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넘어도 괜찮다는 수녀들의 외침

안지훈 2024. 1. 2.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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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지훈의 뮤지컬 읽기] 두 번째 내한 펼치는 코미디 뮤지컬 <시스터 액트>

[안지훈 기자]

▲ 뮤지컬 <시스터 액트> 포스터 동명의 코미디 영화를 원작으로 삼아 제작된 뮤지컬 <시스터 액트>가 두 번째 내한 공연을 펼친다. 2017년 첫 내한 때와 마찬가지로 김소향이 '메리 로버트'를 연기한다. <시스터 액트>는 2024년 2월 11일까지 디큐브 링크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 EMK뮤지컬컴퍼니
 
밤무대를 전전긍긍하던 삼류 가수 '들로리스'는 내연남이자 범죄조직의 두목인 '커티스'의 살인 행각을 우연히 목격한다. 들로리스는 놀라 도망치고, 커티스는 유일한 목격자인 '들로리스'를 쫓는다. 경찰서를 찾아간 들로리스는 신변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줄 것을 요청하고, 경관 '에디'는 들로리스를 성당에 숨기기로 한다. 그렇게 성직자의 이미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들로리스는 얼떨결에 수녀의 삶을 살게 되고, 각종 에피소드들이 그녀 앞에 펼쳐진다.

듣기만 해도 웃음이 픽 하고 나오는 유쾌한 설정. 동명의 코미디 영화를 원작으로 삼아 만들어진 뮤지컬 <시스터 액트>의 이야기다. 원작 영화에서 들로리스를 연기한우피 골드버그가 직접 뮤지컬을 제작했고 <알라딘>, <미녀와 야수> 등의 음악을 만든 알란 멘켄이 작곡가로 작품 제작에 참여했다. 이미 전세계를 돌며 6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시스터 액트>의 현지 공연팀이 2018년 이후로 5년만에 한국을 다시 찾았다.

김소향이 수녀를 지망하는 순수한 소녀 '메리 로버트'에 분하며 외국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고, 6명의 한국 배우들이 추가로 무대에 오른다. 부산 소향씨어터를 거쳐 지난 11월 서울에 상륙한 <시스터 액트>는 2024년 2월 11일까지 디큐브 링크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때로는 선을 넘는 용기가 필요하다

<시스터 액트>의 장르를 굳이 구분하자면 코미디이고, 또 쇼 뮤지컬이다. 웃음을 유발하고, 관객을 흥분시켜야 한다. 이런 특성상 이야기가 복잡하면 안 된다. 따라서 <시스터 액트>도 이야기를 단순화했다.

얼떨결에 수녀 생활을 하게 된 들로리스에겐 모든 게 어색했다. 세속적인 것을 추구하고 가수로서의 성공을 꿈꾼 들로리스는 세속적인 것과의 단절을 요구하는 '원장 수녀'가 탐탁지 않았다. 들로리스와 원장 수년은 작은 갈등을 반복하고, 그러던 어느 날 원장 수녀는 가수 생활을 했다던 들로리스에게 성가대를 맡긴다. 그런데 밤무대에서 뛰어놀던 들로리스가 차분하고 절제된 성가를 고분고분 받아들일 리가 있나. 들로리스는 자신만의 방식대로 성가대를 주도하고, 다른 수녀들은 처음에는 어색해하다 하나둘씩 이를 받아들인다. 그렇게 들로리스의 성가대는 미사를 하나의 쇼처럼 만들어버린다.

필자는 <시스터 액트>를 보며 '유순한 신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체제에 적응하고 살아남기 위해 세상이 요구하는대로 살아가는 사람을 뜻하는 말로, 포스트모던 철학자 미셸 푸코가 창안한 개념이다. 근대 교육을 통해 만들어진 평균적 인간, 권력이 원하는대로 순응하는 인간, 쉽게 말해 '말 잘 듣는 평범한 인간'. 푸코가 보기에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는 다 유순한 신체들이다. <시스터 액트> 속 등장하는 대다수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절제된 성가에 익숙하던 수녀들은 처음에는 들로리스의 방식을 어색해하고, 원장 수녀는 들로리스의 성가는 성가가 아니라며 부정한다. 원장 수녀는 들로리스에 의해 미사가 파티처럼 진행되는 데 강한 거부감을 표하며, 경찰에게 들로리스를 도로 데려가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환호한다. 수녀들은 잠들어있던 욕망이 깨어나기라도 한 것처럼 열렬히 성가를 부르고, 문을 닫을 위기에 놓여있던 성당에 신도들이 가득 들어찬다. 품격을 지켜야 한다는 원장 수녀와 달리 신부는 들로리스의 성가대에 찬사를 보낸다. 줄어드는 신도 수 탓에 성당을 압박하던 대교구는 입장을 바꾸고, 급기야 교황이 들로리스의 성가대를 보기 위해 찾아온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던 일, 감히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이었는데, 막상 저질러보니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 넘어서는 안 된다던 선을 넘었는데, 오히려 더 좋은 결과가 찾아왔다.

이런 들로리스의 열정에 수녀를 지망하는 소녀 메리 로버트는 큰 감명을 받는다. 메리 로버트는 '유순한 신체'의 전형이다. 부모님이 시키는대로 공부를 열심히 했고, 일탈이라고는 전혀 해본 적 없으며, 정직하게 수녀 생활에 몰두한, 그저 여행과 서핑이 꿈이라던 소녀. 이런 소녀가 들로리스를 보고 변화한다. 그리고 과감히 선을 넘는다. 수녀복에 가죽 부츠를 신고 교황 앞에서 춤을 춘다. 그 결과는? 교황의 축복이었다.

우리는 자신에게 허락된 범위 내에서 정해진 선을 넘지 않으려 애쓰며 살아간다.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는 걸 누가 원하는지 알지 못한 채(푸코에 따르면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는 걸 원하는 건 '근대 권력'이다) 그저 이렇게 살아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치부하며 하루하루 살아간다. '왜 그러면 안 되는데?' 하는 질문은 잊은 지 오래다. 이때 <시스터 액트>는 이 질문을 상기시켜준다. '왜 그러면 안 되는데?' 하고 한 번쯤 물어보고, 때로는 선을 넘어보라고. 그래도 괜찮다고. 용기를 가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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