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의 나폴레옹 모자···1% 가능성으로 100%에 도전하는 ‘긍정의 힘’ [내 인생의 오브제]

2024. 1. 2.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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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에서 출발한 승용차는 낮 12시경 판교 톨게이트를 빠져나왔다. 김홍국 하림 회장은 점심시간에 맞춰 판교 사무실로 올라오던 참이었다.

2014년 11월 12일. 늦가을에서 겨울로 들어서는 문턱. 비가 와서 그런지 날은 스산했다. 고속도로에는 엷은 안개까지 끼어 있어 도착 시간은 예상보다 다소 늦어졌다. 만약 궂은 날씨가 아니었다면 김 회장은 굳이 26억원이나 되는 거액을 투자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12시가 되자 그는 라디오 주파수를 KBS 제1라디오에 맞췄다. 서너 꼭지 뉴스가 흐른 후 나온 외신이 그의 귀를 사로잡았다. 프랑스 파리에서 나폴레옹 모자가 경매로 나왔다는 뉴스였다. 사무실에 들어오자마자 일부 간부를 불러 내부 검토에 들어갔다. 해외 프로젝트 경험이 있는 이태균 팀장(현재 참트레이딩 대표)을 파리로 보내는 결정이 이뤄진 건 이틀 후였다.

이태균의 증언. “토요일이었습니다. 저녁에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경매장이 있는 오세나로 갔습니다. 모나코 왕실이 보유한 나폴레옹 유품 280여점이 나왔습니다. 카탈로그가 있었는데 그 모자는 82호 품목이었습니다. 예상가는 40만유로(당시 원화로 약 5억6000만원). 1호 품목인 그림부터 경매가 시작되는데 대부분 예상가의 10배 정도에 낙찰됐습니다. 김 회장은 가능한 여러 품목을 사라는 지시를 내렸는데 하나도 못 사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화를 드렸더니 역정을 내는 겁니다. “내가 죄지었냐. 회삿돈 쓰는 거냐. 내 돈 쓰는 건데 뭘 걱정하냐”고. 그래서 제가 무제한 예산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야 살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김 회장이 30억원까지는 쓰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그 모자를 26억원에 낙찰받게 된 것입니다.”

나폴레옹이 1800년 늦은 봄 알프스를 넘은 뒤 오스트리아군과 치른 마렝고 전투에서 착용했던 비버 가죽의 이각모. 오른쪽 사진은 김홍국 회장. (하림 제공)
도대체 김 회장에게 나폴레옹은 어떤 의미인가?

“중학교 때 나폴레옹 전기를 읽었습니다. 얇은 책이었지요. 그걸 읽고 지금까지 제 머릿속에 있는 나폴레옹은 1%의 가능성으로 100%를 해내는 인물이었습니다. 세상에는 99%의 가능성이 있어도 1% 불가능성 때문에 일을 못 해내는 사람이 있거든요. 긍정과 부정의 차이입니다. 긍정적인 사람은 일 많이 하고, 사회와 국가에 기여하고, 가치를 만듭니다. 부정적인 사람은 남의 흠만 찾고 그게 전부인 것처럼 말합니다. 남 신세 지고, 남이 한 걸로 먹고삽니다.”

김 회장은 “긍정의 힘으로 세상을 바꾼 상징적 인물이 나폴레옹”이라며 “중학교 때부터 내 가슴속에는 나폴레옹이 자리 잡았다”고 회고한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병아리 10마리 갖고 양계업을 시작한 것이나 닭고기 장사하는 사람이 무슨 물류에 뛰어드냐는 세간의 비난을 무릅쓰고 보란 듯 팬오션을 인수해 성공시킨 것도 모두 김 회장 마음속에 긍정의 힘이 작용한 덕이다. 지난해 말 국내 1위 컨테이너 선사인 HMM 인수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재계 서열 13위로 뛰어올랐다고들 하는데 저한테 중요한 건 그게 아닙니다. 전 하림이 긍정의 힘으로 똘똘 뭉친 기업으로 성장하길 원합니다. 나에게 나폴레옹 모자는 그의 정신과 삶입니다. 그건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가치입니다.”

그는 이렇게 낙찰받은 나폴레옹 모자를 판교에 있는 NS홈쇼핑 1층에 상설 갤러리를 만들어 전시해놓고 있다.

[손현덕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41호 (2024.01.01~2024.01.0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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