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새해 취미로 전통활쏘기는 어떨까요?

김경준 2024. 1. 2.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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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쏘기를 만나고 달라진 삶을 대하는 태도... 같이 느껴 봤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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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준 기자]

2024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해돋이를 감상하기 위해 저 멀리 동쪽의 정동진으로, 남쪽의 땅끝마을로 달려간 사람들의 이야기로 뉴스 메인이 시끌벅적합니다.

굳이 멀리 갈 것 없이 집 근처에서 의미 있게 새해 아침을 맞는 방식도 있습니다. 저는 전통활쏘기(국궁)를 배우기 시작한 후로, 매년 새해 첫날 특별한 일과로 하루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바로 여명이 밝아오기 전에 활터에 올라 활쏘기로 새해 첫날을 여는 것입니다.
 
 새해 첫날, 활터에 오르다 (서울 강서구 공항정)
ⓒ 김경준
 
활쏘기로 여는 새해 첫날

작년에 이어 올해도 어김없이 서울 강서구에 위치한 활터(공항정)에서 새해를 맞이하기로 했습니다. 활터에 도착하니 오전 6시 50분. 아직 어둠이 짙게 깔린 활터에 도착하니 '새벽반' 멤버들이 이미 도착해서 활을 쏘고 있습니다.

궁방에서 각궁(角弓)을 올린 뒤 굳은 몸을 풀며 습사(활쏘기)를 준비합니다. 본격적인 습사에 앞서 '태조 이성계 어진'을 사대 앞 비석 위에 올려놓고, 보이차 한 잔 올리는 것으로 간단하게 차례(茶禮)를 지냈습니다. 활터에서 맞이하는 새해 첫날인 만큼 궁신(弓神) 태조대왕님께 예를 표하며 새해를 연 것입니다.

올해가 '청룡의 해'라고 하는데 푸른 용포를 입은 태조대왕의 어진이 올해의 의미와 특히 맞아 떨어지는 듯해서 감회가 남달랐습니다.
 
 2024년 1월 1일, 태조 이성계 어진을 모시고 차례를 지내다 (서울 공항정)
ⓒ 김경준
 
"활 배우겠습니다!"

초시례(활터에 올라와 처음 활을 쏠 때 하는 인사) 후 과녁 너머로 힘차게 새해 첫 화살을 날립니다. 잠시 후 과녁에 맞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관중을 알리는 불빛이 어둠 속에서 반짝 빛납니다. 새해 첫 관중입니다.

그렇게 몇 순(1순당 5발)을 내는 동안 서서히 동이 트기 시작합니다. 밝아오는 아침해를 바라보며 활쏘기로 새해 아침을 여니 기분이 상쾌합니다. 어둠 속에서 잘 보이지 않던 화살도 이제 잘 보이기 시작합니다. 힘차게 창공을 날아오르는 저 화살처럼 올해도 힘차게 한 번 살아보자고 다짐해 보았습니다.
 
 2024년 1월 1일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활을 쏘다
ⓒ 김경준
 
인내의 미, 활쏘기

2023년 한 해는 제게 특별한 해였습니다. 꿈에 그리던 '각궁'을 잡았기 때문입니다.

보통 국궁을 시작하면 현대식 개량궁(카본활)으로 입문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전통 방식으로 제작한 활(각궁)에 비해 가격도 저렴하고 관리에 있어서나 쏘는 방식에 있어서나 여러모로 간편한 까닭입니다. 이에 따라 활터에서는 처음부터 개량궁으로 지도를 하고 있고, 어느 정도 경력이 되어도 본인의 의지로 계속 개량궁만 고집하는 경우가 잦습니다.

저 역시 개량궁으로 시작했지만 '전통활쏘기를 한다고 말하려면 당연히 각궁을 다룰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을 품고 있었습니다. 전통활쏘기를 한다면서 전통활이 아닌 개량활을 잡는 건 어폐가 있지 않나 싶었기 때문입니다.

감사하게도 작년에 각궁을 공부하는 벗들을 만나 각궁에 입문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제2의 활인생'이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개량궁에 비해 다루기 까다로운 것은 사실이나, 개량궁에 비해 쏘임이 훨씬 편안할 뿐더러 우리 전통을 계승한다는 자부심에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까다롭기만 하다고 생각했던 과정도 새로운 지식을 알아간다는 관점으로 접근하니 흥미롭기만 했고, 익숙해지니 더 이상 까다롭다는 생각도 들지 않습니다.

한편으로 활쏘기에 임하는 태도, 삶을 대하는 태도에도 작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활이란 게 잘 맞는 날도 있고, 안 맞는 날도 있습니다. 수십 년 동안 활을 잡은 명궁들조차도 "여전히 활쏘기는 어렵다", "나는 평생 활병을 앓고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시곤 하니까요.

젊은 나이에 그저 혈기왕성했던 저는 맞추는 데에만 급급했더랬습니다. 남들보다 뒤처진다고 느껴질 때는 짜증이 나서 둔한 몸을 원망했다가, 나중에는 애꿎은 하늘을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운동을 위해 시작한 활쏘기였는데, 활쏘기가 스트레스가 되고 말았습니다. 기분 좋게 활터에 올랐다가 오히려 우울해져서 내려오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나 작년 한 해 동안 그런 슬럼프가 찾아와도 꿋꿋하게 활을 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언제부턴가 더 이상 맞추고 안 맞추고에 크게 일희일비하지 않게 되더군요. 물론 여전히 잘 맞으면 기분 좋고, 안 맞으면 아쉬운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안 맞으면 안 맞는 대로 그 또한 내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라 생각하니 이 또한 큰 공부가 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활쏘기는 '인내의 미'를 가진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활쏘기에 임하는 태도에 있어서만 인내를 갖게 된 것이 아닙니다.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지난한 대학원 과정을 밟고 있는 제게 있어서 활쏘기는 큰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번듯한 직장 생활을 하는 친구들, 후배들을 마주할 때마다 언뜻언뜻 찾아오는 회의와 번민 앞에서 활쏘기는 그를 극복할 수 있는 인내를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올해 떠오르는 해를 보며 "백발백중의 명궁이 되게 해달라"는 건방진 소원 대신 그저 올 한 해도 즐겁게 활량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건강하게만 해달라고 빌었습니다.
 
 과녁 위로 떠오른 해 (서울 공항정)
ⓒ 김경준
새해를 맞아 이런 저런 계획을 세우는 시기가 왔습니다. 새로운 취미 내지는 운동을 시작하려는 분들께 저는 우리 활쏘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함께 활쏘기의 '찐한' 매력에 한 번 빠져보지 않으실는지요?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경준 기자는 활쏘기 유튜브 채널 '好武善弓 호무선궁'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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