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특별법' 외면한 사이…'보험빵 사기'에 6조원 날아간다
#지난 2022년 20대 남성 A씨는 서울 중구의 한 도로에서 고의로 사고를 내 상대 차주의 보험사로부터 합의금 등 명목으로 600여만원을 챙겼다. A씨가 텔레그램에서 모집한 일당도 동승한 상태였다. A씨와 일당은 상습적인 보험사기라는 사실이 들키지 않도록 운전자와 동승자, 차량을 바꿔 두 차례 더 고의 사고를 낸 뒤 1200만원가량의 보험금을 더 받아냈다. 이른바 ‘보험빵(고의로 교통사고를 낸 뒤 보험금을 받아내는 수법)’ 사기였다. 이들은 상대 차주가 과실을 더 많이 떠안을 수 있도록, 무리하게 차선을 바꾸는 차량만 노려 들이받았다.
2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보험사기 처벌을 강화하는 보험사기방지특별법 개정안이 아직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보험사기방지특별법은 지난 2016년 제정된 뒤 2020년부터 17건의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지난해 11월에야 정무위원회가 개정안을 모아 의결한 상태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마지막 법사위 전체회의와 본회의에서 개정안이 통과되길 바랐지만 결국 해를 넘기게 됐다”며 “이달 법사위 상정을 다시 기다리고만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보험업계가 가장 큰 관심을 기울이는 건 보험사기 권유‧광고‧알선 행위 처벌 조항이다. A씨처럼 소셜미디어에서 ‘보험빵’ 사기단을 꾸리는 일이 빈번해졌지만 처벌 사각지대에 놓여서다. 현행법은 보험사기로 보험금을 타내는 행위 자체만 10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하고 있다. ‘사기단 모집’ 행위는 처벌되지 않다 보니,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텔레그램 연락처가 적힌 구인 글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자차 300만원/운전자 130만원/동승 40만원’처럼 보험금을 분배하는 조건이 담긴 문구를 적어 '고액알바'라며 유인하는 것이다.
자동차보험 사기뿐 아니라 실손보험 사기 사건에서도 유인‧알선 브로커는 처벌을 피해 간다. 통상 브로커는 병원에 환자를 소개하고 수수료를 받는데, 의료진은 실손보험에 가입된 환자에게 과잉‧허위 진료를 권유하는 식으로 보험사기가 조직적으로 이뤄진다. 환자는 실손 보험금을, 병원은 건강보험 급여를 부풀려 받을 수 있어서다. 이 같은 조직화에 장기실손 보험사기 적발 금액은 2015년 2428억원에서 2022년 5179억원으로 급증한 상태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사기가 지능화되고 고도화되고 있지만 보험사기방지특별법은 단 한 번의 개정도 이뤄지지 않아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개정안에는 ▶보험사기 목적을 가진 살인 등 강력범죄를 가중처벌하는 조항 ▶보험산업 관계자가 보험사기에 가담했을 경우 가중처벌하는 조항 ▶보험사기 유죄가 확정될 경우 보험사가 보험금을 돌려받는 조항 등도 담겼다.
보험사기 적발금액은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해 상반기 적발금액은 6233억원으로 처음으로 6000억원 선을 넘었고, 전년 같은 기간(5115억원)에 비해 21.8% 늘었다. 적발 인원도 지난해 상반기에만 5만5051명을 기록해 2022년(10만2679명)의 절반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 보험사기는 선량한 가입자들의 보험료를 끌어올리는 요소다. 보험사가 보험사기로 불필요한 보험금을 지급하게 되면 손해율이 높아져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보험업계는 보험사기로 인한 누수 금액이 2018년 기준 6조2000억원으로, 한 가구당 약 30만원가량의 보험료를 해마다 추가로 부담하게 된다고 분석한 바 있다.
오효정 기자 oh.hyo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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