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 중심에 있었던 선수가 떠올라"…'전설' 뒤 이으려는 이정후, 신인왕 도전 가능할까

유준상 기자 2024. 1. 2.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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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포츠뉴스 유준상 기자) 지난달 15일(이하 한국시간)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입단 기자회견에 참석한 '바람의 손자' 이정후는 현지 취재진으로부터 많은 질문을 받았다. 자신의 타격 스타일이나 빅리그 적응 등 야구와 관련한 질문은 물론이고 중학교 시절 샌프란시스코을 방문하게 된 배경, 여가 시간을 보내는 방법 등 이정후 개인에 대한 질문도 많았다.

샌프란시스코 구단 역사와 관련한 질문도 빠질 수 없었다. 취재진의 질문에 잠시 생각에 잠겼던 이정후는 "윌리 메이스 등 (샌프란시스코를 거쳐간) 유명한 선수가 많다"며 "옛날 야구는 잘 모르지만 2010, 2012, 2014년 팀이 우승했을 때 그 중심에 있었던 버스터 포지 선수가 떠오른다"고 답했다.

2009년 빅리그 데뷔 이후 줄곧 한 팀에서만 뛰었던 '원클럽맨' 포지는 2021년까지 12년 동안 통산 1371경기 4970타수 1500안타 타율 0.302 158홈런 729타점 OPS 0.831을 기록했다. 2012년에는 내셔널리그 MVP(최우수선수상)를 수상했고, 무려 일곱 차례나 올스타에 선정되는 기쁨을 맛보기도 했다.

또 포지는 첫 풀타임 시즌이었던 2010년 제이슨 헤이워드, 제이미 가르시아 등을 제치고 내셔널리그 신인왕을 수상한 바 있다. 그 이후 샌프란시스코 소속으로 신인왕을 차지한 선수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이제 이정후가 14년 만의 '샌프란시스코 소속' 신인왕에 도전장을 내민다. KBO리그에서는 프로 데뷔 첫해였던 2017년 MVP를 수상했지만,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는 이정후는 '신인'의 마음가짐으로 2024시즌을 준비하게 된다.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 MLB.com은 1일 30개 구단이 꿈꾸는 최상의 시나리오를 소개하면서 내셔널리그 신인왕 수상자 배출을 샌프란시스코의 새해 소망으로 꼽았다. 매체는 "샌프란시스코는 2010년 버스터 포지 이후 신인상을 배출하지 못했지만, 곧 그 가뭄을 끝낼 수 있는 좋은 위치에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매체는 "샌프란시스코는 지난 시즌 12명의 유망주가 빅리그 무대를 밟았는데, 그들 중 대다수가 2024시즌 신인상 후보 자격이 있다"면서 "그 젊은 선수들이 잘 성장한다면 샌프란시스코는 중견수 이정후와 좌완투수 카일 해리슨, 유격수 마르코 루치아노를 포함한 여러 명의 신인상 후보를 보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특히 이정후는 보 비셋(토론토 블루제이스), 키브라이언 헤이스(피츠버그 파이리츠), 파블로 로페즈(미네소타 트윈스), 요르단 알바레즈(휴스턴 애스트로스), 재즈 치좀 주니어(마이애미 말린스)와 함께 기사의 메인 사진에 등장했다. 그만큼 샌프란시스코 구단은 물론이고 미국 현지에서도 이정후에 대한 기대치가 높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키움 히어로즈 1차 지명으로 프로에 입성한 이정후는 7년간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KBO리그 데뷔 첫 해였던 2017년에는 144경기에 모두 출전하면서 552타수 179안타 타율 0.324 2홈런 47타점 12도루 OPS(출루율+장타율) 0.812를 기록하면서 신인왕을 수상한 데 이어 이듬해에는 109경기 459타수 163안타 타율 0.355 6홈런 57타점 11도루 OPS 0.889로 활약했다. 또한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도 활약하며 대표팀의 대회 3연패에 크게 기여했다.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이정후는 2019년 140경기 630타수 193안타 타율 0.336 6홈런 68타점 13도루 OPS 0.842, 2020년 140경기 617타수 181안타 타율 0.333 15홈런 101타점 12도루 OPS 0.821로 데뷔 첫 두 자릿수 홈런을 달성했다.

이정후는 2021년 123경기 464타수 167안타 타율 0.360 7홈런 84타점 10도루 OPS 0.860으로 상승세를 유지했고, 2022년 142경기 553타수 193안타 타율 0.349 23홈런 113타점 5도루 OPS 0.976으로 커리어 하이를 달성했다.

KBO리그 무대를 평정한 이정후의 시선은 해외로 향했다. 이정후는 지난해 12월 키움 구단에 2023시즌 종료 후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서 메이저리그에 도전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고, 내부 논의를 거친 키움은 올해 1월 초 선수의 의지와 뜻을 존중하고 응원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또 구단 차원에서 도울 수 있는 부분은 돕고 지원하기로 방침을 세웠다. 이정후의 해외 무대 도전 선언에 미국과 일본에서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기대와 달리 2023시즌은 순조롭지 않았다. 부상이 이정후를 괴롭혔다. 그는 7월 22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원정 경기 도중 발목 부상을 당하면서 두 달 넘게 자리를 비웠다. 최종 성적은 86경기 330타수 105안타 타율 0.318 6홈런 45타점 6도루. 이정후가 한 시즌에 100경기 이상 소화하지 못한 건 프로 데뷔 이후 올해가 처음이었다. 빅리그 도전에도 '노란불'이 켜졌다.

하지만 긴 공백기를 가진 이정후에 대한 스카우트들의 관심은 여전히 뜨거웠다. 특히 지난해 초부터 관심을 나타낸 샌프란시스코가 계속 움직였는데, 피트 푸틸라 단장은 10월 초 한국에 들어와 이정후를 면밀히 관찰했다. 10월 10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홈 최종전도 현장에서 지켜봤다. 이정후는 대타로 단 한 타석만 소화했지만, 샌프란시스코는 그 한 타석이라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결국 샌프란시스코의 진심에 이정후의 마음이 움직였고, 지난달 13일 양 측은 6년 총액 1억 1300만 달러 계약에 합의했다. 포스팅 개시 이후 2주도 채 지나지 않아 빠르게 결정을 내린 이정후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할 수 있었다.

샌프란시스코는 월드시리즈 8회 우승(1905, 1921, 1922, 1933, 1954, 2010, 2012, 2014년)에 빛나는 '명문구단'이지만, 2022년에 이어 지난해도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면서 아쉬움을 삼켰다. 결국 9월 말 게이브 캐플러 샌프란시스코 감독이 성적 부진을 이유로 경질됐다. 이후 2022~2023시즌 샌디에이고 지휘봉을 잡으면서 김하성과 인연을 맺었던 밥 멜빈 감독이 2024시즌부터 샌프란시스코를 이끌게 됐다.


사령탑 교체와 함께 도약을 꿈꾸는 샌프란시스코로선 확실한 전력 보강을 원했고, 공격과 수비 양면에서 힘을 보탤 이정후에게 손을 내밀었다. 선수층이 탄탄하지 않은 만큼 현재의 상황이라면 이정후가 시즌 초반부터 리드오프 중책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미국 현지 언론은 이정후가 1번타자 겸 중견수로 개막전 라인업에 이름을 올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멜빈 감독은 지난달 22일 미국의 한 팟캐스트에 출연해 "이정후를 영입한 뒤 몇 개의 라인업을 작성했는데, 어떤 경우에도 이정후는 1번타자였다. 이정후에게도 편안한 타순이고 이정후가 (KBO리그에서도) 쳐봤던 자리"라며 이정후를 리드오프로 기용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신인왕 도전을 위해서 많은 경기에 출전하는 건 '필수조건'이나 다름이 없다. 성적이 받쳐준다면 더 좋다. 한국인 선수들 중에서 메이저리그 신인왕 투표 상위권을 차지한 2013년 류현진(당시 LA 다저스), 2015년 강정호(당시 피츠버그 파이리츠), 2016년 오승환(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을 보더라도 그렇다. 강정호의 경우 크리스 브라이언트(시카고 컵스), 맷 더피(샌프란시스코)에 이어 3위를 차지하면서 경쟁력을 입증했다.

이정후도 내심 타이틀에 대한 욕심을 갖고 있다. 지난달 입국 기자회견 당시 "아직 한 번도 우승을 하지 못해서 우승을 가장 하고 싶다. 사실 (KBO리그 시절) 신인 때 생각해보면 내가 신인왕을 탈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상태로 시즌을 치렀다"며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다 보면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고 그때 가서 생각해볼 문제"라고 말한 바 있다.

새로운 도전을 앞둔 '빅리그 신인' 이정후가 팀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까.

사진=엑스포츠뉴스 DB, AP, AFP/연합뉴스, 샌프란시스코 구단 공식 SNS

유준상 기자 junsang98@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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