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이 '타워팰리스보다 비싼 고시원'에 사는 이유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
[이영광 기자]
▲ 권지웅 더불어민주당 전세사기고충접수센터 센터장 |
ⓒ 이영광 |
전세사기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권지웅 더불어민주당 전세사기고충접수센터 센터장이 지난해 12월 <전세사기 방치국가>란 책을 출간했다. 이 책에는 전세사기를 비롯한 주거 문제, 정치 현안에 대한 권 센터장의 견해가 담겼다.
여야는 당초 12월에 전세사기 특별법을 개정하기로 약속한 바 있다. 특별법 개정 문제가 어떻게 되어가는지 들어보기 위해 지난 12월 26일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에서 권 센터장을 만났다. 다음은 권지웅 센터장과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내용이다.
빌려 쓰는 사람들의 민주주의
- <전세사기 방치국가>라는 책을 출간하셨잖아요. 출간 소회가 궁금합니다.
"그간 가지고 있었던 생각을 칼럼으로 썼고, 그걸 정리한 책이에요. 사실 어떤 면에서는 새로운 내용이 아니라서 민망한 부분도 있죠. 그런데 아주 오랜 기간 동안 생각하고 있던, 많은 분에게 널리 말하고 싶었던 내용이기도 해요. 그것을 책으로 엮은 것 자체가 기쁘고요. 이걸 계기로 사람들이 제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고 피드백을 꽤 많이 해주셔서 좋습니다."
- 부제가 '빌려 쓰는 사람들의 민주주의를 위해'예요. 어떤 의미인가요?
"책에 서울 목동 사례가 있어요. 2013년 목동의 행복주택이 지어지려고 했을 때 행복주택이 생기면 학급이 과밀화되고 교통 체증도 더 심해지기 때문에 안 된다고 해서 결국 취소되었어요. 근데 그로부터 7년이 지난 다음에 목동지구 재개발이 결정됩니다. 재개발이라는 건 당연히 더 과밀화되고 교통 체증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조치인데, 그것은 그 지역 주민들에 의해 아주 환영받았죠. 그걸 보면서 이 사회가 빌려 쓰는 사람들이 살려고 하는 집은 거부하지만, 집을 사려고 하는 사람들의 집은 환영해 주기도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 요즘에는 공유 문화가 있잖아요. 안 쓰는 것을 같이 쓰는 것이죠. 하지만 이에 대한 거부감은 없는 것 같거든요.
"썼던 물건을 또 쓴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많이 사라진 게 맞고 장려되는 문화인데요. 지역에서 주택을 빌려 쓰는 사람들을 집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과 똑같은 시민으로 여기는가의 문제는 다른 것 같아요.
2013년쯤에 서울 광진구에 기숙사가 지어지려고 했어요. 그런데 기숙사 계획이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에서 통과 안 돼서 결국 못 짓게 될 상황이 됐어요. 서울시의회에서 예산까지 통과된 곳이었거든요. '지어야 된다'라고 말하기 위해서 제가 그 지역에 갔더니, 그 지역에 있는 분이 '대학생은 주민 아니잖아'라고 말하더라고요. 그분이 생각하기에 대학생은 시민이나 주민은 아니었던 것이죠.
그러니까 그들(주민이 아닌)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야 된다는 생각을 잘 안 하셨던 것 같아요. 민주주의라고 하는 건 기본적으로 모든 인간이 한 명의 시민이라고 생각하는 거잖아요. 하지만 실제로 많은 행정적 절차, 정치적 의사결정이 빌려 쓰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잘 듣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 사람들이 소외되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그런 상황을 균형감 있게 만드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고요. 그게 '빌려 쓰는 사람들의 민주주의를 위한'이라는 말의 뜻입니다."
▲ 권지웅 <전세사기 방치국가> 겉표지 |
ⓒ 다돌책방 |
"2009년에 제가 총학생회 선거에 도전했을 때 당시 학생회 선본의 공약으로는 처음으로 기숙사를 지을 것이며, 20대들을 위한 대출을 정부에 건의하겠다는 공약을 갖고 선거운동을 했어요. 그때 처음으로 주거와 관련된 이야기를 시작한 거예요. 그렇게 했던 배경이 저는 부산에서 올라와 여러 집에서 살았습니다. 처음에는 기숙사에 살았고, 잠만 자는 방에 살고, 친구랑 같이 살다가 원룸도 살고 그렇게 하던 중이었는데, 기숙사를 떠나니까 주거비가 비싸더라고요. 아르바이트도 더 많이 해야 했고요. 그런데 만약 학교에 기숙사가 더 많다면, 많은 친구가 소위 부모의 재력과 상관없이 교육을 동등하게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했죠."
- 민달팽이 유니온 활동도 하셨잖아요.
"당시 기숙사를 짓겠다는 공약을 하고 '집 짓는 달팽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달팽이를 끌고 다니면서 기숙사 지어야 된다는 서명도 받고 달팽이 빵을 만들어서 팔기도 했었는데 결국 기숙사를 짓지 못했거든요. 그래서 그때, 한 해 (활동)만으로는 기숙사를 짓지 못하니, 우리가 어떤 조직을 만들어두면 그 조직에 의해서 학교에 기숙사를 지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했어요. 이듬해인 2011년도에 '민달팽이 유니온'을 만들게 됩니다."
- 그러면 대학교 내에서 만들어진 게 퍼진 건가요?
"2013년도까지는 특정 학교 내 동아리처럼 있었어요. 그러다 2013년에 대학생만이 아니라 20대 주거 문제를 다루자고 하면서, 밖으로 나오게 된 거죠. 그때서부터 비영리 민간단체 신청 준비도 하고 CMS로 후원도 받고 했던 거죠."
- 사회로 나오면 시야가 넓어지잖아요. 어땠나요?
"처음에는 학내에서 통학하는 친구와 못 하는 친구를 나누고, 통학 못 하는 친구들에 비해 기숙사가 너무 적다는 식으로만 접근했었어요. 그런데 학교 밖으로 눈을 돌린 뒤에, 2013년쯤 처음으로 저희가 '청년 주거 빈곤율'이란 개념을 만들어냅니다.
지하방이나 옥탑방에 살거나 아니면 '최저 주거 기준' 미달의 주택에 사는 사람들, 그리고 주택이 아닌 비주거용 주택 고시원 같은 곳에 사는 이들을 '주거 빈곤 상태'로 규정하고 비율을 봤어요. 대한민국 전체 가구에선 그 비율(주거 빈곤 상태)이 줄어들고 있는데 1인 가구로 살고 있는 서울의 19세에서 34세 사이는 더 안 좋아지고(늘어나고) 있는 거예요. 그때 처음으로 이야기했던 게 '타워팰리스보다 비싼 고시원' 이야기였어요."
- 타워팰리스보다 비싼 고시원? 무슨 말인가요?
"한 평당 임대료로 치니까 그때 당시 저희가 알기로 제일 비싼 아파트였던 타워팰리스의 임대료보다도 고시원의 임대료가 더 비싼 거예요. 1.5평 정도인데 만약 화장실까지 있으면 거의 45만 원 정도 했거든요. 그럼 한 평에 거의 20만 원 가까이하는 거예요. 그런데 타워팰리스는 월 300만 원 정도 임대료를 받아도, 그게 한 28평 정도 되니까 그걸 평수로 나눠보면 한 11만 원 정도밖에 안 했어요. 즉 고시원은 평당 15만 원, 타워팰리스는 평당 11만 원이었던 거예요."
- 왜 그렇게 됐을까요?
"아주 열악한 주택이라도 거기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요. 공급과 수요를 맞추면 되는 문제가 아니라 거기조차도 못 빌리면 아예 홈리스가 되기 때문에 가격을 올릴 수 있었던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1.5평에 거의 40만 원짜리 주택이 만들어지죠. 가격을 낮추지 않아도 사람들이 오니까, 그 사람들에게 상당한 비용을 받고 있었던 거예요."
▲ 대전전세사기피해자대책위원회는 지난 5일 저녁 대전시청 남문광장에서 200여명의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전세사기피해 특별법 개정과 대책마련을 촉구하는 집회를 개최했다. |
ⓒ 오마이뉴스 장재완 |
- 최근 전세사기 문제가 사회 이슈잖아요, 근데 10년 전에도 전세사기는 있었다면서요?
"그렇죠. 민달팽이 유니온 위원장으로 있을 때인데 10년 전에 제 또래 친구가 저를 찾아왔어요. 그 친구 이야기를 들어보니 전형적인 전세사기라고 불릴만한 사건이었어요. 그 친구는 고등학교 때부터 모았던 돈 4500만 원으로 서울 신림동에 전셋집을 구한 거예요. 그런데 그 주택이 다가구 주택이었거든요. 다가구 주택은 앞에 선순위 세입자가 월세인지 전세인지가 중요한데 집주인이 다 월세라고 말해서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전세로 들어간 거예요. 알고 보니까 앞에 세입자들도 다 전세였고 자기가 거의 마지막에 들어간 전세였어요. 그러다 보니까 이 친구는 그 건물이 경매에 넘겨졌어도 한 푼도 돌려받지 못했어요.
그 친구가 와서 하소연하는데 전 너무 답답하고 미안했던 거예요. 그래서 이 문제를 꼭 풀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주택 임대차 보호법도 바꾸는 운동을 하고, 주거 관련해서 교육도 했는데 결국 그것들이 다 잘 진행되지 않았어요. 정치권에서는 관심이 없었고요. 그러다 보니까 10년 뒤에 정말 큰 비극이 벌어진 것이죠."
-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 절차는 지금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지난 6월 1일 법이 처음으로 시행되었고, 12월에 법을 개정하기로 여야가 합의해 놓은 약속이 있기 때문에 지금 진행은 되고 있는데요. 국민의힘과 국토교통부는 특별법 개정이 너무 과도하다는 입장을 끝까지 견지하고 있어요."
- 어떤 게 과도하다는 건가요?
"국토교통부와 국민의힘은 전세사기는 민간 사이에서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정부가 재원을 투여할 수 없다는 일관된 입장을 가지고 있어요. 그 입장에서 봤을 때 피해를 구제하는 개정안이 과도하다는 건데, 저는 이걸 궤변이라고 생각해요. 왜 그러냐면 부동산 PF 부실 문제가 지금 대두되고 있어요. 부동산 PF 시장에 빨간불이 켜지니까 정부가 28조 원에 해당하는 정책금융을 지원하고 그걸로도 모자라서 예산 5천억 원을 편성해서 지원하고 있어요. 은행에도 돈을 내라고 해서 5천억 원짜리 펀드를 또 받아서 투여하고 있고요.
그런데 부동산 PF 시장은 들여다보면 그건 민간이 사업을 설계해서 성공하면 이익을 보고, 실패하면 손해를 보게 설정된, 그야말로 민간의 일이에요. 그런데 거기에 지금 정부가 개입하고 있단 말이에요. 그러면서 전세사기 피해에는 개입할 수 없다고 하는 것 자체가 맞지 않은 거죠."
- 그럼 어떻게 개정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크게 세 가지 정도 있는데 하나는 피해자로 인정되는 범위를 현실적으로 늘려야 돼요. 피해자가 피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이 전세사기 피해를 사기로 입건하지 않으면 피해자로 인정 못 받게 돼 있어요. 둘째, 지금 법은 보증금 피해 구제 내용이 거의 없습니다. 즉 지금 현행법은 주거 안정 지원법 정도라고 생각하면 돼요. 그래서 보증금의 어떤 피해를 일부라도 보존하기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게 소위 '선 보상 후 구상권 청구'라는 제도예요. 이 제도가 들어갈 필요가 있고요. 끝으로는 법에 의해 피해자로 인정되어도 사실 정부가 제공하는 피해 지원 대책을 사용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요. 소득 요건이나 주택 유형에 따라서 안 된다는 거죠. 그런 것을 없애는 조치가 법에 들어가야 돼요."
- 집을 사는(buying) 문제와 집에 사는(living) 문제가 '정치'라고 책에 설명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일까요?
"제가 반복해서 강조하는 것은 이런 겁니다. 시민들은 집을 buy할 수도 있고 렌트해서 living할 수도 있어요. 선택 가능한 것이어야 돼요. 근데 지금 우리의 제도는 buy하지 않으면 주거 계획 세우기도 어렵고, 집 꾸미기도 어렵고, 누군가에게 간섭받지 않고 사는 것도 어렵습니다.
집을 사지 말고 빌려 살자는 말이 아니라 빌려 사는 사람들도 주거를 계획할 수 있고, 간섭받지 않고 살 수 있고, 집을 적절히 꾸밀 수도 있게 해야 된다는 거예요. 즉 '존엄하게 살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건데, 그런 사회를 만들 수 있는 건 '정치'라고 생각합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나는 왜 택배기사가 되었나... 목사로서 사죄합니다
- 이재명, '경정맥 손상' 2시간 수술..."민주주의에 대한 중대 위협"
- 최상목 부총리의 전화 한 통, 삼성의 로비는 성공했다
- "욕심 버리고 가자"... 잘 나가던 부부가 산속으로 간 까닭
- '이선균 재발 방지법' 제안... "수사기관·언론이 만든 비극"
- 박물관장 결단 없었다면... 귀한 주전자, 북한 소장품 될 뻔
- 빼곡한 아파트 사이 오래된 우물... 주민들이 지키는 이유가 있다
- 한동훈 일주일, 윤 대통령과의 '차별화'는 없었다
- 무알코올 맥주에서 술기운 대신 얻은 것
- 겨울에도 날씨와 상관없이... 하면 무조건 좋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