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새해 첫날, '소영선배'가 부활했다
[양형석 기자]
정관장이 새해 첫 경기에서 도로공사를 꺾고 3연패의 늪에서 탈출했다.
고희진 감독이 이끄는 정관장 레드스파크스는 1일 김천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도드람 2023-2024 V리그 여자부 4라운드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와의 원정경기에서 세트스코어 3-1(25-22, 20-25, 25-20, 25-23)로 승리했다. 3연패로 우울하게 2023년을 마무리했던 정관장은 2024년 새해 첫 경기에서 도로공사를 상대로 승점 3점을 적립하면서 4위 IBK기업은행 알토스와의 승점차이를 4점으로 좁혔다(8승 12패).
정관장은 외국인 선수 지오바나 밀라나가 58.70%의 성공률로 30득점을 퍼부으며 공격을 주도했고 미들블로커 정호영이 블로킹 3개를 포함해 12득점으로 힘을 보탰다. 이날 정관장은 팀 내 최다득점(437득점)을 기록하고 있는 메가왓티 퍼티위가 단 8득점에 그쳤지만 공격에서 큰 공백을 느끼지 못했다. 돌아온 '소영선배' 이소영이 43.14%의 성공률과 함께 서브득점 2개와 블로킹 1개를 곁들이며 25득점으로 맹활약했기 때문이다.
▲ 이소영은 정관장이 구단 역사상 최고액을 투자해 영입한 선수다. |
ⓒ 한국배구연맹 |
FA제도가 정착된 프로스포츠에서 투자 없이 좋은 성적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한 욕심에 가깝다. GS칼텍스 KIXX는 V리그에 FA제도가 생기자마자 현대건설 힐스테이트의 에이스 정대영(GS칼텍스)과 주전세터 이숙자(정관장 코치)를 동시에 영입해 2007-2008 시즌 챔프전 우승을 차지했다. 2017-2018시즌 도로공사의 첫 우승에도 배유나와 박정아(페퍼저축은행 AI페퍼스) 영입이 결정적인 비결이 됐던 것은 배구팬이라면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정관장은 전신 KT&G 아리엘즈와 KGC 인삼공사 시절부터 투자에 유난히 인색한 구단으로 유명했다. 2007년 FA시장에서 처음으로 국가대표 주전세터 김사니를 영입해 2009-2010 시즌 챔프전 우승을 차지했지만 김사니는 3년 후 FA자격을 재취득해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로 이적했다(물론 인삼공사는 건재했던 '괴물 외국인 선수' 마델라이네 몬타뇨의 원맨쇼 덕에 2011-2012 시즌 통산 3번째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
정관장은 프로 출범 후 8시즌 동안 세 번의 챔프전 우승을 차지하며 '소리 없이 강한' 명문구단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세 번째 우승 이후 몬타뇨와 한유미(KBS N 스포츠 해설위원), 김세영 등 주축 선수들이 대거 팀을 떠나면서 정관장은 곧바로 다음 시즌 최하위로 떨어지는 추락을 경험했다. 문제는 우승 후 다음 시즌에 곧바로 최하위로 떨어지는 수모를 당했음에도 정관장이 투자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는 점이다.
정관장은 2013-2014 시즌 조이스 고메즈 다 실바, 2016-2017 시즌 알레나 버그스마 등 외국인 선수의 활약에 힘입어 간간이 플레이오프 무대를 밟으면서 인색한 투자가 계속 이어졌다. 2018년 FA시장에서 최은지(GS칼텍스)를 연봉 8000만 원에 영입해 2018년 컵대회 우승을 차지했지만 최은지는 보상선수 출혈이 없는 B등급 FA였다. 좋은 영입이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비약적인 전력 상승을 위한 과감한 투자와는 거리가 있었다.
정관장은 2017-2018 시즌부터 2020-2021 시즌까지 네 시즌 연속으로 봄 배구 진출에 실패했고 확실한 투자 없이는 성적향상이 더욱 힘들 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결국 정관장은 2021년 FA시장에서 2020-2021 시즌 챔피언 결정전 공동 MVP에 빛나는 '공수겸장 아웃사이드히터' 이소영과 3년계약을 체결했다. 정관장이 이소영을 데려오기 위해 투자한 금액은 무려 19억 5000만 원으로 이는 당연히 구단 역대 최고액이었다.
▲ 이소영(오른쪽)이 새해 첫 날 같은 활약을 이어가면 외국인 선수 지아와 막강한 아웃사이드히터 콤비를 구축할 수 있다. |
ⓒ 정관장 레드스파크스 |
2012-2013 시즌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GS칼텍스에 입단한 이소영은 9시즌 동안 GS칼텍스에서 활약하며 두 번의 우승을 이끌었던 간판스타였다. '아기용병'에서 '소영선배'로 별명이 바뀌는 긴 세월 동안 GS칼텍스 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했고 2018년 4월엔 무릎 수술 후 완벽한 몸상태가 아님에도 FA계약을 체결했을 정도로 구단과의 신뢰도 끈끈했다. 하지만 이소영은 가장 빛나던 순간에 새로운 도전을 위해 정관장 이적을 선택했다.
이소영은 정관장 이적 후 2021-2022 시즌 32경기 377득점, 팀의 주장을 역임했던 2022-2023 시즌에는 36경기에 모두 출전해 457득점을 기록하며 FA선수로서 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하지만 소속팀 정관장은 이소영을 영입한 후에도 두 시즌 연속 4위에 그치며 목표했던 봄 배구 진출에 실패했다. 봄 배구 진출 실패의 원인을 이소영의 탓으로 돌릴 순 없지만 리그에서 손꼽히는 액수의 연봉을 받는 선수로서 이소영이 책임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두 시즌 연속 고군분투한 이소영은 지난 시즌이 끝난 후 어깨수술을 받으며 최소 6개월 이상의 재활을 거치게 됐다. 이소영은 2023년 11월 21일 흥국생명과의 2라운드 경기에서 코트에 복귀했지만 복귀 후 11경기에서 43득점에 그치며 부상 전의 위력은 보여주지 못했다. 이소영이 경기감각 회복을 위해 시간을 보내는 사이 1라운드 4승 2패를 기록했던 정관장은 2라운드 1승 5패, 3라운드 2승 4패로 좀처럼 순위를 끌어 올리지 못했다.
그렇게 중·하위권으로 순위가 굳어지는 듯했던 정관장은 새해 첫 경기에서 도로공사를 상대로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승리를 거뒀고 그 중심에는 이소영이 있었다. 이소영은 1일 도로공사전에서 팀 내에서 가장 많은 34.93%의 공격점유율을 책임지며 43.14%의 성공률로 25득점을 기록, 팀의 주공격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이소영은 수비에서도 13개의 디그와 함께 45.95%의 준수한 리시브 효율을 기록했다.
이소영이 도로공사전에서 보여준 좋은 컨디션을 계속 유지한다면 정관장은 지아와 메가로 이어지는 쌍포에 이소영이 가세한 이상적인 '삼각편대'를 구축할 수 있다. 또한 주장으로서 코트에서 동료 선수들에게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물론 이소영의 복귀와 부활이 조금 더 빠른 시간에 이뤄졌다면 더할 나위 없었겠지만 새해 이소영의 부활은 정관장의 전력과 사기에 엄청난 플러스 요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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