브(12월24일)에도 공연을 했어요. 결혼한 배우들은 그런 날 공연을 빼달라고 하시기도 하지만, 저는 뭐 여전히 혼자 사니까요.(웃음)"
이규형은 최근 예능프로그램에서 의외의 매력을 드러내기도 했다. tvN '장사천재 백사장2'를 통해 스페인 산 세바스티안에서 식당 영업에 도전했다. 각종 술과 음료를 만드는 바텐더로 시작해 수백줄의 김밥을 말아내는 '김밥 천재'로 활약해 웃음을 줬다. 그는 "김밥은 이제 눈감고도 만들 수 있다"며 웃었다.
"'반주'가 두 개 지점으로 나뉘면서 처음에 바텐더를 하다가 주방보조로 들어가서 계란찜과 닭강정을 만들었어요. 바쁠 때는 설거지를 담당하다 김밥에 투입돼서 김밥 전사로 거듭났죠. 재료가 부족하면 백종원 선생님이 냉장고에 있는 재료들을 꺼내 김밥을 만들었는데, 정말 맛있었어요. 이장우는 점장을 맡았을 때도 정말 잘했어요. 저희 팀워크가 좋아서 오늘 인터뷰 끝나고 이장우가 운영하는 가게에 가서 모이기로 했죠. 장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더라고요. 저는 연기에만 전념하려고요.(웃음) 제 여정은 이제 시작입니다."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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