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인터뷰] 하루아침에 '오타니 선배·라이벌 이정후', 장현석 "이게 뭔가 싶었죠"
윤승재 2024. 1. 2. 08:04
눈 떠보니 오타니 쇼헤이(29·LA 다저스)의 팀 동료가 됐다. 또 이정후(25·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라이벌 팀 선수가 됐다. 미국 입성을 앞둔 장현석(19·LA 다저스)은 이 모든 게 얼떨떨하기만 하다.
지난여름 장현석은 계약금 90만 달러(11억 8000만원)에 미국 메이저리그(MLB) 다저스와 계약했다. 2004년생 우완 정통파 투수인 장현석은 탁월한 신체 조건(키 1m90㎝·몸무게 90㎏)에서 나오는 150㎞/h 대 중반 강속구를 던지며 일찌감치 MLB 구단 스카우트들의 주목을 받았다. KBO리그와 미국 조기 진출을 놓고 고민하던 장현석은 결국 태평양을 건너기로 했다.
미국행을 앞둔 장현석은 치열한 겨울을 보내고 있다. 다저스가 마련한 웨이트 프로그램에 따라 훈련하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또 국내 에이전시 리코스포츠의 관리 아래 영어 공부에도 매진하고 있다. 오전부터 늦은 저녁까지 계속되는 강행군 속에 주어지는 개인 시간은 고작 2시간. 하지만 설레는 미국 생활만 생각하면 이런 스케줄이 힘들지만은 않다.
선배 오타니, 라이벌 이정후
이렇게 정신없는 강행군을 소화하는 도중, 장현석은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지난달 다저스가 오타니와 계약기간 10년 총액 7억 달러의 초대형 FA(자유계약선수) 계약을 맺은 것이다. 장현석은 다저스 입단식에서 “다르빗슈 유(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다음으로 존경하는 아시아 선수가 오타니”라고 말했는데, 하루아침에 자신의 우상이 팀 동료가 됐다.
며칠 뒤에는 투수 최대어 야마모토 요시노부(25)까지 다저스 유니폼을 입었다. 야마모토는 최고 160㎞/h에 육박하는 강속구를 던지며 일본 프로야구(NPB) 최초로 퍼시픽리그 3년 연속 다승·평균자책점·탈삼진·승률 등 투수 4관왕을 차지한 선수. 일본 최고의 투수 두 명이 한꺼번에 팀 동료가 되는 얼떨떨한 상황을 맞이했다.
장현석은 “처음엔 ‘이게 뭐지’ 싶었다. 영상으로만 보던 선수들을 실제로 본다고 생각하니까 기분이 이상하다. 정말 보고 싶었고 좋아했던 선수(오타니)여서 설렌다”라며 웃었다. 투수로서도 MLB와 NPB에서 굵직한 족적을 남긴 선수들로부터 모든 걸 보고 배우고 싶을 터. 장현석은 “스프링캠프 때 만나면 좋겠지만 난 마이너리거라 당분간 그들을 만나긴 힘들 것이다. 이곳에 먼저 적응한 뒤 (오타니로부터) 배울 것을 찾아보려고 한다”라고 전했다.
오타니와 만나는 즐거운 상상을 하던 도중엔 이정후까지 같은 내셔널리그(NL) 서부지구 팀에 둥지를 틀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정후는 다저스의 오랜 라이벌,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6년 총액 1억1300만 달러에 계약했다. 장현석과 이정후의 맞대결도 기대가 되는 상황. 장현석은 “만약 맞붙게 된다면 다저스의 승리를 위해 죽을힘을 다해 던지겠다”라며 이정후와의 만남을 상상했다.
장현석의 18번, 야마모토의 18번
이 모든 것은 장현석이 마이너리그에 안착한 뒤 MLB 마운드까지 올랐을 때의 가능한 달콤한 상상이다. 장현석은 현실적이다. “(다저스의 홈구장) 다저스타디움 마운드에 오를 날만 고대하고 있다”라고 말하면서도 “빨리 빅리그 무대에 오르겠다는 기대는 잠시 버렸다. 편하게 마음먹고 내 페이스대로 조금씩 적응해 가겠다”라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야마모토가 다저스에 입단했을 때 장현석의 등번호(18번)를 달았다. 지난여름 입단식 때 장현석이 먼저 18번을 달았지만, NPB 시절부터 18번을 달았던 야마모토에게 등번호를 넘겨준 것이다. 장현석 입단식 때 존 디블 태평양 지역 스카우팅 디렉터는 “아시아의 최고 선수들은 늘 18번을 달았다. 장현석이 이들을 따라 18번을 쓰면 좋을 것 같아서 유니폼에 새겼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몇 달 후 야마모토에게 등번호를 내줬다.
그러나 장현석은 신경 쓰지 않았다. “애초에 내 번호도 아니었다”라고 한 그는 “18번은 내 정식 등번호도 아니었고, 구단에서 아시아 선수들이 많이 달았던 번호라며 나한테 준 번호일 뿐이다"라면서 "나는 마이너리그부터 올라가야 하는 선수다. 차라리 ‘내 번호는 없다’라고 생각하고 뛰면 편하게 적응할 수 있을 것 같아 좋다”라며 담담하게 말했다. 그는 “미국에서의 첫 시즌인 만큼 더 많이 부딪히고, 많이 경험해 보겠다"라고 덧붙였다.
장현석은 다저스의 한국인 레전드인 박찬호와 류현진처럼 되는 것이 꿈이다. 장현석은 “선배들처럼 ‘다저스 하면 장현석’이란 이름이 떠오르는 선수가 되는 게 꿈이다. 다저스가 한국 선수들에게 가장 익숙한 구단이고, 프로 첫 팀인데 이왕이면 원클럽맨 선수가 되고 싶다. 박찬호, 류현진 선배의 명맥을 이어갈 수 있는 투수가 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병역 혜택을 받은 장현석은 1월 2일 훈련소에 입소해 기초군사훈련을 받는다. 다녀온 뒤엔 봉사활동을 한 뒤 미국으로 출국해 본격적인 빅리그 생활에 나설 예정이다.
윤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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