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 안개 속을 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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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을 넘은 서울 여의도의 하늘은 뿌옇기만 했다.
겨울답지 않은 날씨 때문인지 미세먼지와 안개가 뒤섞여 공기는 텁텁했고, 초로의 택시기사는 나른함을 털어내려는 듯 말을 쏟아냈다.
공급망의 파열 혹은 자유무역의 종말.
생각이 꼬리를 물면서 더 빈약해진 대꾸에 흥을 잃었는지, 택시기사는 말수가 적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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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을 넘은 서울 여의도의 하늘은 뿌옇기만 했다. 겨울답지 않은 날씨 때문인지 미세먼지와 안개가 뒤섞여 공기는 텁텁했고, 초로의 택시기사는 나른함을 털어내려는 듯 말을 쏟아냈다. 야근을 마친 뒤라 오는 말보다 가는 말은 가난했다. 날씨로 시작해 먹고사는 얘기로 접어들며 목소리가 높아질 즈음, 택시는 국회의사당 아래쪽 한강 둔치를 지나쳤다. “미래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냥 없는 것 같아요. 낼모레 예순인 저는 괜찮은데, 우리 자식들은 어떤 세상에 살지 걱정입니다.” 그는 정치를 탓했고 투표와 선거, 그리고 민주주의 위기라고 한탄했다.
실제로 몇 년간 서민들 피부에 닿는 ‘밥상 경제’는 좋은 적이 없었다. 누구는 미·중 무역전쟁과 패권다툼 때문이라 하고, 누구는 로봇과 인공지능(AI)을 앞세운 산업혁명을 주범으로 지목한다.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드러나는 현상은 하나다. 공급망의 파열 혹은 자유무역의 종말. 세계 경제가 완전하고 완벽한 자유무역을 누린 적은 없다. 다만 ‘미국을 중심축에 둔 자유무역’ ‘미국을 표준으로 하는 세계화’는 지난 30년간 번영을 가져왔다.
절정은 중국의 자유무역 체제 편입이었다. 중국은 ‘메이드 인 차이나’ 딱지를 붙인 값싼 물건과 ‘저물가 고성장’ ‘공급망의 세계화’를 함께 수출했다. 하지만 ‘중진국 함정’을 돌파하려는 중국이 산업 고도화, 첨단기술 육성에 격렬하게 뛰어들면서 균열이 생겼다. 하얀 종이에 닿은 먹물처럼 틈은 더 벌어지고, 빠르게 확산 중이다. 세계 경제는 여러 조각으로 쪼개지고, 공급망 위기는 인플레이션이라는 얼굴로 다가왔다.
나쁜 일은 혼자 오지 않는다. 경제난은 포퓰리즘 또는 폭압적 정치의 훌륭한 연료다. 주거니 받거니 영향을 미치면서 보호무역, 전쟁 등으로 치닫는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이 그렇다. ‘대중선동의 귀재’인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국가 이익보다 사적 이익을 더 추구했고 국가를 분열시켰다. 하마스 뒤에서 전쟁을 획책한 이란도 다르지 않다. 인권 탄압에 따른 저항, 극심한 경제난의 불길을 바깥으로 돌리려 한다. 이란은 예멘의 후티 반군을 지원해 수에즈 운하 봉쇄에도 들어갔다. 후티 반군은 홍해를 지나는 선박을 무차별 공격하고 있다. 유럽과 아시아의 중요한 해상 물류는 막혔고, 허약해진 공급망은 또 충격을 받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도 마찬가지다. 러시아의 침공 배경에는 정치체제 유지, 지원 확보, 경제난 타개 등이 도사린다.
포퓰리즘은 이미 곳곳에서 고개를 들고 있다. 한국무역협회는 새해 통상 환경의 불확실성이 어느 때보다 높을 것이라면서 ‘전쟁 장기화’ ‘미국을 포함한 각국의 선거’ ‘자국 중심의 보호무역 기승’을 예측했다. 올해는 미국 유럽연합 일본 대만 등 40여개 국가에서 전국적 규모의 선거가 치러지는 ‘슈퍼 선거의 해’다. 대부분 국가가 경제 회복을 기치로 내걸었고, 극심한 포퓰리즘을 예고하고 있다. 포퓰리즘, 보호무역 같은 정치·경제적 사건이 전쟁이나 공급망 붕괴라는 폭력적 행위로 귀결하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대공황, 나치독일, 2차 세계대전이라는 일련의 사건은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생각이 꼬리를 물면서 더 빈약해진 대꾸에 흥을 잃었는지, 택시기사는 말수가 적어졌다. “그래도 정치가 중요하죠. 그래서 선거를, 투표를 잘해야 하는데….” 올해 선거를 치르는 모든 나라의 먹고사는 일은 결국 정치와 선거에 달렸다. 2023년 12월 29일 0시30분에 올림픽대로를 달렸던 ‘서울 ○○바○○○○’ 택시의 기사 같은 보통 사람들이 보통의 하루를 보낼 수 있는 힘도 표(票)에 있다.
김찬희 편집국 부국장 c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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