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서 '목표'가 된 야구, 이제 비로소 시작이다
[스텔라김 기자]
1992년, 호주에서 태어나고 자란 스물 한 살의 한 청년이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자녀 교육, 자녀의 성공이 삶의 목표 1순위인 이민 1세대 부모님 밑에서 공부에 온힘을 쏟아보기도 했지만 우연히 중학교 때 시작한 야구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가 없던 청년이었다. 지금처럼 네트워킹이 되어 있지도 않았던 시절, 더듬거리는 몇 마디 한국어만 갖고, 게다가 야구의 불모지이다시피 한 호주에서 그저 '취미생활'처럼 했던 실력으로는 어쩌면 '무모한 도전'이기도 했다.
역시 처음 테스트를 한 모 구단에서 '거절'을 당했다. 기대는 없었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좌절감에 다시 돌아올 마음으로 짐을 싸던 중에 LG 트윈스와 연락이 닿았다. 정말 운명처럼, 기적처럼 입단이 이뤄졌고 그는 1994년 LG트윈스의 첫 우승 그 역사에 당당하게 유격수로 이름을 올렸다. 한국어가 서툴러 감독에게 '너도 밥 먹었나?'라고 대답을 해서 선배들이 어이가 없어 할 정도였던 그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도 하고 이제는 한국어가 영어만큼 편안해졌다.
그로부터 30년가량이 지난 2021년.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라 영어는 기초적인 것만 더듬거릴 수 있는 열 다섯의 한 소년이 엄마와 호주행 비행기에 올랐다. 코비드라는 전대미문의 전염병으로 꽉꽉 닫혀있던 세계 곳곳의 문이 조금씩 열릴 무렵이었다. 엄마의 호주행 목표 중 가장 일순위는 의대에 재학하며 조금 힘들어하는 누나의 뒷바라지였지만 소년이 선뜻 따라나설 수 있었던 이유는 야구 특기생으로 스포츠 전문 고등학교에 들어가 운동을 계속 할 수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누군가 말을 붙여올까봐 가슴이 콩당거렸지만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듯 시크한 표정을 만들며 소년은 야구 실력으로 자신을 알려갔다. 점차 가까운 친구가 생기고 훈련도, 학교 생활에도 익숙해져 갔다. 호주에 온 다음 해인 2022년과 2023년까지 연속 언더 18(U18) 국가대표에 선발되면서 야구 실력만큼 영어도 늘어갔다. 그리고 미국 프로야구 국제 아마추어 유망주 가을 캠프에 2년 연속 선발되어 멋진 경험, 아울러 자신의 실력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가졌던 소년은 지난해 12월 14일, 미국 피츠버그 파이러츠(Pittsburgh Pirates)와 최종 계약을 마치며 프로의 길에 첫 발을 내디뎠다.
서로 같은 길, 그러나 또 반대처럼 다른 길을 만든 부자(父子)의 이야기, 그리고 그 젊은 주인공은 바로 피츠버그의 루키로 선발된 김준석 선수다. 피츠버그로 떠나기 전 유종의 미를 거두는 의미로 남은 경기를 다 치루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훈련에 땀 흘리고 있는 김준석 선수를 멜번 근교 샌드링햄(Sandringham) 야구 클럽에서 만났다.
▲ 끝없는 연습 더우나 추우나 강도 높은 훈련을 지속한다 ⓒ 스텔라김 |
"일단은 정말 기쁘지만 이제 비로소 시작이라는 생각을 가슴에 새기고 있습니다."
190센티미터에 이르는 큰 키에 아직 소년티가 가득 남아있는 김 선수는 축하인사에 그렇게 의젓한 대답을 건네온다. 집안에서는 개구장이 막내이면서 축구를 한다고 뛰어다니기도 하고, 미술을 배워볼까도 했던 초등학생 때, N 야구팀에 완전 빠져있던 베프 때문에 함께 응원을 하다가 야구에 빠져들었다. (DNA가 이때 발현된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리고 아빠와 재미로 했던 캐치볼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기 시작했던 것이다. 야구로 이끈 그 친구도 야구를 하고 있을까?
"원래 한국의 연예인분들이 어떻게 시작했냐고 물어보면 친구가 오디션 보는 데 따라갔다가 친구는 떨어지고 본인이 스카우트 되었다고들 하잖아요? 그게 그냥 드라마틱하게 얘기하는 건 줄 알았는데…"
흐흐흐… 장난기도 살짝 밴 웃음을 곁들이며 김준석 선수는 본인만 야구의 길로 들어섰다고 설명한다.
초등학교 때는 클럽 야구 팀에서 배우고 중학교는 야구 팀이 있는 곳을 택해 방과 후 훈련까지 빠짐없이 참석하며 착실하게 꿈을 키웠다.
"고등학교에 올라올 때 호주로 온 건데요. 물론 아빠가 태어난 곳이어서 저희는 자동적으로 호주 국적이 취득되었고 누나의 공부가 큰 이유이기도 했지만 저 역시 신중하게 야구 생활에 대해 부모님과 깊은 대화를 나눴어요. 다른 길로 가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으니 이제 야구는 제게 있어 그저 꾸어보는 꿈이 아니라 '목표'가 된 거잖아요. 대충 할 수는 없는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겁니다."
'꿈'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목표'가 되었다는 그 말에 소년의 앳된 얼굴과는 달리 믿음직한 각오가 이미 엿보인다. 그가 두 차례의 미국 캠프를 통해 피츠버그 구단에 어떻게 확실한 눈도장을 찍게 되었는지, 왜 호주 야구협회가 그의 프로필을 '호주의 글러브'가 될 선수라고 적었는지 알 것 같다.
피츠버그 관계자는 김준석 선수의 수비가 처음부터 눈에 띄었다며 두 차례 동안 면밀히 분석을 한 후 결정했다는 소감을 전해 왔다고 한다. 수비만큼은 자신이 있다는 김준석 선수는 시대에 맞춰 양손 타격을 다 할 수 있는 훈련에도 매진하고 있다.
"야구가 제 인생 목표가 된 만큼 이번에 선물처럼 다가온 이 기회를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쁨에만 취해있지 않고 이제부터라는 각오로 하나하나... 스텝을 잘 밟으며 열심히 올라가보겠습니다."
처음 야구를 시작했을 때의 설렘같은 마음으로 각오를 더 단단히 다진다는 김준석 선수. 피츠버그의 '루키'로 첫 발을 내디디는 것이 수없이 쏟아지는 축하 인사만큼의 부피와 똑같은 부담일지도 모른다. 그의 말대로 '이제 비로소 시작'일테니 말이다. 그의 의젓함이, 흔들리기 보다는 차분하게 앞날을 더 생각하는 그 마음이 있어 믿음을 가져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아버지와 똑같은 유격수 포지션을 가졌으나 어쩌면 이미 예전, 선수 시절의 아버지를 넘어섰을지도 모르는 제이든 킴(Jayden Kim)이라는 이름을 기억 속에 담는다. 그의 활약을 함께 따라가보고 싶다는 기대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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