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삼쩜영] 뛰어놀다 저녁 늦게 오는 아이, 혼자인데 괜찮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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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우 기자]
평일 오후 4시 30분이면 전화벨이 울린다. 첫째 아이다. 학교 방과후가 끝날 시간이다. 전화가 걸려온 걸 보니 아이가 내게 전할 말은 뻔하다.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놀다 귀가하겠다는 이야기. 전화를 받는다. 아이는 통보하듯 외친다. '엄마 나 친구들이랑 놀다 갈게요.' '어두워지기 전에 와.' '알겠어요.' 짧은 통화는 그렇게 끝이 난다.
▲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어놀며 환하게 웃고 있다.(자료사진) |
ⓒ unsplash |
나는 슬쩍 아이의 얼굴을 살피며 잘 놀았는지 묻는다. 흔쾌히 잘 놀았다고 할 때도 있고 친구들과 다툼이 생겨 속상하다고 말할 때도 있다. 자신이 만든 놀이를 친구들이 함께 해주지 않았을 때도 기분이 좋지 않다. 그럴 때면 나도 마음이 편치 않지만, 이런 날도 저런 날도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아이를 달랜다. 아이가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럴 땐 때를 기다린다. 아이가 이야기할 마음의 준비가 될 때까지.
초등학교 2학년 아이가 집밖에서 보호자 없이 뛰어노는 일,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일상인 것 같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 나의 일상 이야기를 들려주면 지인들은 흠칫 놀라곤 한다. 아이 혼자 놀게 놔둬도 괜찮냐는 질문이 날아온다.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는 데 꼭 엄마가 붙어있을 필요는 없다고 나는 대답한다. 지인들은 내가 사는 곳이 시골이라 가능한 이야기라고 말한다. 도시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는 것.
요즘은 어린이가 보호자 없이 놀고 있는 모습을 보기가 어렵다. 드물게 그런 모습이 보이면 '보호자가 잘 관리하지 않는 아이'라고 낙인이 찍힌다고 한다. 남는 시간에는 학원을 가든가 집에 머물러야지, 홀로 놀이터나 운동장 같은 외부 공간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 아이가 있다면 보호자가 관심을 두지 않는 아이이니, 자신의 아이와 어울리지 못하도록 한단다. 나쁜 물이 들었다, 가정 환경이 좋지 않다 등의 불확실한 정보가 나돌고 각종 선입견이 따라 붙는다.
어린이에게 들이대기에는 너무나 잔인한 수식어가 아닐 수 없다. 아이가 혼자 놀 수도 있는 게 아니냐고 물으면 요즘 세상은 그렇지 않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 눈쌓인 놀이터. |
ⓒ 픽사베이 |
'요즘 세상'이라. 요즘 우린 대체 어떤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걸까. 내가 어릴 적만 해도 동네 골목마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로 시끌벅적했었다. 놀이터는 부족했지만 골목은 뛰어놀기에 퍽 알맞은 공간이었다.
매일 학교가 끝나면 책가방을 집에 던져 두고 골목으로 나가 친구들과 어울려 놀았다. 소꿉놀이, 숨바꼭질, 술래잡기 등. 신나게 놀 때도 있었지만 다툼이 일어날 때도 잦았다. 어스름 땅거미가 지고 집집마다 고소하게 밥 짓는 냄새가 피어오르면 엄마들이 아이들 이름을 한 명씩 불렀다. 그제야 아쉬운 마음을 안고 하나둘 집으로 돌아가던 아이들. 그때까지 우리를 지켜보는 어른은 주위에는 없었다.
그때에 비해 요즘은 자동차 수가 부쩍 늘어나고 골목이 사라졌다. 대신 놀이터와 공원이 많이 생겼다. 아이들은 골목 대신 그런 공간에서 마음 놓고 뛰어놀 수 있다. 그 공간에 아이들만 있지는 않다. 아이 옆에는 꼭 보호자가 있어야 한다는 듯, 거의 항상 보호자가 지켜본다.
소근육과 대근육 발달을 거의 마쳤을 듯한 아이들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함께 어울릴 친구를 고르는 문제부터, 심지어 놀이를 선정하는 문제에 이르기까지 보호자가 끼어들기도 한다. 아이들 간에 다툼이 벌어지면 아이들끼리 해결하기보다 보호자가 나서서 중재를 한다.
단지 한국만 이런 분위기인 건 아닌가 보다. 최근에 읽은 요한 하리 작가의 <도둑맞은 집중력> 14장 챕터 중 마지막 장의 제목은 '신체적으로 심리적으로 감금된 아이들'이다. 이 책에서 보면, 한국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아이들을 아이들끼리 마음껏 놀도록 내버려두는 모습은 점점 보기가 어렵다. 아이들은 늘 보호자 곁에서 논다. 애착을 형성하는 시기가 지나고, 무엇이 위험한지 아는 나이가 되어서도 그렇다.
우리는 혹시 보호를 위장한 일종의 감시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이들이 이런 환경에서 자유롭게 창의적인 놀이를 할 수 있을까. 자신이 직접 어울리고 싶은 친구를 선택하고, 다가가 말을 걸고 알아가는 단계를 거칠 수 있을까. 문제가 생겼을 때 스스로 혹은 함께 해결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을까.
그러다보면, 아이들은 친구들과 함께 혹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보다 어른들 힘을 빌려 문제를 무마하는 데 익숙해지지는 않을까. 작고 사소한 문제만 발생해도 쪼르르 보호자에게 해결해달라 달려가게 되지는 않을까.
▲ 해질 무렵까지 뛰어노는 아이들이 점점 줄어간다. |
ⓒ unsplash |
충분히 놀이할 시간이 부족한 것도 문제지만, 아이들이 실제 놀이를 위한 시간에 온전히 몰입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보호자에게 주의를 빼앗기고 있는 건 아닐까.
어른의 삶에도 여백이 필요하지만 아이들의 삶에도 여백이 필요하다. 혼자일 수 있는 시간, 기꺼이 혼자인 시간. 함께라면 직접 부딪쳐 즐거움을 찾거나 문제를 해결하는 시간. 아이들은 그 시간들을 통해 갖가지 공상을 하고, 각 사람의 생각은 모두 다르며, 함께 잘 지내려면 서로의 의견을 필히 조율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울 것이다. 보호자 없이 혼자 독립적으로 삶을 개척하는 방법을 조금씩 배워 갈지도 모른다.
어른들이 보호라는 명목으로 아이들의 능력을 너무 낮춰 보고 있는 건 아닐까. 어른 없이 아이들끼리는 할 수 없다고, 아이들은 제 몸을 지킬 수 없다고,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아직 없다고. 경험보다 더 큰 삶의 배움은 없다. 어른인 나도 여전히 사람과 세상과 부딪치며 한계를 절감하기도 하고 뛰어넘기도 하며 살아간다.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요즘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자유롭게 어울리고 부딪치고 질문하고 배회하며 유능해질 기회인지도 모른다. 어른의 간섭을 벗어나, 어른의 보호를 뛰어넘어,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어가는 일. 아이들의 잠재력은 어른들의 짐작보다 훨씬 크다. 아이들은 늘 내 예상보다 한 뼘은 더 빨리 자라고 있다. 우리는 아이를 보호하고 있는가, 아니면 아이의 세상을 가로막고 있는가. 한 번쯤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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