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랑]“나를 믿고 의사를 믿는 것, 암을 이겨내는 가장 좋은 지름길”

김서희 기자 2024. 1. 2.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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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궁경부암 3기를 극복한 오희옥​(왼쪽)씨와 그의 주치의인 한림대강남성심병원 산부인과 박성택 교수./사진=한림대강남성심병원
자궁경부암 3기를 극복한 오희옥(69·서울 금천구)씨를 만나고 왔습니다. 자궁 적출술, 림프절 절제술, 여섯 번의 항암방사선 요법…. 힘겨운 치료를 모두 이겨내고 제2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의 주치의인 한림대강남성심병원 산부인과 박성택 교수와도 이야기 나눴습니다.

암 검진 2년 사이에 생긴 암
오희옥씨가 처음 암 진단을 받은 건 2014년 5월입니다. 항문 주변에 좁쌀 크기의 뾰루지가 생겼고. 피로감이 사라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건강검진을 받은 지 2년이 지나기도 해 겸사겸사 가벼운 마음으로 집 근처 병원을 내원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큰 병원에 가보라”는 소견을 들었습니다. 곧바로 한림대강남성심병원 산부인과에 내원했습니다. 검사 결과, 자궁경부암 2기였습니다.

오희옥씨는 암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암담했다고 합니다. 머리가 하얘져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고, 암이라는 사실이 기가 막혀 눈물조차 나지 않았습니다. 불과 2년 전에 받았던 건강검진에서는 “자궁이 정말 깨끗하다”는 소견을 들었던지라, 충격이 더 컸습니다. 그러다가 이내 ‘조기에 발견한 게 어디냐’는 생각이 들었고, 치료를 열심히 받아야겠다는 강한 의지가 생겼습니다.

자궁경부암은 유방암, 난소암과 함께 여성의 주요 3대 암으로 불릴 만큼 여성에게 흔한 암입니다. 자궁경부암은 암의 진행 상태에 따라 세 단계로 분류합니다. 암으로 진단된 경우 1기와 2기는 자궁적출 등의 수술을 통해 암을 제거하는 치료를, 3기 이상에서는 항암과 방사선 치료로 암을 제거합니다. 자궁경부암은 천천히 자라는 경우가 많고 검진을 통해 조기 발견할 수 있어 예후가 비교적 좋은 편입니다.

2014년 6월, 자궁경부의 일부를 절제하며 종양을 제거하는 원추절제술을 진행했습니다. 수술 결과, 4cm 크기의 종양이었으며 오른쪽 림프절 전이가 있는 자궁경부암 3기였습니다. 예상했던 것보다 암이 더 진행된 상태였습니다. 한 달 뒤, 종양이 퍼진 자궁을 제거하는 광범위 자궁 적출술, 양측 난소를 제거하는 양측 부속기 절제술, 전이를 제거하는 골반 림프절 절제술을 동시에 진행했습니다. 여섯 시간의 큰 수술이었습니다. 수술 후에는 재발 위험을 줄이기 위한 항암방사선 요법을 4주 간격으로 여섯 번 진행했습니다.

숲에서 찾은 ‘치유의 힘’
치료는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자궁을 들어내는 산부인과 큰 수술과 여섯 번의 항암방사선 치료를 이겨내는 것은 체력적으로도, 심적으로도 힘들었습니다. 수술 합병증으로 오른쪽 다리에 림프부종이 생겼습니다. 림프부종은 림프절 절제술을 한 암 환자에게 흔히 일어나는 합병증입니다. 부기가 심해 걷기가 힘들고 잠을 자는 것도 힘듭니다. 그래도 오희옥씨는 생명을 얻기 위해선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는 ‘부증불감(不增不減)’이라는 말을 떠올리며 미소를 잃지 않았습니다. 치료만 잘 받으면 암을 없앨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부기로 인한 고통은 별일 아니라 여겼습니다. 치료를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이겨낼 수 있다는 생각이 확고했습니다.

이렇게 오씨의 마음을 다잡게 해준 것은 다름 아닌 ‘자연’이었습니다. ‘산림욕이 암 환자에게 신체·정신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항암 치료를 받는 날이면 어김없이 집 근처에 있는 호암산 잣나무 수목원을 찾았습니다. 두 시간 정도 숲을 천천히 거닐며 숲의 피톤치드와 음이온을 들이마시면 마음이 안정됐다고 합니다. 다람쥐도 만나고 다채로운 자연의 싱그러움을 느끼니 치유의 힘이 생겼습니다. 특별한 항암 부작용 없이 일상을 지낼 수 있었습니다. 오씨의 주치의인 한림대강남성심병원 산부인과 박성택 교수는 그 당시를 떠올리며 “힘든 과정 중에도 한 번도 불평하지 않고 마음의 평정심을 잃지 않은 오희옥씨에게 오히려 감사함을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2019년 7월 자궁경부암 완치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 후 지금까지 매년 1회 정기적인 추적검사를 하고 있으며 재발이나 전이 없이 건강한 상태입니다.

“잘못된 인식 개선해야”
‘자궁경부암의 원인은 부적절한 성관계’라는 잘못된 인식이 있습니다. 자궁경부암은 자궁 입구(경부)에 생기는 암으로 인유두종 바이러스(HPV) 감염이 주요 원인으로 꼽힙니다. 실제 환자의 99.7%에서 인유두종 바이러스 감염이 확인되는데요. 성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바이러스에 감염될 수 있습니다. 부적절한 성관계 탓이라는 인식은 반드시 개선돼야 합니다. 인유두종 바이러스에 감염됐다고 해서 모두 자궁경부암이 되는 건 아닙니다. 대부분의 인유두종 바이러스 감염은 별다른 치료 없이 1~2년 내에 자연적으로 소멸합니다. 다만, 몸의 면역체계가 무너지면 바이러스가 암으로 발전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건강한 생활습관으로 면역력을 높이고 정기 검진을 통해 암을 조기에 발견하는 게 중요하다고 박성택 교수는 말합니다.

인유두종 바이러스 예방백신도 접종해야 합니다. 백신의 권장 접종 연령은 9~26세 여성입니다. 예방백신 3회를 모두 접종한 경우 인유두종 바이러스 16형과 18형에 대해 거의 100% 예방 효과를 얻을 수 있고, 이미 감염됐던 사람도 재감염 위험에 대비할 수 있습니다. 오희옥씨는 이 백신을 맞지 않았습니다. 2016년도부터 국가 예방접종 지원 사업이 시작됐기 때문입니다. 백신을 통해 예방이 가능한 유일한 암인 만큼 자궁경부암에 대한 올바른 인식 정립과 적극적인 백신 접종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입니다.

<오희옥씨>

오희옥씨./사진=한림대강남성심병원
-요즘은 어떻게 지내세요?
“감사하게도 더에너지전환협동조합 이사장으로 취임하게 돼 금천구 도시재생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암을 계기로 마음가짐을 달리 하다 보니 더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시할 수 있게 됐고, 이전보다 몸도 마음도 편해졌습니다. 친환경 에너지 자립 마을을 만드는 ‘녹벤전스’ 팀장으로 일하며 제로웨이스트 매장, 활력프로그램, 금하숲길 등 사회적 가치를 이뤄내기 위해 열심히 일합니다. 건강의 소중함을 깨달은 덕분에 이 모든 것에 감사함을 느낍니다.”

-암 진단 전후로 달라진 점이 있나요?
“삶을 대하는 태도는 암 진단 전에도 긍정적인 편이었습니다. 다만, ‘나’ 자신에 대한 신념이 더욱 확고해졌습니다. 암을 생체리듬 균형을 깨뜨린 나에게 주는 경고장이라 받아들였습니다. 숲에서 피톤치드를 마시며 건강을 챙겨온 덕분에 빨리 회복한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자연의 다양성을 존중하며, 활기차게 생활하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됐습니다. 그래서 암 진단 전보다 더 열심히 운동하고 자연을 소중히 생각합니다. 나 자신을 더 사랑해주고 있기도 하고요.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다 보니, 더 풍요롭고 행복한 인생이 됐습니다.”

-‘나다운 삶’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하시던데요.
“박성택 교수님을 비롯한 여러 의료진이 저에게 암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셨습니다. 매 진료 때마다 저의 마음을 잘 이해해주고 고충이 있을 때는 제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신 게 큰 힘이 됐습니다. 또 교수님은 ‘환자’가 아닌 제 이름을 정확히 부르면서 안부를 물어봐주셨어요. 교수님이 제 이름을 불러주신 그 순간, 누군가의 엄마나 아내가 아닌 진정한 의미의 내가 되는 것 같았습니다. 암에 걸린 것은 나 자신이고, 암을 극복해야 하는 것 역시 나이고, 삶을 살아가는 것 또한 내가 돼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저 스스로에 대해 더 자세히 생각하고 알 수 있는 시간을 그때부터 가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산림욕을 할 때에도 나에게 오롯이 집중하며 보내려고 노력했습니다.”

-진정한 의미의 ‘나’를 아직 못 찾은 암 환자분들에게 한 말씀.
“암에 걸리면 여러 이야기나 여러 상황에 흔들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나 자신입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의지를 매일매일 다지세요. 나를 위해 노력하는 주치의를 믿고 열심히 치료를 따르길 바랍니다. 지나고 보니, 원칙적인 치료를 잘 받는 나의 의지 덕분에 내가 살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암 완치’라는 목표를 위해 나 스스로 열심히 노력해야 합니다. 잘 챙겨 먹고, 여러분에게 맞는다면 자연에서 치유의 힘도 얻어 보세요.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몸을 움직이고 치료 받으면 충분히 이겨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가진 회복의 힘을 믿으세요!”

<한림대강남성심병원 산부인과 박성택 교수>

박성택 교수/사진=한림대강남성심병원
-오희옥씨의 현재 의학적인 상태는 어떤가요?
“종양이 깔끔하게 제거됐고, 전이·재발없이 건강한 상태입니다. 2019년 7월에 완치 판정을 받으셨습니다. 큰 수술을 받고 현재 10년이 지났음에도 큰 합병증 없이 건강하십니다. 림프 부종이 있지만 일상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고 있습니다. 1년 주기로 검사만 정기적으로 받으시고 지금처럼만 지낸다면 암에 걸리지 않은 일반인처럼 오랫동안 건강하게 지내실 수 있습니다.”

-오씨가 암을 이겨낸 비결은 뭐라고 생각하는지?
“암에 걸려도 긍정적인 마음으로 일상을 잃지 않으셨습니다. 보통 암을 진단 받으면 좋은 공기, 유기농 음식 등과 같이 주변 환경을 바꾸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환경이 변해도 환자의 마음이 바뀌지 않으면 크게 치료 효과가 없습니다. 암을 이겨내기 위해 오씨는 본인에게 집중하신 것 같습니다. 본인이 좋아하는 숲을 찾아다니시고 건강한 생활습관을 영위하시고 스스로 본인의 삶을 찾으려는 노력이 치료에 긍정적인 영향을 줘서 좋은 결과가 있던 것 같습니다. 암 치료 후에도 ‘녹벤저스’로 열심히 사회를 위해 일하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습니다. 가족들이 정성스럽게 환자를 지지해준 것도 시너지 효과를 낸 듯합니다.”

-산부인과 전문의로서 중요하게 여기는 게 있다고?
“우리나라는 여전히 산부인과 문턱이 너무 높습니다. 여성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건강 수명을 높이기 위해서는 정기적인 산부인과 검진이 필수입니다. 살아가는 동안 암을 비롯한 만성질환을 피할 수 없는 유병장수의 시대에서는 검진으로 조기에 암을 발견하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특히 자궁경부암과 같은 경우 선별검사로 선암 단계에서 치료할 수 있습니다. 초중학생들이 아프면 편하게 소아청소년과나 이비인후과 가듯이, 여성들은 편하게 산부인과를 방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산부인과 방문을 수치스럽게 여기는 구시대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암 환자들에게 한 말씀.
“암은 병이지 죄가 아닙니다. 암에 걸리면 죄인인 된 것 마냥 모든 인연과 연락을 끊고 산으로 들어가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암 치료를 혼자 이겨내기란 여간 힘들고 외로운 게 아닙니다. 주변 가족과 지인의 응원과 지지를 받으며 암을 이겨내세요. 굳이 외로운 길을 택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희옥씨처럼 도심 속에서도 충분히 자연을 느끼며 암을 이겨내실 수 있습니다. 암 환자들이 암 치료를 위해 이용할 수 있는 사회시설이나 서비스가 많아졌습니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주변의 응원과 힘을 받으며 암을 이겨내세요. 의료진을 믿고, 가족과 함께 노력하다보면 꼭 완치에 이를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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