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명의 배우가 영화를 어디까지 살려낼 수 있을까
[김성호 기자]
최고의 배우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이가 있다. 크고 작은 배역에서 언제나 최고의 연기를 보였다 해도 지나치지 않은 명품배우,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이 그 가운데 하나다. 결코 잘 생기거나 화려한 외모가 아님에도 다시는 그의 존재를 잊을 수 없을 만큼 몰입도 높은 연기를 선보이는 그다.
그와 함께 성장했다 해도 좋을 감독 폴 토마스 앤더슨의 페르소나라고 불릴 만큼 빠짐없이 그의 걸작들에 출연했고, 나아가 전 세계에 유통되는 할리우드 걸작에도 수없이 출연했다. 그중 어느 한 캐릭터에 매몰되지도, 특별한 장르나 이미지에 갇히지도 않는 그의 연기는 그가 연기에 얼마나 특출난 재능을 갖고 불굴의 노력을 쏟아부었는지를 증명한다.
▲ 모스트 원티드 맨 포스터 |
ⓒ 드림웨스트픽쳐스 |
세상 떠난 대배우, 그 절정의 연기가 여기 있다
그중에서도 그의 연기를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주목받은 한 영화가 있다. 실제 유작은 촬영 중에 있던 <헝거 게임: 모킹제이>라고 하는 게 맞겠으나 그보다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의 연기를 제대로 볼 수 있는 작품이 바로 <모스트 원티드 맨>이다. 그를 애정하는 이들은 이 작품을 그의 유작이라 말하며 지금까지도 꾸준히 찾고 있는 것이다.
2014년 제작된 <모스트 원티드 맨>은 독일 항구도시 함부르크를 배경으로 한다. 실제 이 도시는 매우 특별한 곳이다. 수많은 주의 연방으로 구성된 독일에서도 함부르크는 도시 그 자체로 하나의 주를 이룬다. 자유 한자도시 함부르크(Freie und Hansestadt Hamburg)라는 이름답게 한자동맹으로부터의 오랜 역사를 지녔고, 그 부강함을 이어받아 독일 내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로 알려져 있다.
▲ 모스트 원티드 맨 스틸컷 |
ⓒ 드림웨스트픽쳐스 |
가장 자유로운 도시에서 가장 위험한 일이
주요 경계도시로 분류돼 독일은 물론이고 전 세계 정보기관의 주목을 받게 된 함부르크다. 바로 이곳에 대테러부대를 이끄는 군터 바흐만(필립 세이모어 호프만 분)이 있다. 이름은 그럴싸하지만 사실상 좌천인 자리다. 한때는 독일 최고 정보기관에서 날리는 스파이였으나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작전에 완전히 실패한 뒤 좌천된 곳이 바로 여기다. 함부르크에서 활동할 수는 있다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독일 정보국과 긴밀히 협조해야 한다는 단서까지 붙어 있는 신세다.
그러던 중 함부르크에 특별한 누군가가 입국했단 소식이 접수된다. 이사 카르포프란 사내로, 다름 아닌 체첸 출신이다. 이슬람 무장조직과 엮여 있어 인터폴로부터 지명수배를 받는 신세인 이사에게 군터는 흥미를 느끼고 접근을 시작한다.
▲ 모스트 원티드 맨 스틸컷 |
ⓒ 드림웨스트픽쳐스 |
일상의 평화 아래 수많은 협잡이 존재한다
군터는 함부르크에서 오랫동안 테러리스트 조직을 노려왔다. 그 조직엔 은밀히 감춰진 자금책이 있는데, 유명 목회자로 알려진 닥터 압둘라가 바로 그 자금책이라고 군터는 의심한다. 그러나 마땅한 증거 하나도 나오지 않아 손을 대지 못하던 중 이사가 그 앞에 나타난 것이다. 이슬람 문화와 친밀한 젊은이가 막대한 자금을 갖고 있다면 테러조직이 접근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는 일이다. 어쩌면 군터가 조금 손을 대서 접근을 하도록 할 수도 있는 일이고.
그러나 군터의 계획은 여유롭게 흘러가지 않는다. 미국 정보기관을 비롯해 세계 각국이 이사에 대한 정보를 포착하고 그를 쫓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테러와의 전쟁을 표방하며 이슬람에 대한 극심한 반감을 가진 미국 조직이 이사의 신병을 확보하면 모든 계획이 틀어질 밖에 없는 일이다. 군터의 팀이 쫓기듯 달려들 밖에 없는 이유다.
▲ 모스트 원티드 맨 스틸컷 |
ⓒ 드림웨스트픽쳐스 |
한 명의 배우가 영화를 끌어올리는 법
수면 위에선 평화롭지만 물 아래에선 온갖 협잡이 자행되는 정보조직 간의 대결을 영화는 총 한 발, 주먹 한 방 없이 긴박하게 끌어간다. 밀도 있는 드라마 가운데 첨예한 긴장이 유지될 수 있는 데는 시종일관 카메라의 얼굴이 담기는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의 독보적 연기가 결정적 역할을 해낸 덕이라고 보아야 옳을 것이다.
영화는 한 배우가 영화를 어디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교본과도 같은 작품이다. 엄청난 긴장과 압박 가운데서도 무너질 듯 무너지지 않는 그가 마침내 폭발하는 순간은 이 영화의 백미라고 해도 좋다. 그럼에도 삶은 계속되고, 또 업은 지속된다. 마음처럼 되는 것이 열에 채 한둘이 되지 않는 삶 가운데서도 어떻게든 더 나음을 위하여 생을 지속하는 이들이 이 세계에 조금은 남아 있음을 이 영화가 내보인다.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의 죽음은 불행한 일이다. 특히나 톱스타의 예기치 않은 죽음은 최근 한국에서도 알 수 있듯 그 충격이 남다를 밖에 없다. 그럼에도 그가 남긴 작품이 세상에 남아 오늘의 관객 앞에 꾸준한 영향을 준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특별한 힘을 가진 이와 같은 영화가 세상사 수많은 고통 가운데 무너져가는 이들에게 귀한 무엇을 전할 수 있다는 건 더욱 그러하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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